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예쁜 건물에 마음을 빼앗겨 좁은 골목을 걷다가 문득 골목 끝에 웅장한 산이 눈에 걸린다. 봄에도 꼭대기에 눈이 녹지 않아 위는 하얗고 아래로는 초록이 눈부신 알프스다. 프랑스 남동쪽에 있는 그르노블은 파리에서 고속열차 테제베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소도시다. 알프스의 관문이라는 별명답게 샤르트뢰즈, 베르코르, 벨돈 등 알프스에 속한 세 개 산맥이 도시를 보호하듯 감싸 거리에서, 건물에서 알프스를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도시는 산맥이 만나는 가운데, 이제르강이 흐르는 평평한 지점에 생겨났다. 로마 때로 기원을 잡는다니, 그 시절에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비슷했구나 싶다.
그르노블 사람은 자연이 내어 준 평지에서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 왔다. 이 도시에 가장 흔한 이동 수단은 자전거다. 서울 강남구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13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도시를 자전거도로가 구석구석 잇는다. 대여 시스템이 간편해 여행객도 이용하기 좋다. 수년에 걸쳐 나무 5000그루를 심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등 친환경 도시로 가꾸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22년에는 ‘유럽 녹색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의 도시에는 로마 시대의 벽 일부와 12세기에 지은 노트르담대성당을 비롯해 유서 깊은 건축물이 많다. 프랑스대혁명 발발 직후인 1796년 문을 연 그르노블 박물관은 루벤스, 마티스, 샤갈, 앤디 워홀 등 거장의 걸작을 망라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무려 1739년,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개업한 카페 ‘라 타블 롱드’는 이 고장 출신인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가 드나들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의 비밀 아지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커피에, 역사와 지성의 향기까지 향유하는 카페다.
1934년 운행하기 시작한 이 도시의 명물 케이블카를 빠뜨려선 곤란하다. 동글동글 물방울 모양이 귀여운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75미터 포트리스산 위 바스티유 요새에 도착하면 파노라마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알프스산맥 아래 작은 도심이 그림엽서처럼 어우러진다. 사람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풍경이다. 도시 전체가 녹지, 공원이라 해도 무방할 그르노블에 봄이 온다. 세상 가장 기분 좋은 바람은 자전거 타고 맞는 바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길을 달리는 이에게 이 계절 알프스 꽃바람이 온몸으로 안겨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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