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관광자원화 사업 2020년 부산이 한국 최초로 국제관광도시로 선정되며 시작한 사업으로,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가진 로컬 여행지를 발굴하고 관광 자원을 육성한다. 현재 부산진구 전포공구길, 수영구 망미골목, 영도구 봉산마을 마실길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01 전포공구길
얼었던 것이 녹는 즈음, 거리에도 온기가 차오른다. 움트는 봄기운을 따라 바깥에 나온 사람들로 생기가 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야기는 사람 사이를 맴돌고 길과 건물에 스며든다. 그러면 우뚝 선 건물과 닳고 닳은 길들이 몸짓과 흔적으로 지난 이야기를 다시 사람에게 전한다. 이야기를 건네는 길을 찾아 부산 전포공구길로 가는 여정을 꾸린다.
부산 여행지 하면 떠오르는 전포카페거리는 ‘전리단길’이라는 애칭을 얻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이름만을 기억하기에는 아쉽다. 전포카페거리를 포함하는 넓은 구역, 전포공구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성을 내세우는 카페, 맛깔난 요리를 내어 놓는 식당으로 활기를 띤 거리에서 약간 더 걸어 나가면 옛 흔적과 마주한다.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카페 옆, 나란히 선 공구 상점들이 그것이다. 전포 거리는 본래 공구 상점과 수리점으로 유명했다. 수리공의 실력은 물론, 상점 물건의 품질까지 훌륭해 거리는 이곳을 찾는 손님으로 붐볐다. 바쁜 가게 주인은 식사를 제대로 챙길 겨를 없이 늘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들의 배를 채우던 우유는 라테, 아인슈페너 등 커피로 모습을 바꿔 여전히 전포 거리를 방문한 이들을 반긴다.
건물 틈으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것이 골목의 묘미다. 셔터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전포공구길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린 곳은 화사한 색감 덕에 포토 존으로 소문났다. 건물 벽, 길모퉁이에도 공구를 상징하는 그림과 조형물이 있다. 걸음걸음마다 신이 나서 자꾸만 앞으로, 옆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뚝딱뚝딱, 두 손으로 만드는 유리공예품
미로처럼 생긴 골목을 파고든다. 전포공구길에 자리 잡은 공방 유리풀 스테인드글라스로 향하는 길. 건물 2층에 있어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이곳은 스테인드글라스 원데이 클래스, 유리공예 수업 등을 진행한다. 문을 조심스레 열자 고양이 세 마리와 청년 공예가가 맞이한다. 공방 구석구석이 섬세하게 만든 유리공예 작품으로 꾸며져 신비롭다.
이제 수업에 참여할 시간. 니트릴 장갑과 앞치마, 팔 토시를 착용한다. 오늘 도전해 볼 것은 혹등고래 모양 선캐처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일종인데, 창문에 걸어 두면 햇빛이 통과해 아름다운 색을 낸다. 원하는 디자인과 색을 고른 후, 도안에 따라 유리를 유리칼로 절단한다. 유리를 다루는 만큼 조심, 또 조심한다. 이후 메탈 러닝플라이어, 브레이킹 플라이어 등 공예 도구를 사용해 조각 단면이 날카롭지 않게 다듬는다. 조각을 고래 모양으로 연결시킬 동테이프를 감은 후, 납땜 작업과 후처리를 거치면 선캐처가 탄생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예품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뿌듯하죠? 유리공예의 매력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지금이에요. 유리에 찔리고 베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완성한 뒤 예쁜 결과물을 보면 스스로가 대견하답니다.” 박선현 공예가가 햇빛에 선캐처를 가져다 대자 빛이 아롱져 바닥과 벽을 수놓는다. 손으로 만든 추억이 반짝반짝 빛난다.
TRAVEL TIP
유리공예가가 추천하는 전포공구길 카페, 이터널선샤인
유리풀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로, 포근포근한 수플레 팬케이크와 고소한 소금빵이 일품이다. 봄에는 각종 식물로 카페 내·외부를 꾸며 놓아 푸릇푸릇한 배경을 두고 커피를 마신다.
문의 070-4042-2940
02 망미골목
여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망미골목을 권한다. 갤러리가 많아 예술이 꽃피는 골목으로 유명한 망미골목은 전포공구길에 비해 한층 느긋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언뜻 조용하지만 곳곳에 로스터리 카페, 책방, 갤러리, 공방 등이 숨어 있다. 널찍한 골목을 걷다 보면 망미골목의 상징이자 포토 존인 개 모양 조형물과 만난다. 목줄에 달린 펜던트에는 ‘망미’를 새겨 놓았다. 익살스러운 개의 표정처럼 짓궂은 동작을 취해 인증 사진 한 컷을 남긴다. 조형물 뒤쪽에는 복합 문화 공간 ‘비콘그라운드’가 펼쳐진다. 수영 고가도로 아래 공간을 재생한 곳으로 쇼핑, 식사, 운동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쓸모를 잃은 공터를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공터에서 공간. 한 끗 차이가 골목과 주민, 방문자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비콘그라운드를 둘러보았다면 마음에 드는 공간을 섭렵할 차례다. 책방 중 하나를 골목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천천히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책장을 쭉 훑어본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펼치고 활자의 세계에 빠진다. 상상 속을 한참 유영하다 고심 끝에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골목으로 나서기 무섭게 어디선가 향긋한 커피 향이 밀려온다. 그 향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한 로스터리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소소한 동네 풍경을 감상해 볼까, 커피 향 그윽한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고소한 커피, 멋진 문장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지금. 지쳤던 마음은 서서히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지는 중이다.
