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도시를 만든다 하면 무엇부터 할까. 과거엔 성벽을 먼저 쌓았다. 한양은 그냥 도시도 아니고 수도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길한 땅인지, 수많은 백성이 먹고살기 부족함 없는 환경을 지녔는지, 전쟁을 대비할 만한 지형인지를 심사숙고해 새로운 나라의 중심으로 서울을 택했고 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이어 성을 지었다. 1392년 개국한 조선이 한양도성을 축조한 때가 1396년. 네 개 산이 이루는 산세를 빌려 비스듬한 원으로 건축한 도성이 곧 한양이라는 도시의 경계가 되었다. 지금은 서울 중심의 일부인 총길이 18.6킬로미터 도성이 현대인 눈에는 ‘귀엽게’ 다가올지 모르겠다만 이는 걸어 다니던 시절의 규모다. 조선 시대엔 이 ‘큰’ 성에 입성해 세상을 논하고 경영하겠다며 수많은 사람이 공부하고 경쟁했다.
그런 이에게나 도성 안 사람에게나 잠깐의 여유를 선사한 유희가 순성놀이다. 산을 이용한 도성은 경치가 일품이었다. 조선의 학자 유득공은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안팎의 멋진 경치를 구경하는 놀이”라 기록했다. 실로 모든 산은 이름이 같은 산이되 모두가 각각 다른 산이고, 위치와 고도에 따라 보이는 풍경도 천차만별이다. 치열한 도심에서 물러나 찬찬히 걷고 감상하는 일은 눈을 즐겁게 하고, 빽빽한 마음에 여백을 내 주었을 것이다. 언제는 울창한 숲 공기에 취하고, 어디서는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느냐고 불평했다가, 어느새 탁 트인 전망에 그 아픔을 시원하게 잊은 채 웃고, 마침내 거대한 숭례문 등 대문에 이르러 감탄한다. 전쟁을 비롯해 온갖 희로애락 겪은 도시에 600년 전 구획해 놓은 한양도성 원형이 남았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올봄은 선조처럼 즐겨 보자. 순성놀이 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완주 인증서와 배지 받기
먼저 스탬프 운영 장소에서 지도를 수령하고, 한양도성 네 개 구간을 걸으면서 스탬프와 인증사진을 찍으면 완주 인증서와 배지를 받을 수 있다. 계절별로 4회 완주한 이에게는 메탈 배지를 준다.
문의 02-779-9870(한양도성 유적전시관) seoulcitywall.seoul.go.kr
1코스 백악산 구간
창의문~혜화문 4.72km
2시간 45분 소요
북악산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조선 시대엔 백악산이라 불렀다 하여 구간 이름도 그렇게 정했다. 북소문인 창의문을 출발해 북대문인 숙정문을 거쳐 혜화문으로 이어진다. 해발 342미터백악산은 성벽이 놓인 네 개 산 가운데 가장 높으며, 숲도 그만큼 깊다. 1968년 1월 간첩이 침투한 뒤 40년 가까이 출입을 통제하다 2007년 개방했다. 총탄 흔적이 남은 1·21사태소나무가 그날의 역사를 증언한다. 일제강점기에 건립해 대법원장 공관, 서울시장 공관으로 쓴 건물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로 변모해 손님을 맞는다.
2코스 낙산 구간
혜화문~광희문 3.19km
1시간 30분 소요
해발 124미터 산이 이런 전망을 보여 줄 수가 있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간이다. 고도가 낮고 길이 닦여 있어 산행이나 걷기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다. 경사를 높이다 조금씩 아래를 향할 즈음, 이화마을의 정다운 지붕 너머 서울 도심이 들어오고 좀 더 지나서는 성 바깥쪽으로 창신동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흥인지문(동대문)이 가까워지는 지점, 도로를 내느라 끊긴 성벽이 아쉽지만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온전한 옛 모습을 관람하며 마음을 달랜다. 흥인지문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공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 한 그림에 담겼다.
3코스 남산 구간
광희문~숭례문 5.43km
2시간 50분 소요
도시 변화로 일부 멸실된 성벽은 장충체육관 부근에서 다시 나타난다. 해발 271미터 남산을 오를 때다. 줄지은 계단에 힘이 부치다가도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원한 전망에 씩씩한 마음을 먹게 된다. 한양도성은 태조 이성계가 세운 이후 세종, 숙종, 순조 대에 보수했는데 후대로 올수록 축성 기술, 돌 다듬는 기술이 발전해 초기 도성과 중‧후기 도성을 비교하는 일도 재미있다. 남산 구간에서 각각 다른 시기 성벽이 나란히 놓인 부분을 찾아보자. 숭례문(남대문)으로 내려가기 전에도 꼭 뒤를 돌아서 도성 곡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해야 한다.
4코스 인왕산 구간
숭례문~창의문 5.3km
2시간 55분 소요
평지 구간은 건물과 도로를 짓느라 성벽이 멸실된 데다 소의문(서소문)과 돈의문(서대문)까지 사라져 안타깝다. 그 대신 정동의 근대 건축물이 자아내는 고유의 분위기가 그윽하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이 1960~1970년대 마을 풍경을 전한다. 건너편에는 김구 선생의 저택인 경교장이 보존돼 있어 관람 가능하다. 이제 산행이다. 경복궁이 저 아래 보이더니, 범바위‧기차바위‧치마바위를 지나 윤동주문학관에 이른다. 시인이 대학생 시절 인왕산을 자주 찾았다 한다. 이 풍경이, 오늘의 이 걸음이 시가 되었을까. 마침내 창의문이다. 끝과 시작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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