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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따라 철도박물관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열차는 달린다. 경기도 의왕 철도박물관에서 생생한 철도 역사를 보았다.

UpdatedOn March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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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 의왕역에 내려 천천히 걸었다. 도로 옆에 놓인 철길로 이따금씩 전철이 지나며 덜컹이는 소리를 낸다. 철길 너머에는 잔잔한 왕송호수가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고 있다. 열차와 어우러지는 풍경, 차오르는 낭만에 함빡 젖어 발걸음이 가볍다. 전철 소리를 음악 삼아 15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기차가 보인다. KTX 캐릭터 키로, 아로가 그려진 벽화를 따라 모퉁이를 도니 파란 간판에 적힌 다섯 글자, ‘철도박물관’이 입구에 다다랐음을 알린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차의 세계로

1935년 철도박물관 개관 당시 건물이 자리했던 곳은 사실 의왕이 아니다. 학교, 병원, 도서관, 차량 기지 등 철도 관련 기관 대부분이 물류의 중심이자 철도의 요람인 서울 용산에 있었다. 그러니 박물관을 그곳에 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광복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용산은 집중포화를 받고 만다. 그 여파로 철도 관련 기관이 소멸되거나 파괴된다. 그렇게 3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988년, 철도박물관은 지금 자리에 건물을 세우고 문을 연다.

정문을 넘어서자마자 눈이 바빠진다.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알록달록한 기차가 차례로 늘어섰다. 야외 전시장에 전시한 차량은 무려 30량이 넘는다. 똑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선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위엄이 느껴지는 증기기관차 등 모형이 아닌 진짜 유물을 마주한다. 까맣고 거대한 증기기관차 앞에 서면 절로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은 제 역할을 다해 고요히 잠자고 있지만 과거에는 쏜살같이 달리며 사람과 화물을 날랐을 것이다. 박물관을 크게 에둘러 설치한 철로에도 가 본다. 선로 위에 놓인 디젤동차, 수도권 전동차가 당장이라도 바퀴를 구르며 나아갈 듯하다. 지금 운행하는 열차와 확연히 다른 색깔, 모양이 신기해 창부터 객차 외부에 새겨진 옛 한국철도공사 로고까지 하나씩 뜯어본다. 역사의 어떤 날을 똑 떼어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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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박물관이 보유한 열네 개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중 열한 개는 야외 전시장에 위치한다. 기관차나 객차 외에 화물을 싣는 화차, 동력차, 기중기, 보선 장비도 문화유산에 해당한다. 올해 2월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새로 이름을 올린 디젤난방차 905호 역시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밋밋하고, 실제로 승객을 태운 차량도 아니지만 추운 겨울 기차 안이 따뜻하도록 난방을 도맡았다. 히터나 에어컨이 온도를 조절하는 현재와 달리 1980년대 후반까지 증기난방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하고도 고마운 유산이다.

박물관 뒤편, 올해 1월 정비를 마치고 관람객에게 공개한 서울 전차 역사관도 둘러볼 만하다.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 도심을 운행했던 노면 전차의 레일과 모형을 전시했다. 광화문 월대 복원 중 땅에 매립된 전차 선로를 발견하고 이를 옮겨 놓은 것이다. 레일은 물론 침목, 자갈까지 땅속에 묻힌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니 더욱 눈길이 간다. 철도용 레일과 전차용 레일을 가까이 두어 둘의 모양을 비교하도록 한 부분도 재미있다. 전차와 전철의 차이점, 전차의 역사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한 설명판과 정교한 전차 모형을 꼼꼼히 살피며 옛 경성을 상상한다. 영화, 드라마로 봤던 흑백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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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함께 달린 기차

실내는 1, 2층으로 나누어 각종 유물과 사료를 정리했다. 전시장은 철도 역사실, 차량실, 전기실 등으로 이어진다.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는 중앙홀에는 파시형 증기기관차를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전시했다. 벽면에는 1896년 경인선 철도 부설을 시작할 때 찍은 커다란 흑백사진을 걸어 두었다. 모형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철도 역사 초기에 등장하는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구 서울역 사진을, 오른쪽에는 고속철도 KTX-산천 사진을 배치해 그간 발전한 철도 기술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한다. 이제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이동해 전시를 관람한다. 1899년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개통부터 경인철도를 최초로 달린 모가형 증기기관차, 7형까지 개선을 거듭하며 널리 쓰인 미카형 증기기관차를 거쳐 KTX-산천에 이르기까지. 120년이 넘는 역사가 철도와 함께 펼쳐진다. 프랑스,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밀려온다.

열차가 달리는 원리를 설명한 차량실에는 전동 열차 운전 체험실을 마련했다. 전진하고 후진하는 스틱, 기적을 울리는 버튼과 전조등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장치까지 다양한 기능을 구현해 실감 나는 경험을 한다. 2층은 철도 전기·신호를 주제로 한 전기실과 선로·교량 등 철도 구조물을 다룬 시설실, 수송 서비스실, 영상·체험실, 특별 전시실로 구성해 알차다. 철도 건널목을 재현해 관람객이 차단기를 조종하도록 한 내부에서 땡땡 소리가 들린다. 역대 기관사 제복, 시대별 열차표 등 흥미로운 것이 많지만, 실내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단연 철도 모형 디오라마실이다. 가로 길이만 측정해도 14.8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디오라마에는 총 일곱 개 열차가 있다. 증기기관차, 통일호, 비둘기호, KTX 등 각각 다른 시대를 풍미한 열차들이 가상의 서울에서 날쌔게 달린다. 조그만데 정교하기까지 한 모형 기차가 움직이는 광경에 눈을 떼기가 어렵다.

