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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계절

여름, 할머니 생각나는 시절에 두고두고 꺼내 먹을 콘텐츠를 모았다.

UpdatedOn July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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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질 때, 나는 할머니의 작은 방을 떠올린다.” 심윤경 작가는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의 문을 열며 이렇게 썼다. 사랑. 할머니라는 존재만이 베풀 수 있는 평화롭고 담담한 애정이 우리를 길러 낸다. 요 몇 년 새 할머니의 존재감과 입체적인 면모를 고찰하게 하는 이야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남다른 지혜, 풍부한 경험, 무르익은 손맛, 빛나는 재치와 통찰로 삶을 관조하는 이들의 모습 앞에서 삐딱했던 마음은 겸손해지고 눈시울은 자꾸만 뜨거워진다. ‘노년 여성’이라는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 우리 시대의 할머니를 만나 볼 시간이다.

  • <할머니의 그림 수업>

    도서 | 최소연 지음
    김영사 펴냄

  • <작은 정원>

    다큐멘터리
    이마리오 감독

1 예술 하는 할머니

여든. 화가도, 영화감독도 될 수 있는 나이다. 제주도 선흘마을의 여덟 할망은 그림 90여 점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써서 책 한 권을 완성했다. 이들의 그림 선생님이 엮은 <할머니의 그림 수업>이다. 즐겨 입는 옷, 혼자 사는 집, 수염이 부숭부숭한 옥수수, 젊은 시절에 산 궤짝···. 삶을 화폭에 옮겨 놓았을 뿐인데, 보는 이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아마 그 속에 고인 세월이 눈에 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은 정원>은 강원도 강릉 명주동 마을의 할머니 소모임 ‘작은 정원’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익히다가 영상 촬영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좌충우돌하던 이들은 끝내 다큐멘터리 창작이라는 대단원에 이른다. 누군가 촬영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엔 “내가 가도 기록이 남아 있잖아”라고 응수하고, 곱게 핀 철쭉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며 “얘 고맙다, 또 피어 줘서”라고 읊조리는 할머니 감독님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 <도토리 문화센터 1>

    도서 | 난다 지음
    문학동네 펴냄

  • <팬인데 왜요?>

    웹툰 | 요나 지음
    네이버 웹툰 제공

2 취미 부자 할머니

할머니의 취미 생활을 엿본다. 대기업 유니버스 그룹의 야심가 고두리 부장은 프로젝트를 성사하기 위해 취미의 성지 ‘도토리 문화센터’에 신분을 숨기고 가입, 사군자 수업을 수강한다. 단행본으로 나온 웹툰 <도토리 문화센터 1>의 주인공은 고 부장의 첫 번째 타깃인 사군자 수업 수강생 정중순이다. 평균연령 70세, 조금 수상하고 별난 ‘문센’ 할머니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 일흔일곱 윤순이 할머니는 어느 날 문득 아이돌 그룹 라이트의 노래 ‘어른 아이’를 듣고 사랑에 빠진다. 웹툰 <팬인데 왜요?>는 ‘덕질’이라는 취미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할머니의 성장기를 그린다. 이웃사촌이자 ‘덕질 메이트’ 소진의 독려로 생애 처음 스마트폰을 구매한 뒤 ‘자컨(자체 제작 콘텐츠)’을 시청하기 위해 ‘모이라이브’ 앱을 설치하는 순이의 독백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게 뭐라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지, 할 수 있다고 되뇌며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지.”


  •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

    도서 | 예하, 임홍순 지음
    수오서재 펴냄

  • <할머니의 레시피>

    유튜브 채널
    @grandmaarchives

3 요리하는 할머니

주방 경력 수십 년. 할머니 손길이 닿으면 뭐든 맛있어진다. 경남 진주 시골 마을에서 떡집을 운영하던 임홍순 할머니는 손녀 예하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총동원한 요리 수업을 연다. 레시피 북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는 음식으로 연결된 두 사람이 함께한 사계절의 기록이다. 애호박 샌드위치, 두릅 브루스케타, 텃밭 피자처럼 정겨운 재료로 만드는 서양식 메뉴부터 무떡, 콩죽, 율란처럼 오직 할머니에게만 배울 수 있는 향토 음식을 망라했다. 유튜브 채널 <할머니의 레시피>는 시간이 흘러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손맛을 영상으로 아카이빙한다. 김영순 할머니의 해삼무침, 홍명옥 할머니의 메밀조베기, 곽숙자 할머니의 문어먹장국, 지영자 할머니의 옥수수범벅···. 음식 만드는 할머니의 영상을 보노라면 유독 손에 눈길이 가는데, 고운 물결 같은 잔주름에 마음이 일렁인다. 눈물샘과 침샘이 동시에 열리는 희귀한 경험도 하게 된다.


  • <반에 반의 반>

    도서 | 천운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 <없는 층의 하이쎈스>

    도서 | 김멜라 지음
    창비 펴냄

4 인간, 여성, 할머니

어린아이 입장에서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은 종종 충격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어른이라고 별 수 없다. 할머니에게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무성적인 존재, 아가페적 사랑을 베푸는 신화적 존재에 가깝게 묘사되어 온 중장년 여성의 삶을 남다른 시선으로 응시한 두 권의 소설이 있다. <반에 반의 반>에 등장하는 이야기 아홉 편은 위장 이혼부터 금연 캠프에 이르는 다층적 사건을 아우르며 나이 든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낸다. 그런가 하면 <없는 층의 하이쎈스>의 주인공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사귀자 할머니로, 등기부에 주소가 기록되지 않은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에 거주하면서 손녀 아세로라를 거둔다. 은밀하고 기묘한 사귀자의 인생 역정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기구한 삶을 상상하게 한다.


  • <오늘도 주인공>

    TV 프로그램 | 문신애, 송가희 연출
    tvN STORY

  • <할매 이즈 백>

    TV 프로그램 | 이세진 연출
    MBC

5 목소리 내는 할머니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본격 ‘이야기 구연 서바이벌 게임’을 표방하는 <오늘도 주인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6070 여성이다. 오디션을 거쳐 합격한 할머니 예술인 열여섯 명이 뮤지컬, 밴드 음악,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경유해 리드미컬한 이야기극을 선보인다. 일회성 프로그램에서 그치지 않고, 우승팀을 주요 출연진으로 내세운 전국 순회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또 한 명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이용수다. 지난 3∙1절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할매 이즈 백>은 그가 <쇼 미 더 머니> 시즌 10 우승자 조광일과 가수 이미자의 노래 ‘여자의 일생’을 부르는 장면을 공들여 보여 준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던 시대여, 이제는 안녕.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할머니의 노래에, 이야기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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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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