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타고 국경을 넘는 경험, 이것이 불가능한 한국인에겐 더욱 로망 같은 일이다. 슬로베니아 철도가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지나는 상품을 출시했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세 나라를 이동하는 이 열차의 요금은 단돈 8유로(약 1만 1900원). 30년 전에 동일한 경로로 이동하는 상품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5시간에서 2시간으로 시간을 단축해 다시 선보인다. 15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처음 건설한 철도 노선을 따라 달려 더욱 뜻깊다. 열차는 이탈리아 북동부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출발해 슬로베니아의 네 지역, 세자나·디바차·피우카·일리르스카비스트리차에 정차하고, 크로아티아 샤피아네와 오파티야마툴리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리예카에 도착한다.
열차가 닿는 두 번째 나라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는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다. 와인 생산지로도 역사가 깊은 곳인데, 기원전 켈트족이 이 일대에 자리 잡을 무렵부터 포도를 재배했다. 300년 넘게 이어진 북동부 도시 마리보르와 프투이의 와인 거래권 다툼 또한 이 지역 사람들에게 와인이 지니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 준다. 슬로베니아는 비파바 계곡의 오래된 품종 이스트리안 말바시아부터 레포스코, 피노 누아 등 다양한 포도 품종을 재배한다. 거의 모든 와인이 자국에서 소비된다니, 한 번쯤 맛보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른다.
다행히도 열차를 타고 세자나에 도착하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다. 비나크라시 와이너리를 방문해 와인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현지 와인을 천천히 음미한다. 아름다운 포도원 풍경을 둘러보며 슬로베니아의 전통 케이크 프리셰카 지비나치를 곁들여 먹는다면 그 순간이 더욱 또렷이 각인될 테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열차에 올라 가까운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아까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출발, 지금 슬로베니아야.” 이게 바로 국경도시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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