기차의 세계를 유영하다 현재로 돌아온다. 박물관에서 나와 야외 전시장을 가로지르는데, 문득 등 뒤에 놓인 기차가 배웅해 주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타는 열차도 먼 훗날 유물이 되어 미래를 사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대를 보여 주고, 잘 가라며 배웅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생긴 열차가 선로 위를 누비고 있을까. 다시 전철을 타러 의왕역으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서 덜컹이는 전철 소리가 들려온다.

철도박물관 꼭 봐야 할 유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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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표 
단선 구간에서 열차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제작했다. 한 구간에 하나의 열차만 운행하도록 기관사에게 부여한 열차 운전 허가증이다.

통표
단선 구간에서 열차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제작했다. 한 구간에 하나의 열차만 운행하도록 기관사에게 부여한 열차 운전 허가증이다.

  • 통표 
단선 구간에서 열차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제작했다. 한 구간에 하나의 열차만 운행하도록 기관사에게 부여한 열차 운전 허가증이다.통표
    단선 구간에서 열차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제작했다. 한 구간에 하나의 열차만 운행하도록 기관사에게 부여한 열차 운전 허가증이다.
  • 쌍신폐색기 
단선 구간에서 사용하는 통표와 달리 복선 구간에서 역과 역 사이 열차의 안전 운행을 위해 도입한 신호 제어장치다.쌍신폐색기
    단선 구간에서 사용하는 통표와 달리 복선 구간에서 역과 역 사이 열차의 안전 운행을 위해 도입한 신호 제어장치다.
  • 경인철도 레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개통 시 제작한 레일로, 실제 쓰던 것을 옮겨 왔다. 옆면에 제작한 회사와 연도가 새겨져 있다.경인철도 레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개통 시 제작한 레일로, 실제 쓰던 것을 옮겨 왔다. 옆면에 제작한 회사와 연도가 새겨져 있다.
  •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기관실과 객차가 연결된 대통령 전용 차량으로, 두 차량의 겉모습이 똑같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운행했다.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기관실과 객차가 연결된 대통령 전용 차량으로, 두 차량의 겉모습이 똑같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운행했다.
  • 대통령 전용 객차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것을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해 1970년대까지 사용한 객차다. 내부에 탁자, 침대 등을 구비했다. 대통령 전용 객차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것을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해 1970년대까지 사용한 객차다. 내부에 탁자, 침대 등을 구비했다.
  • 디젤난방차 905호 
객차 난방을 목적으로 개조한 특수 차량이다. 난방차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각 객실로 보내 온도를 높였다. 올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디젤난방차 905호
    객차 난방을 목적으로 개조한 특수 차량이다. 난방차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각 객실로 보내 온도를 높였다. 올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미카3형 증기기관차 161호 
주로 화물용으로 운행하다 1967년을 마지막으로 종료했다. 동해남부선에서 관광 열차 견인에 쓰이기도 했다.미카3형 증기기관차 161호
    주로 화물용으로 운행하다 1967년을 마지막으로 종료했다. 동해남부선에서 관광 열차 견인에 쓰이기도 했다.

 INTERVIEW 

철도 역사 살피러 의왕으로 오세요

철도박물관 전 관장 배은선

Q. 기차 관련 업무에 임하신 지 40년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A.
1983년 5월 철도 공무원에 임용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역무원, 수송원, 운전원, 차장, 역장 등 여러 직책을 수행하며 철도 업무에 매진했습니다. 그 후 박물관 위탁 운영 업무를 보다가 2022년 2월, 정식으로 박물관장이 되었어요. 2023년 말까지 관장으로 근무하고 다가오는 6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관장으로 일하는 동안 철도박물관을 손보고 꾸민 기억이 선명하네요.

Q. 박물관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지요.
A.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철도박물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박물관 바로 옆에 경부선 철길이 놓여 있고, 직선으로 8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왕역이 자리합니다. 전동 열차부터 시작해 무궁화호, 새마을호, ITX-새마을, KTX, KTX-산천, ITX-마음 등 다양한 여객열차가 지나가요. 이뿐 아니라 컨테이너 열차, 벌크시멘트 열차, 자갈 열차 등 화물열차가 운행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Q. 박물관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팁을 알려 주세요.
A.
철도문화해설사를 찾으세요. 양질의 교육을 이수한 철도문화해설사가 유물에 깃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철도 모형 디오라마 시연이 끝나면 박물관 해설을 진행합니다. 따뜻한 봄이 되었으니 밖으로도 나가야겠지요. 실내 전시장은 물론 야외 전시장의 열차 유물도 해설하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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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남혜림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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