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반갑습니다. 8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4’ 중 하나인 <없는 시간>에 출연하셨죠. 콘셉트, 구성, 연출도 담당하셨다고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A. 선형적인 흐름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탈락한 시간을 탐색하는 작품입니다. 여러 신체가 맞서 겨루고 서로를 침범하면서요. 이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극장의 시간’에 대해 묻는 과정이었습니다. OTT, 쇼츠, 릴스가 유행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극장에 갈까, 문 닫힌 극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했어요. 혹은 극장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고민했고요. 극작가 김연재가 쓴 간단하고 거친 서사에서 출발했고, 관객이 시간을 만져 보도록 시각예술가 손현선의 작품을 극장으로 들여왔죠.
Q. 손현선 작가와는 세 번째 만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해요.
A. 손 작가는 회화를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가임에도 공연 예술의 언어와 방식을 몸으로 탐색해 보려는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5년 전쯤 몸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뷰 포인트’ 워크숍에서 처음 만나 몇 차례 워크숍에 함께 참여한 이후 동료 예술가들과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을 꾸려 가고 있어요. 각자 관심사와 생각을 공유하고 작업을 지켜보는 시간이 쌓여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나눈 대화는 그간 해 온 이야기의 연장이었지만, 연습실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극장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침범하고, 무너뜨리고, 모두 뒤섞인다’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Q. 무대 특성상 객석과 거리가 가까웠어요.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의 표정이 잘 보였을 텐데, 긴장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A.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관객의 팔다리가 배우의 팔다리와 함께 배치되었으면 했습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어 관객도 얼굴에 조명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쩌면 관객이 더 긴장되고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거예요. 부디 그 경험이 관객의 몸과 마음을 흔들었기를 바랍니다.
Q. 2023년에 출간한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에서 “연기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배우의 몸으로 탐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밝히셨어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나요?
A. 큰 토대가 되는 대답이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시기에 따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죠. 조금 더 표면으로 건져 올린 대답을 하자면, 요즘 저는 모든 개체의 신체를 조각내고, 그 조각난 신체들의 경합을 통해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Q.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무대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장르마다 어떤 매력을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A.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를 매체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겠더라고요. 장르의 매력이 곧 그 장르에서 연기하는 매력과 일맥상통한달까요. 연극은 극장에 모인 모두가 약속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 시간 동안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 좋습니다. 한편 감독이라는 하나의 눈이 작동해 전체를 장악하는 영화는 편집으로 모든 장면이 새롭게 조정되는 순간이 마치 마법 같아요. 드라마는 촬영 전에 대본이 다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찍으면서 뒤 내용을 알게 되죠. 그러니 사전에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해요. 극의 흐름을 바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매력 있고, 중요할 줄 알았던 장면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Q. 배우님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을 위해 앞으로 만날 작품 얘기도 들려주세요.
A. 하반기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와 넷플릭스 영화 <전,란>이 공개될 거예요. 두 작품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금은 내년 상반기에 방영할 드라마 <언더커버 하이스쿨>을 촬영하는 중이에요. 국정원 직원이 고등학교에 잠입해서 고종 황제 때 누군가 숨겨 놓은 금괴를 찾는 내용인데, 저는 비리를 저지르는 명문 사학의 이사장 역을 맡았습니다. 작품을 만들며 발견한 연기의 방식을 은밀하게 적용하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김신록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한 이후 연극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우스피스>, 드라마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 등 무대와 영상을 오가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고 있다.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하여 자기 세계를 확장해 가는 그는 2023년 배우 스물다섯 명과 두 차례 만나 연기에 관해 치열하게 묻고 답한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출간했다.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목표는 끝없는 사유로 새로운 질문과 계속 맞닥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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