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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걷고 머무르다, 한강 문학 기행

어떤 문장은 우리를 길 위에 올려놓는다. 한강 작가의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이에게 다음의 여정을 권한다.

UpdatedOn November 25, 2024

소설 <소년이 온다> × 광주 전일빌딩245

무수한 헬기 사격 탄흔이 역사의 비극을 증거하는 전일빌딩245. 옥상 공원 전일마루에 올라 광장을, 거리를 굽어보며 그날의 참상을 되새긴다.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옛 전남도청 건물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오후 5시 18분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는 시계탑도 함께 살핀다.

 

소설 ‘여수의 사랑’ × 전남 여수 여수항

일렁이는 밤바다를 마주할 때 귓가에 맴돌듯한 목소리.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그 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었어요. 저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어요.” 고향을 찾아 헤매던 주인공이 운명처럼 이끌린 도시, 여수. 작가는 지명인 여수에 ‘여행자의 우수’라는 중의적 의미를 부여했다. 여수항에서 우수 어린 밤을 보낸 뒤, 돌산도 향일암에서 고운 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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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흰 꽃’ × 제주도 제주 세화해변

    <작별하지 않는다>에 앞서 제주4·3사건을 다룬 단편소설 ‘흰 꽃’은 봄날 제주 세화해변의 눈부신 풍광과 그 이면의 상처를 응시하고 있다. “찬연한 유채밭이 야생으로 피어 있는 골목과 기생화산과 바닷가 언덕”을 걷는 동안 생빈눌(제주의 장례 문화)에 얽힌 눈물과 탄식을 엿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프지만 환한 경험이다.

  • 소설 ‘야간 열차’ × 강원도 강릉 정동진역

    “제 정수리로 어둠을 짓부수며 야간 열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새벽을 향해 미끄러져 간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밤 11시 즈음 출발, 충북 제천에 닿아 태백선을 타고 산맥을 넘어 새벽녘에야 정동진역에 도착하던 야간 열차.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많은 이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바닷가를 달리는 낭만은 여전하니, 정동진행 KTX를 타고 새해 첫 여행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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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철, 한국관광공사

ⓒ 신규철, 한국관광공사

시 ‘오이도’ × 경기도 시흥 오이도

마음이 어수선한 날엔 섬으로 떠난다.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 주던 파도”를 맞닥뜨리는 순간, 삶의 한복판에 다다른 기분이 들 테니까. 오이도의 마스코트 빨강 등대를 지나 아득한 신석기시대 이야기를 간직한 시흥오이도박물관, 시원스러운 갯벌 탐방로 황새바위길, 가슴 벅찬 낙조가 펼쳐지는 생명의 나무 전망대까지 사색하듯 명상하듯 산책한다.

 

소설 ‘훈자’ × 경기도 양평 용문사

문득 막다른 길에 선 것같이 눈앞이 캄캄하다면 ‘훈자’의 주인공처럼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가 본다. “거대한 나무-여자의 늙고 깡마른 우듬지를 향해 그 여자는 고개를 꺾어 쳐들었다.” 수령 1100년에 달하는 나무 할머니가 100세도 채 안 된 우리에게 현답을 내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노란 잎을 다 떨구고 헐벗은 겨울 나무에 머지않아 축복 같은 함박눈이 내려앉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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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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