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공놀이”라지만, 사랑한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는 끝내 아주 뜨겁게 사랑하고 만다. 한 경기당 아홉 번의 기회, 수많은 선택의 갈래, 운과 노력, 갈등과 화합, 승리와 패배,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인생을 닮은 공놀이.
사랑하는 대상을 직접 보고 싶으니 야구팬은 직관(직접 관람)을 간다. 지난 6월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 시즌 345경기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방구석 1열’을 벗어나 구장으로 가게 하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응원가다. 내 팀을 목 터져라 함께 응원하는 경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팀이 지역에 연고를 둔다는 특성상 지역색을 띤 노래를 불렀다. 롯데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 삼미슈퍼스타즈의 ‘연안 부두’, 해태타이거즈의 ‘남행열차’가 대표적이다. 이때 윤수일의 ‘아파트’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1982년 발표해 크게 히트한 노래는 야구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박수 치기 알맞은 4분의 4박자 신나는 리듬에, 구호를 넣을 적절한 여백을 확보한 ‘아파트’는 응원 맞춤 노래였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다음엔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쳐 오른다.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1985년 조용필이 부른 ‘여행을 떠나요’도 야구장으로 왔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사이사이에 구호를 외치는 식이다.
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응원도 점차 체계가 잡혀 갔다. 구단이 결성한 응원단이 공식 도구나 노래를 지정하고 응원을 이끌었다. 노래도 출전 명단을 소개하는 ‘라인업 송’이나 선수별 응원가 등으로 세분화했다. 가요, 팝송, 클래식 음악, 민요, 동요, 뮤지컬·광고·영화 음악, 군가까지 온갖 노래가 야구장을 채웠다. 노랫말은 승리, 최강 등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아타이거즈의 ‘사랑한다, 기아’, 한화이글스의 ‘나는 행복합니다’처럼 애정을 고백하는 노래도 많다. 지역색은 여전히 중요해 LG트윈스는 이용의 ‘서울’과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이어 붙인 ‘서울메들리’를, NC다이노스는 ‘컴 온 컴 온 마산스트리트여’를, SSG랜더스는 전통의 ‘연안 부두’를 이어받아 부른다. 키움히어로즈의 ‘영웅 출전가’, KT위즈의 ‘KT의 승리 위해’ 등 팀 이름에서 딴 응원가는 기본이다.
2017년 저작권 문제로 팬들에게 익숙한 응원가가 상당수 사라지면서 위기를 맞자 각 구단은 자체 노래를 만드는 한편, 수년에 걸쳐 협상을 지속했다. ‘약속의 8회’에 두산베어스 팬들이 염원과 격려를 담아 선수들에게 실어 보내는 노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감동을 어느 곡이 대체하랴. 어느 구단이든 이런 응원가, 특히 각별한 애정을 갖는 상징곡이 있다. 삼성라이온즈 팬들은 마침내 대표 응원가 ‘엘도라도’를 올해 돌려받았다. 7년 만에 다시 부르는 “최강 삼성 승리하리라”에 팬과 선수 모두 울컥했다.
실컷 웃고 때로는 울게 하는 마성의 공놀이, 야구. 이 여름에도 선수들은 가을 야구를 향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니 별 수 있나. 팬들이 야구장에 가서 무아지경 외쳐야지.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 기사에 구단이 나란히 나올 때는 가나다·알파벳순을 따랐으며, 지면 관계상 일부 응원가만 언급했음을 밝힙니다. 본문의 “그냥 공놀이”는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 <H2>의 대사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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