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김혜순의 이름이 해외 시상식에 올랐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시 회장 리베카 모건 프랭크는 <날개 환상통>의 영문본 <팬텀 페인 윙스(Phantom Pain Wings)>를 이렇게 소개한다. “가부장제와 전쟁 트라우마에 대한 슬픔, 개입을 광활하고 본능적인 복화술로 구현한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대담한 작품입니다.” 이 기쁜 소식에 붙은 수식어만 여럿이다. ‘한국 작가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등 김혜순 시인과 작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여기저기 한가득이다. 김혜순이라는 시인을 향해 수만 개의 플래시가 터졌고, 한국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여기서 ‘시 부문 번역본 최초’라는 중요한 키워드에도 주목해야 한다. 베일에 가려진 번역이라는 분야를 향해 작은 날갯짓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를 어렵게 여긴다.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이 어떤 독자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통해 내용을 해석하는 소설과 달리 시는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구성할 수 있기에 읽는 사람마다 감상도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시는 어떻게 번역하는 걸까. 더군다나 김혜순의 시는 다른 시인들도 입을 모아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일을 훌륭히 해낸 최돈미 번역가의 목소리를 들어 볼 차례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시인이기도 한 최돈미 번역가는 <죽음의 자서전> <슬픔치약 거울크림> <불쌍한 사랑 기계> 등 김혜순 시인의 작품 다수를 영어로 옮기며 오랜 인연을 맺었다. <죽음의 자서전> 영문본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한 인터뷰 영상에서 가장 힘들게 번역한 작품으로 최근 수상의 영예를 안은 <날개 환상통>을 꼽았다. 그 이유에서 한국 시 번역의 어려움을 발견한다. 바로 ‘화자의 생략’. 영어는 주체가 뚜렷하지만 한국 시는 화자를 생략하거나 복수의 화자가 등장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명의 목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국 시 번역가를 조명한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서 이어지는 맥락을 발견했다. 한독 번역가 박술도 비슷한 호소를 한다. 독일어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는데, 한국 시는 화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그는 고민 끝에 이탤릭과 하이픈(-)을 써서 화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찾았다. 여기에 한국과 서구 현대 시의 차이를 언급한다. 한국 현대 시는 기본적으로 산문 형태라 “호흡이나 리듬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이미지와 말투의 미세한 변화로 시적 리듬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반면 서구 언어로 된 시는 “현대 시라고 해도 발음, 리듬, 라임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덧붙인다.
번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일반 독자들의 오해도 많다. ‘한국어 표현을 그대로 살릴 수 있나?’ 문화권에 따라 쓰는 표현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을 거친 후 그 표현이 사라질 가능성을 제기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김이든 시인의 말을 빌려 답하자면 “전 세계 모든 언어에는 모서리가 존재”한다. 그는 2020년 전미번역상을 수상하면서 본인 작품의 경우 번역을 거쳐 새로운 느낌을 얻었다는 말을 남겼다. 단순히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의 영역”이라 덧붙였다. 그렇다. 번역은 창조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서 여러 번역가가 공통적으로 번역은 창조라고 말한다. “무의식에서 오는 창조 행위”(안톤 허), “시를 쓰는 제일 쉬운 방법이 번역”(박술).
번역가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최돈미 번역가는 “시의 뜻만 아니라 시의 톤‧목소리‧리듬을 영어로 다시 살리는 일, 즉 언어의 감각과 경험을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답했다. 김혜순 시인이 퇴고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로 언급했듯, 그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듬’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다른 언어로 바뀌어도 리듬만은 그대로 전해지도록 번역가는 고심했을 테다. 특유의 리듬과 목소리가 영어 문화권 사람에게 전달됐을까. <팬텀 페인 윙스>를 손에 들고 묵독하는 이 옆에서 표정을 살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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