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을 다해 버려진 물건도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면 새 생명을 얻는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인파로 북적이던 옛 도심,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이 잠시 생기를 잃었다가 문화 예술 분야의 상징적 장소로 거듭나 주목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 세종 조치원 역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힘입어 최근 ‘힙’한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놀이터를 찾아 KTX를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조치원 여행의 중심, 조치원문화정원
조치원의 역사를 짚기 위해 약 1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철새가 갈대밭 사이를 노닐던 한적한 땅에 철길이 놓인다. 1905년 1월, 경부선 준공 후 조치원역이 영업을 개시하자 일대는 일찍부터 도시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오고가니 학교・병원・우체국・은행이 세워지며 도시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갖췄고, 산업이 발달해 역을 기점으로 경공업이 융성한다. 1935년에는 조치원 평리에 물 5000톤가량을 끌어 사용하는 정수장을 설치했다. 당시 조치원이 교통과 산업의 요충지로서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가능한 지표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으로 원도심 조치원은 또 다른 분기점을 맞는다.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가 대전 등 인근 도시나 정부세종청사 근처로 바뀌며 외면받다가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청년 크리에이터의 유입으로 젊은 감성을 입고 색다른 여행지로 변모하기에 이른 것이다.
변화의 구심점에 조치원문화정원이 있다. 오송역에서 차로 10분, 조치원역에서는 도보 15분 정도 거리에 놓인 공간은 1935년부터 2013년까지 시민에게 물을 공급했던 조치원정수장을 리모델링해 탄생했다. 지역 예술가에게 레지던시를 제공해 전시와 공연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방문자를 위한 정원 내부 투어,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 데다 회의, 세미나, 행사 공간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사용하도록 대관도 한다. 이제 조치원문화정원 이정주 대표와 입주 작가인 장승아 작가의 안내를 따라 구석구석 살핀다.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첫인상이 아기자기하다. 잔디밭을 앞에 둔 붉은 벽돌 건물 뒤로 6미터가 넘는 높이의 거대한 침전기와 여과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커뮤니티 공간 ‘뜰’, 창작 공간 ‘원’ 등 공간 대부분 정수장 시설과 건물을 고스란히 살렸다.
과거 정수장이었음이 단번에 느껴지는 곳은 전시 공간 ‘샘’. 정수 시설이 있던 지하 공간을 적절히 보수해 작품 전시나 소규모 음악 공연을 열도록 했다. 일상 속 공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장을 채웠다. 은은한 조명과 무채색 벽 덕분인지 작품에 빠르게 몰입한다. “천장 근처를 자세히 살피면 물때가 남긴 얼룩덜룩한 흔적을 발견할 거예요. 벽면의 커다란 파이프도 재미있습니다. 한때 물로 가득 찼던 곳임을 기억하길 바라 남겨 두었어요. 꼭 물속에 들어온 듯하다는 방문객도 많습니다.” 이 대표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린다. 10월에는 도자기와 고양이 초상화 그림을 다루는 전시가 예정되었다니 기대가 부푼다.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의 구조가 뚜렷한 기억 공간 ‘터’는 단장을 마친 뒤 10월 중에 카페가 들어선다. “정수장이라는 정체성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지도록 늘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민합니다. 학생, 주민과 함께 작업하면서 지역에 녹아들 때 감회가 새로워요. 조치원은 저에게 작업실이자 놀이터랍니다.” 도시에 매료되어 아예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겼다는 장 작가가 덧붙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조치원문화정원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상기한다. 조치원, 예술, 영감. 하나인 듯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단어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트로 감성 가득, 조치원테마거리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러 세종전통시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시장 안, 소박하지만 아늑한 조치원테마거리에서 추억 여행을 떠난다. 세종소상공인협동조합과 지역 주민, 대학생 등이 주도적으로 나서 시장 내 52미터의 짧은 유휴 공간에 옛 조치원을 재현한 곳인데, SNS와 인터넷에서 조치원의 숨은 여행지이자 포토 스폿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친근한 구멍가게와 작은 공방, 카페에서 정겨운 분위기가 흐른다. 옛 교복을 빌려 입은 채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1970년대까지는 이 자리가 시장의 중심이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변화가 생겨 지금은 시장 끝자락에 놓이게 되었죠. 창고처럼 여겨지던 공간이 주민의 힘과 노력으로 생기를 얻어 뿌듯합니다.” 세종전통시장에서 20년간 과채 가게를 운영해 온 세종소상공인협동조합 김성근 대표가 빙그레 웃는다.
조치원의 매력을 알리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활발하다. 원도심 일원에 자리한 로컬콘텐츠타운에서도 청년 크리에이터들이 힘을 모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거나 지역 특산주를 빚는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래된 도시의 이야기와 예술, 창작자의 열정은 언제까지나 조치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종 여행에서 놓치지 마세요
볼거리 조치원1927아트센터
옛 제지 공장을 재해석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에서 콘서트, 영화, 전시, VR 체험 등 각종 문화 행사를 누리는 경험이 특별하다. 다목적 홀과 연결된 카페 ‘헤이다’에서는 낮에는 커피와 브런치를, 저녁에는 수제 맥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문의 044-862-1927
볼거리 침산추월
조치원 도심에서 캠핑을 만끽한다. ‘침산리에서 바라본 가을 달’이라는 뜻을 가진 캠핑 체험 이색 카페이자 마을 야영장이다. 소시지, 옥수수, 가래떡, 마시멜로 등 간식을 구워 먹고 야영장과 옥상에서 캠프닉, 오토캠핑을 하며 색다른 추억을 만든다. 캠핑 도구도 대여한다. 문의 070-7777-8649
볼거리 조치원 파닭
가마솥에 바삭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에 잘게 썬 파채를 올려 함께 먹는 파닭은 세종전통시장에 위치한 '왕천파닭'과 '신흥파닭'이 원조다. 열기에 파가 익어 매운맛이 덜하고, 파 특유의 향이 닭고기와 어우러져 쉽게 물리지 않는다. 어느 가게를 가도 큰 닭을 사용해 양이 상당하니 놀라지 말 것.
볼거리 조치원 복숭아
이 고장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 바로 복숭아다. 조치원은 기름진 토양과 충분한 일조량이라는 최적의 생육 조건을 갖춰 1910년대부터 복숭아 재배가 활발했다. 높은 당도와 부드러운 과육으로 이름 높은 복숭아를 원물은 물론 빵, 와인, 디저트 등 다양한 형태로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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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거리 2024 세종축제
세종대왕과 그와 관련한 역사 속 인물을 주제로 세종호수공원 일원에서 축제를 연다. 세종대왕의 한글, 장영실이 이룩한 과학, 박연의 음악을 테마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WT 태권도 시범, 한글놀이터, 과학놀이터, 시민대합창 등을 알차게 준비했다. 축제 기간 내내 맛보기 불꽃 쇼가 펼쳐진다.
기간 10월 9일~12일 -
즐길 거리 2024 세종보헤미안뮤직페스티벌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보헤미안 정신을 추구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세종중앙공원 도시축제마당을 찾는다. 김창완밴드, 나상현씨밴드, 선우정아, 장기하, 최유리 등 현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역동적인 공연을 선사한다. 예년보다 스탠딩 존을 확대했으며, 서울·부산·대구 등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마련했다.
기간 10월 12일~13일
사진 제공 세종시문화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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