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앉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내면에 파동이 인다. 지그시 감은 눈, 은은한 미소가 긴 세월을 지나서도 현대인의 마음을 건드린다. 수백, 수천 년을 건너 온 유물이 주는 감동은 그 유물처럼 유일무이하다. 사람은 현재를 산다, 과거와 함께.
이렇듯 소중한 문화재 이름이 지난달 국가유산으로 바뀌었다. 재화 개념에서 접근한 기존 단어를 역사와 정신을 포함한 개념으로 변경하고 유네스코 등 국제 표준에 맞추려는 의도다. 국가유산 정책이 또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았다. 때로는 사람들 생각을 앞서 이끌고, 때로는 사회 통념의 뒤를 따라가며 국가유산 정책은 변화해 왔다.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한자 일색 이름을 쉽게 고치거나 국보 ‘1호’ 같은 지정 번호 체계를 폐지한 것이 그 예다.
한국의 국가유산 관련 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시행했고, 해방 이후인 1955년 일제가 정한 보물을 국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고 국보와 보물을 나누었다. 많은 이에게 여전히 익숙한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이 이때 탄생했다.
국보 지정 기준은 법이 명확히 밝힌다. 인류 문화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 국보는 국보이니만큼 영광스러운 이름을 부여받는 과정이 지난하다. 먼저 소유자가 신청하고, 지자체가 검토해 추천하면 국가유산청이 조사한 뒤 국가유산위원회가 논의한 후 지정을 예고한다. 여기서 30일 이상 지나 다시금 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최종 판가름한다. 국보급 유물이 어디선가 나타날 리 없으니 대개 보물이 심사를 통해 국보로 승격하는데, 지난해 말 강원도 삼척 죽서루와 경남 밀양 영남루가 보물 지정 60년 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다른 국가유산 지정 과정도 이와 비슷하게 까다롭다.
어제는 오늘의 근거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다. 어제를 잘 보존하고 소화해 내일로 전달할 책임이 오늘 우리에게 있으며, 국가유산은 우리가 지킬 어제의 최소한이다. 어제 살아간 사람의 흔적이자 이 땅에 우리만 살지 않았다는 증거, 국가유산. 이제 재화 개념의 문화재가 아닌 유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언제까지나 국가유산은 재물로 환원 불가능한 자산이다. 반가사유상과 부석사 무량수전, 수많은 유산 덕분에 우리 역사와 문화는 물론 정신이 부자가 되었으므로.
+ 최근 지정된 국가유산 만나러 떠나요
국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뉜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삼척 죽서루와 경남 밀양 영남루가 보물 지정 60년 만에 국보로 승격했다. 누각 자체도 아름답고 주변 경치도 일품이다. 전북 고창 문수사 대웅전, 경북 의성 고운사 가운루, 충북 보은 법주사 천왕문 등 전국 곳곳의 유서 깊은 사찰 건물과 문은 보물에 이름을 올렸다. TV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나와 친근해진 전남 신안 만재도는 주상절리가 자연유산으로 4월에 지정 예고되었다.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해안 절벽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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