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기묘하다. 도시 중심부에 넓은 권역을 차지한 고분군은 경주의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이다. 거대한 무덤이 불쑥불쑥 나타나 모르는 척할 수도 없다. 영화 <경주>의 주인공 공윤희가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는 살기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하듯. 아주 오래전 대단한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 그런 사람조차 죽어 흙으로 돌아갔다는 증거. 인간이 밟고 선 어지간한 땅이란 대부분 선조가 살다 물려주었다지만, 경주는 이 사실을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시키는 도시다. 긴 세월이 선사하는 압도적 감각은 오로지 경주만의 것이다. 935년 신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000년 넘게 지나서도 인간은 그 무덤 사이사이에서 먹고 마시고 일상을 영위한다. 무덤가를 걷고, 무덤을 배경에 두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흔하고도 엄중한 말이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수도로 1000년, 그 뒤 수도가 아닌 세월로 1000년 이상을 보냈으니 도시 자체가 유적, 박물관, 보물이다. 경주는 오랜 시간 제1의 수학여행지였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그 귀하다는 유물과 장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수많은 학생이 경주에 청춘의 추억 한 자락을 심고 돌아왔다. 그러다 훗날 문득 경주를 떠올린다. 학창 시절, 나와 친구의 풋풋했던 모습과 함께. 다시 찾은 경주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고분을 거니는 기분이, 불국사를 보는 감상이. 안내판을 꼼꼼하게 읽게 되고, 과거와 미래와 삶과 죽음을 사색하게 된다. 두 번째 ‘수학’여행이다.
고분군이 경주의 첫인상이라 하여 도시 분위기가 무거운 것만은 당연히 아니다. 먼 옛날 먼저 간 이의 무덤은 지금 여기의 삶에 유한하고도 애틋한 낭만을 부여한다. 몇 걸음마다 마주치는 유물과 유적지도 마찬가지다. 많은 영상 제작자가 이런 이유로 경주를 선택했다. 옛 무덤 앞에서 하는 고백의 무게라…. 사랑, 용서, 슬픔, 회한이 여기서는 조금 더 짙고 아름다우며 절실해진다.
신라 외의 경주도 다양한 면모를 갖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서원과 양동마을은 조선의 정취를 오롯이 전하고, 동쪽에서는 동해를 따라 소박한 어촌이 마음을 잡아끈다. 경주 여행기에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만 해도 영화 같고 뮤직비디오 같다는 말이 즐비하다. 나이가 몇 살이든 박혁거세보단 한참 젊어 모두가 청춘이 되는 경주. 그곳의 진한 감수성을 담은 작품을 만난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DRAMA
<나쁜 엄마>
#화랑의언덕
검사로 일하던 주인공 강호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일곱 살 수준의 지능과 기억을 가진 채 엄마 집으로 돌아온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강호. 동네의 쌍둥이 꼬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검사 최강호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신라의 화랑 김유신이 수련했다는 전설을 지닌 화랑의언덕 탁 트인 전망과 따스한 초원이 주인공을 축복하는 듯하다.
MUSIC VIDEO
<파랑새의 꿈>
#불국사
고해 같은 세상에 불국정토를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신라인이 지은 불국사에서 퓨전 국악 그룹 비단이 노래한다. “나는 것밖에 모르던 새는 바람 속에서만 편히 쉰다네. 여윈 몸 하나 편히 누울 곳 없이 떠다니면서 겨우 몸을 가누네.” 노래가 어찌 이리 고울까. 1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시로 서러워지곤 하는 생을 아름다운 공간과 음악이 위로한다.
DRAMA
<응답하라 1988>
#경주역, 첨성대 등
수학여행 에피소드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목적지는 열에 아홉이 경주다. 수학여행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도시에 ‘응팔’의 청춘들이 방문했다. 떠들썩한 여행 중에도 첫사랑은 피어오르고 시청자는 설레는 여정에 동참한다. 익숙한 단체 사진 배경 경주역은 이제 신경주역에 역할을 내주었지만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단장해 손님을 맞는다.
MOVIE
<마리 이야기>
#감포항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 바로 과거다.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 엄마와 살아가던 바닷가 마을의 소년. 등대에서 우연히 발견한 구슬이 그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감포항의 다정한 풍경은 이 추억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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