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충북 충주로 향한다. 수안보에는 약 3만 년 전부터 천연 온천수가 솟았는데, 이 물에는 칼슘·나트륨·마그네슘 등 인체에 이로운 광물질이 풍부하게 들었다. 그 때문인지 태조 이성계가 악성 피부염을 치료하려고 수안보 온천을 자주 찾았다는 기록이 남았다. 이 외에도 효능을 경험하고자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충주시에서 중앙 집중 방식으로 온천수를 공급하고 관리한다.
이 지역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하루를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온천 호텔 유원재를 만난다. 한국만의 온천 호텔과 문화를 만드는 목적으로 출발했기에 무엇보다 고유한 것에 주목한다. 하나의 객실을 한옥 한 채로 해석해 앞에는 마당이, 집과 집 사이에는 담장이 놓이는 구조로 설계했다. 정원에서 사색을 하고, 온천에서 긴장을 풀고, 레스토랑에서 건강한 기운을 채우는 과정으로 쉼의 여정이 이어진다. 방문하는 이가 몰입해야 하는 건 단 하나, 진정한 휴식이다.
물과 바람에 근심이 씻겨 내려가고
열여섯 개 객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퇴계 이황의 마음을 다스리는 서른 가지 비법에서 이름을 빌려 와 ‘유순’ ‘겸화’ ‘청심’ ‘수정’이라 지었다. 방 분위기와 구조가 저마다 다른데, 이는 재방문한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중 ‘겸손하고 화목하라’라는 의미를 가진 겸화로 들어섰다. 상큼하면서도 포근한 유원재의 시그너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겸화는 탐색하는 재미가 있는 객실이다. 기대감을 안고 문을 열어 찬찬히 살핀다. 침실과 거실이 연결되고, 거실 옆에는 다실이 자리해 넓은 공간에서 차를 내린다. 뜨거운 물을 붓고, 김이 오르는 걸 지켜보고, 서두르지 않고 한 모금 마시는 과정 그 자체가 명상이다.
객실에 딸린 중정이나 야외 정원에서 차 한 모금과 풍경 한 자락 음미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정원으로 나서면 자작나무가 보인다. 줄기 껍질이 종이처럼 얇고 하얗게 벗어져 여기에 연인들이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했다. 이 낭만적인 나무가 바람에 몸을 살랑거린다. 그 모습을 마주하며 함께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평화롭다. 겸화를 비롯한 모든 객실에는 처마가 있는데, 비와 눈을 막아 줄 뿐 아니라 아늑하고 사적인 느낌을 더한다.
모든 객실에 노천탕을 마련했지만, 하트 모양 탕은 겸화에서만 유일하게 이용 가능하다. 한 발씩 조심스레 담그고 탕에 앉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지고 점차 편안해진다. 온천이 선사하는 여유로움이다. 대중탕과 대여탕도 있어 온천수의 축복을 누린다. 대중탕은 두 가지 타입으로, 오전과 오후에 여탕과 남탕이 바뀐다. 다양한 온천을 모두 경험해 보라는 배려다. 바위로 둘러싸인 탕 안에서 야외 풍경을 보고,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들으니 자연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더 사적인 공간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싶은 경우 일행과 단독으로 사용하는 대여탕을 권한다.
여름이 특별해지는 이유
유원재가 고객을 대하는 진심은 미식에서도 드러난다. 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셰프 포함 서른 명 넘는 직원의 손길이 거쳐 간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호텔 풍경처럼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사계절 다른 음식을 선보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특색 있는 구성과 담음새로 오감을 만족시킨다. ‘다이닝 미선’은 이 호텔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원재의 상징인 미선나무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한식에 기반해 정성을 담아 만든 요리 아홉 코스를 독립된 공간에서 음미한다. 시작을 알리는 맞이 차림에는 충주 사과 막걸리가 함께한다. 말린 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남은 농축된 단맛이 그 후로 들어오는 막걸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거창 유기 잔이 가볍게 맞닿은 후 청명한 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려 퍼진다. 호화로운 금빛 잔이 내는 경쾌한 소리에 이어 줄줄이 등장하는 음식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귀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여름이라고 온천을 밀어내는 건 아쉽다. 체온과 비슷한 37~38도로 수온을 맞춰 계절에 맞는 온천을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기 때문이다. 일명 ‘저온탕’에 들어가면 깨닫는다. 어느 계절이든 온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어떤 계절보다 풍성한 초록빛 향연이 우리를 넘치게 반겨 준다. 온천욕을 즐긴 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킬 때, 모든 것을 가졌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밤에는 색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맑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지만 또렷이 반짝이는 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구태여 무언가가 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차올라 마음이 넉넉해진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저마다 자리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풍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여행객을 토닥인다. 유원재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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