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풀풀 날리는 낡은 극장 안.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필름을 비추어 보는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지완, 직업은 영화감독이다.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어 놓지 못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필름 복원 작업을 맡게 된다. 한국 영화사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이 제작한 <여판사>의 일부 분실된 필름을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지완은 점차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맞닥뜨린다. 빛바랜 흑백사진, 근사하고 싱그러웠던 옛 영화판 청년들, 셀룰로이드 필름 뭉치, 영사기로 영화를 상영하는 아날로그 영화관….
영화 <오마주> 줄거리다. 지완은 수소문 끝에 지역의 오래된 극장을 뒤져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 마술적인 순간의 무대로 등장하는 극장은 세트가 아닌 현존하는 건물이다.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 위치한 원주 아카데미극장. 1963년 개관한 이래 성업했으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면서 2006년 영업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개관한 원주의 단관 극장 몇 곳이 그즈음 모두 헐렸음에도 이곳만은 살아남았다. 영사실은 물론 극장 소유주 가족이 살던 살림집과 정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원형을 간직한 단관 극장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원주시는 지난 1월 이 건물을 매입했다. 원주도시재생연구회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2016년부터 시민들과 함께 극장 보존 활동을 펼친 결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문화 거점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성과가 유독 반갑게 느껴지는 까닭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영화관이 폐관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건축물 보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행정 절차를 밟아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뜻이다. 최근 팬데믹과 OTT 콘텐츠 성장으로 대형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고 있다지만,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영화관은 보다 빠르게 소멸 중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이 영업을 종료했다는 소식은 또 한 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단관 극장으로 시작해 오늘날까지 생존한 지역 영화관은 이제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광주 동구 광주극장, 경기도 동두천 동광극장, 인천 동구 미림극장은 개관 이래 지금껏 단일 상영관으로 영업 중이고, 한국 최초 근대 공연장으로 알려진 인천 중구 애관극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멀티플렉스로 변모했다. 살아남기는 했으나 앞으로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또한 그렇다.
“지난해 초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가 조직돼 모금 운동 ‘100인 100석’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3주 만에 1억 원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건물 매입까지 이르렀지만, 원주시가 재생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 한누리 사무국장은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게릴라 가드닝’ ‘기억 교환소’ ‘방 탈출’ 등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아카데미 공유 프로젝트’가 큰 호응을 얻어 극장 보존 운동의 의의를 환기했습니다. 현재는 필름 영사기 수업을 진행 중이고, 12월에는 교육 수료생이 직접 보조 영사 기사로 참여하는 필름 상영회를 열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극장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해 나갈 겁니다.” 부디 그러하기를,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 본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아카데미극장을 활용한 원도심 활성화 포럼, 아카데미극장 보존 필요성에 대한 설문 조사, 단관 극장 주제 기획 전시회 및 영화 제작, 고전 영화 상영회, 재생 방안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시민에게 알려 왔다. 그 결과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공동 주최한 ‘이곳만은 꼭 지키자’ 캠페인에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했다. 현재 아카데미극장을 재생하기 위한 시민 의견을 모으고 있으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 <안녕 아카데미>를 팔로하고 ‘시민 한마디’에 메시지를 남기면 보존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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