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1998년 한 이동통신 회사 광고 카피다. 지금껏 회자되는 문구와 더불어 한석규 배우와 청안 스님이 거닌 담양 대나무 숲도 관심을 모았다. 담양은 ‘대한민국 대숲 수도’라 해도 무방할 만큼 소쇄원, 죽녹원, 태목리, 삼다리, 만성리, 행성리 등 곳곳에 대나무가 울창하다. 쏴아 하고 댓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 은은한 향기. 싱그럽다는 말이 사전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경은 과연 ‘또 다른 세상’이라, 스마트폰 속 스쳐 지나가는 재밋거리를 ‘꺼 둘’ 만하다. 독특하고 그윽하면서도 청신한 분위기를 영상 제작자가 놓칠 리 없다. 담양 대숲에서 드라마 <일지매> 주인공이 일지매로 변신했고, <다모>의 남녀 주인공이 화려한 결투를 벌였으며, 영화 <알포인트> 전투 장면이 펼쳐졌다. 특별한 배경이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해 주었다.
정자와 원림 또한 담양의 상징이다. 자연 지형에 기대어 소박한 정자를 올린 소쇄원, 명옥헌 원림은 전통 정원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를 비롯해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은 글줄 아는 이라면 어떤 언어라도 끄집어내어 문장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단아한 화면이 극의 감흥을 더한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배경이 유독 눈길을 끌어 ‘여행을 부르는 사극’이라 평가받은 드라마 <환혼> 외 수많은 작품을 여기서 촬영했다.
수백 년 수령의 다양한 나무가 머리 위에서 그늘을 드리우는 관방제림, 20여 미터 높이 나무가 8.5킬로미터 거리에 도열한 메타세쿼이아길 등 담양의 초록은 곳곳에서 이어진다. 세상 어느 길이 이토록 아름다울까. 마침 여름이 왔다. 신록이 초록으로 무성해지고, 100일을 끊임없이 피고 진다는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사람은 결국 자연이며, 자연 안에서 가장 편안한 존재라는 사실을 담양에서 실감한다. 명옥헌 연못에 진분홍으로 흔들리는 배롱나무 꽃, 대숲에 이는 바람, 메타세쿼이아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고즈넉하면서도 영상과 어울리는 고장 담양을 잘 담아 낸 작품 몇 편을 골라 소개한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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