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남들 다 본다는 인기 시리즈를 통근 길에 몰아 본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음 때문에 자막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신비로운 음악이 흐른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등 부대 상황을 설명하는 문구가 어색하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미처 인지하지 못한 내용을 텍스트로 따라잡을 수 있어 편리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화면 전반의 시청각 정보를 문자화해 보여 주는 폐쇄형 자막은 본래 청각장애인용으로 고안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서비스지만 비장애인에게도 편익을 준다.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배리어프리가 모두를 이롭게 한다. 배리어프리란 장애인, 고령자 등 일상에서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을 맞닥뜨리기 쉬운 이들을 위해 그 장벽을 허물자는 움직임이다. 현재 배리어프리 논의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야는 단연 영상 콘텐츠다. 이미 모든 시리즈에 폐쇄형 자막을 제공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한해 오디오 화면 해설까지 서비스한다. 왓챠, 티빙 등 국산 OTT 플랫폼도 이에 발맞추고자 자막과 화면 해설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지난달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IPTV 사업자에게 한국 수어, 폐쇄형 자막 등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물리적 배리어프리 서비스가 절실한 부문 중 하나는 여행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지난해 홈페이지 ‘열린관광 모두의여행(access.visitkorea.or.kr)’을 개설하고 다양한 열린관광지 정보를 제공해 왔다. 열린관광지란 장애인, 고령자는 물론이고 임신부와 영·유아 동반 가족 등 대한민국 인구 약 30퍼센트를 점유하는 관광 약자를 위해 편의 시설과 보행로 및 체험 시설 등을 갖춘 여행지를 뜻한다. 열린관광 대문 페이지에 가면 두 가지 전자책을 내려받을 수 있다. <열린관광 추천 코스 20선>은 여행지 정보는 물론 접근성이 좋은 객실 찾는 법 등 요긴한 여행 팁을 망라하고, 촉각·큰글자·점자·음성으로 제작한 <특별한 관광 가이드북>은 경북 고령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충남 부여 궁남지, 전북 전주 한옥마을, 경기도 수원화성, 경남 거제 칠천량해전공원 등 열린관광지 다섯 곳에 대한 정보를 아우른다.
신체와 밀착한 패션 영역에서도 배리어프리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나이와 성별과 체형과 장애 유무 등을 초월해 모두가 편안한 옷을 추구하는 것을 유니버설 패션이라 하고,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의 운신을 고려해 디자인한 옷을 어댑티브 패션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 브랜드 하티스트와 태평양물산의 리바이브, 뇌병변 및 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 의류를 생산하는 베터베이직 등이 꼽힌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달리 보면 블루오션인 산업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다. 누구나 즐기고 싶은 콘텐츠를 마음껏 누리고, 가고 싶은 곳을 실컷 여행하고, 입고 싶은 옷으로 한껏 멋 부리기를 꿈꾼다. 모두가 힘을 보탠다면, 그 어떤 장벽도 허물 것이다.
+다양한 몸, 넓은 가능성
장애인과 이동 약자를 위한 여행을 계획한다면 모아스토리(moa-story.com)의 영상 콘텐츠와 두리함께(duritrip.com)의 여행 상품이 영감을 줄 것이다. 액티비티 특화형 유니버설 여행사 무빙트립(movingtrip.co.kr)은 휠체어 이용자인 신현오 대표가 직접 체험하고 기획한 여행 상품을 서비스한다. 이제 웹툰도 배리어프리 서비스로 즐겨 본다. 네이버는 보이스오버, 토크백 등 음성 기능으로 베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매년 가을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로 만나 왔는데, 이달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도 국내 국제영화제 최초로 배리어프리 상영작을 공개할 예정이다. 앞으로 더 많은 몸이 더 넓은 세계와 닿기를 기대한다.
<KTX매거진>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