마법 같은 과학, 책방 동주
망미골목에는 특별한 책방이 있다. 밖에서 볼 땐 책방이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편집 숍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더 깊숙한 곳에 보란 듯이 놓인 현미경이 시선을 붙잡는다. 과학실인지 책방인지 헷갈린다면 ‘책방 동주’를 정확하게 본 것이다. 이름만 보고 문학을 다루는 서점이라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곳은 한국 1호 자연과학 전문 책방이자 연구실이다.
책방지기인 이동주 대표는 과학을 전공했다.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마법 같기도 한 과학이건만 사람들은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게 할 방법이 없을까?’ 이 작은 생각이 책방을 세웠다. 그림책, 전문 서적, 에세이, 소설 등 양질의 과학 정보가 담긴 책은 가리지 않고 모았다. 수장룡을 좋아해 그 모습을 본떠 책방 로고도 직접 그렸다. 그렇게 다섯 해가 지나 책방 동주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2층에는 생물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실을 누구나 보도록 열어 두었고, 다락방 같은 3층은 무드등과 어두운 벽지로 천문학 도서를 읽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로 꾸몄다. 책이 놓인 위치까지 의미를 담아서 전시했다. 책방에서는 과학 세미나와 강연, 과학책 스터디가 열리기도 한다. 원소주기율표를 활용한 깜짝 이벤트도 진행해 책이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넘친다. 마법 같은 과학 이야기가 가득한 책방에서 판타지 영화 <해리 포터>의 배경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과학을 알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TRAVEL TIP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망미골목 갤러리, 이젤갤러리
전시장과 창작 공간 역할을 모두 소화하는 ‘이젤갤러리’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쉼터다. 진행 중인 전시 정보는 갤러리 공식 블로그를 참고하자. 3월 8일까지 김선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문의 051-753-4808
해가 뉘엿거리더니 금세 바다와 집이 금빛으로 변한다.
공방 안에서는 봉산마을의 해 질 녘 풍경과 꽃차가 어우러진다. 모든 것이 노란빛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03 봉산마을 마실길
부산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영도 봉래산으로 향한다. 산 아래 들쭉날쭉한 언덕에 집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영도 봉산마을은 조선소 사업이 호황을 누릴 때 번성한 곳이었으나, 산업구조의 변화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마을 사람이 하나둘 떠나갔다. 한때 400채가 넘는 집 중 87채가 빈집이었다고 하니 그 공허함이 쓰라렸을 법하다. 마을이 다시 웃음소리로 채워진 것은 2019년부터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 ‘빈집 줄게, 살러 올래’를 진행해 빈집들이 체험 공간, 갤러리, 책방 등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고, 경사가 급한 언덕을 오른다. 숨이 차오를 때는 영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한숨 돌린다. 마을을 모험하듯 누비면 적산 가옥을 개조한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목조 선박 모형 제작 체험을 하는 목공소와 도자기 공방 등 보물 같은 공간을 마주한다. 걷는 기쁨도 만만치 않다. 봉산마을의 특징인 골목 정원, 담벼락 사이를 넘나드는 귀여운 길고양이가 카메라를 꺼내게 한다. 집과 길 사이사이로 비치는 청아한 바다는 또 어떤가. 여행자들은 탄성을 지르고 멈춰 서서 사진 찍기를 반복한다. 반나절만 머무르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마을 리조트로 간다. 리모델링을 거쳐 근사한 숙소로 거듭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 봉산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간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루프톱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밤이 내리면 따뜻한 차 한잔으로 하루 동안 쌓인 여독을 푼다. 무궁무진한 빈집의 변신으로 마을이 화기애애하다.
비밀의 화원, 봉산캠퍼스
손 대신 미각을 이용한 체험도 있다. 분홍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향이 코를 간질인다. 나무 선반에는 알록달록한 꽃차를 유리병에 담아 진열했다. 꽃차 공방 ‘봉산캠퍼스’는 2019년 빈집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이다. 꽃차 제작 수업은 물론 한방 약차 제다 수업이 이뤄지고, 마을 주민들의 모임 장소나 은퇴 코칭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봉산캠퍼스에서 가장 인기인 수업은 꽃차 퍼스널 티 블렌딩 클래스다. 우선 목련, 맨드라미, 팬지 등 한국에서 재배하고 채집해 만든 꽃차 열두 가지를 모두 맛본다. 그런 다음 효능, 색, 맛 등을 고려해 자신에게 딱 맞는 차를 제작한다. 노란 수색이 예뻐 목련꽃차와 마리골드꽃차를 넣고, 구수한 맛을 내기 위해 둥굴레차를 추가한다. 기관지에 좋다는 진피차도 보탠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블렌딩 꽃차가 차곡차곡 병에 담긴다.
차가 우려지는 동안 서현옥 대표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차는 두 번째 우릴 때가 가장 맛이 좋아요. 그러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마시는 거죠. 차를 마시는 상대와 눈 맞추고 대화도 하고요.” 쪼르륵, 찻잔에 물 닿는 소리가 공간과 마음을 울린다. 해가 뉘엿거리더니 금세 바다와 집이 금빛으로 변한다. 공방 안에서는 봉산마을의 해 질 녘 풍경과 꽃차가 어우러진다. 모든 것이 노란빛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TRAVEL TIP
꽃차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봉산마을 공방, 우리동네 공작소 목금토
봉산마을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나무, 쇠, 흙 등 자연에서 온 재료를 활용해 도자기를 빚는 공방이 나온다. 친절한 도예가의 설명과 함께 국그릇, 컵, 캐릭터 접시 등 원하는 것을 만들어 본다.
문의 0507-1305-9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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