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학전이 곧 폐관한다고 알려진 후 시작된 <학전 어게인 콘서트>. 그동안 학전을 이끈 김민기 대표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마련한 릴레이 형식의 헌정 무대다. 학전에서 뻗어 나간 한국 공연 문화의 뿌리가 어떠한 고난을 마주해도 지속되리라는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학전 출신 가수와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배우 이정은은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 나와 릴레이 공연 중 하나인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가 매진되는 게 올해 소원이라고 말하기도. 그들의 진심이 통했다. 3월 15일 폐관 예정이었던 소극장은 완전히 사라지는 운명은 피했다. 학전은 어떤 곳이기에 수많은 예술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을까.
1991년 3월 15일, 김민기 대표가 설립한 학전은 극단이자 극장으로 출발했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 그 이름에 걸맞게 여러 예술인을 키워 냈다. 배우 설경구는 공연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로 학전에 발을 디뎠고, 이정은도 당시 포스터를 붙였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오페라의 유령>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승우와 최근 영화 <서울의 봄>으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 준 황정민 또한 학전을 대표하는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출연자였다. 학전은 1990년대 아이돌 문화 열풍으로 무대에서 밀려난 가수들에게도 공간을 내주어 안치환, 박학기, 장필순 등 개성 있는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예술 학교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학전은 폐관을 알린 이유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을 언급했지만 <학전 어게인 콘서트> 총감독을 맡은 가수 박학기는 “사실 학전은 애초에 유지될 수 없는 극장”이라 말한다. 소극장 규모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공연을 자주 올려야 하는데, 김 대표는 소위 ‘돈 되는 공연’을 목표하지 않았다. 자본 문제로 공연이 변질되는 걸 우려해 지원도 마다했다. 노래 ‘아침 이슬’과 ‘상록수’ 저작권료로 공간을 지켰다. 공연의 의미를 중시하는 그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속 적자가 났음에도, 문화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전국 여러 지역의 폐교를 돌면서 공연을 선보였다. 그의 굳은 신념 덕에 학전의 대표 어린이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는 지난달까지 열여덟 번째 시즌으로 관객과 만났다.
예술 공간의 폐관 소식이 놀랄 일은 아니다. 서울 창신동 백남준기념관도 관람객 감소로 폐관 위기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회생했다. 세실극장 역시 재정난으로 폐업 수순을 밟던 중 국립정동극장이 새 운영 주체가 되면서 명맥을 이었다. 예술극장 나무와물, 종로예술극장 등 대학로를 지키던 소극장들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단순히 예술인이 설 무대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작은 공간에서 극에 몰입한 배우의 숨소리를 듣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고조되는 감정을 느끼고, 땀으로 흠뻑 젖은 배우의 눈앞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경험은 관객에게도 소중하다. 관객이 배우에게 직접 호응을 보낼 수 있는 예술 장르는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공연이 유일하다.
“벽체 하나는 남겼으면 좋겠다.” 학전블루 소극장 입구에 세워진 고 김광석을 기리는 기념비만은 지키고 싶다고 말한 김민기 대표. 학전이 계속 운영된다고 해도 그의 뜻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공간을 유지한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논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오래도록 지켜 내고자 애쓴 가치를 안다면, 이제 그 책임을 나누어 질 차례. 무대에 선 예술인이 흔히 하는 말이 떠오른다. “마지막 무대라 생각하고 임했다.” 마지막 무대처럼 열심히 공연하겠지만 마지막은 아니길. 예술인의 미래는, 예술을 누릴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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