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은 미처 산맥을 넘지 못했다. 늦은 장마가 한반도 허리께를 덮칠 즈음, 소백산에 안긴 경북 영주 풍기 땅은 기묘하리만큼 평온한 모습이었다. 잘생긴 소나무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사이로 금계천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였고, 그 속엔 선계의 풍정이 깃들어 있었다. 두 발을 계곡 물에 담갔다. 차갑고 저릿한 감각이 온몸에 흐른다. 몸가짐이, 사상이 절로 꼿꼿해진다. 시선은 어느새 벼랑 위 금선정에 닿는다. 울퉁불퉁한 지형에 맞추어 설계한 까닭에 모든 기둥의 길이가 제각기 다르다던가. 자연을 대하는 선인들의 태도엔 어찌 그리 지극한 멋과 여유가 배어 있는 걸까. 늦더위를 식히는 탁족의 시간, 두서없는 말을 주워섬기는 과객 하나가 있었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영주역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풍기역에도 정차한다.
인간과 인삼을 품어 기른 땅, 풍기
선비들의 놀이터, 금선정은 조선 정조 때 풍기군수로 재임한 이한일이 이 지역 출신인 선배 학자 금계 황준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금선정 뒤꼍에는 금계가 글 읽고 노닐던 처소 금양정사가 있다. 금계의 후손들은 이곳에 조상의 위패와 그의 스승 퇴계 이황의 위패를 함께 모셔 놓고 해마다 제를 올린다. 이런 명당에 터를 닦아 준 조상이니 기리고 드높여야 마땅할 것이다.
명당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금선정이 위치한 이곳 금계마을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예언서 <정감록>이 꼽은 십승지 중 제1승지로 유명하다. 승지란 본래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명당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 십승지는 산수가 훌륭함은 물론 재난을 피해 온전히 몸을 숨길 수 있는 열 곳의 피난처를 이른다. 소백산 자락의 풍요로운 산림자원, 금계천에 넘실거리는 물과 드넓은 농지가 백성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을 것이다.
사람을 품고 기른 금계마을은 사람을 닮은 약용식물 인삼의 생육 환경으로도 더할 나위 없었다. 서늘한 기후,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를 지닌 덕에 조직이 치밀하고 향이 강한 삼이 났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는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다. 그는 소수서원을 세운 위인이기 전에 누구보다 백성을 긍휼히 여긴 위정자다. 공납으로 고통받던 백성을 지휘해 소백산에서 자생하는 산삼 종자를 금계동 임실마을에 심어 인삼을 재배하게 한 것이 바로 그였다. 주세붕의 혜안이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풍기 사람의 삶을 돌보고 있다.
인삼을 수확하는 가을, 풍기 읍내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흐드러진다. 올가을은 더 특별하다. 2022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잔치를 찾는 여행자라면 풍기역 근방에서 짧게 산책을 즐겨도 좋을 것이다. 금계리 풍기 인삼 시배지에서 금계로를 타고 죽 내려오면 풍기역에 이르는데, 예스러운 서체로 쓴 ‘풍기’ 두 글자와 함께 커다란 인삼을 그려 넣은 급수탑과 풍기역 광장을 지나서 곧장 인삼로가 펼쳐진다. 인삼로 한편엔 풍기인삼시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풍기읍치둘레길이 뻗어 간다. 총 일곱 구간으로 이루어진 벽화 거리인 풍기읍치둘레길의 첫 구간 너븐들거리는 풍기 인삼을 주제로 삼았다. “인삼은 오장의 부족한 기를 채워 주고,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켜 눈을 밝게 하며, 허약하고 기운이 약함을 보한다.” 인삼의 효험을 기록한 <동의보감> 한 대목부터 인삼 재배 과정과 그 역사, 풍기 인삼 농가의 면모를 그린 알록달록한 벽화가 자꾸 눈길을, 발길을 잡아 끈다.
수면 위의 평화, 평은
풍기에 금계천이 있다면, 평은엔 내성천이 있다. 경북 봉화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영주 평은면과 예천 보문면 일대를 지나 낙동강과 합류한다. 2008년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으로 선정되었고, 예부터 금빛 모래가 흘렀다고 해서 사천(沙川)이라고도 불렀다. 모두 옛일이다. 2016년 12월, 내성천이 굽이치던 평은면 용혈리․강동리․금광리 일원은 최대 저수량 1억 8000만 톤 규모의 중형급 다목적댐인 영주댐이 완공되면서 역사의 물길 속에 깊이 잠겼다. 영주호 아래 수몰된 마을의 흔적과 역사는 용혈삼거리 근방에 위치한 영주댐물문화관에서 짧게나마 훑어볼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평은면의 길고 긴 이야기와 눈부신 자연을 온전히 만나려거든 용마루공원으로 가야 한다. 담수 후에도 여전히 잠기지 않아 지붕처럼 솟아오른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결과물이 용마루공원이다. 약 16만 제곱미터(4만 8400평)의 드넓은 공원은 크게 1구역과 2구역으로 나뉜다. 금강마을과 동호마을 사이, 방문자의 집을 낀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전망대와 카페테리아가 우뚝 선 용마루 1공원이 있다. 공원 주차장 아래 계단을 따라 이어진 두 개의 다리를 건너면 용마루 2공원에 닿는다. 아치교인 용미교는 우아한 곡선이, 현수교인 용두교는 직선과 곡선이 이루는 웅장한 공간감이 두드러진다. 용두교가 끝나는 지점에 나타난 작은 누각이 손님을 반긴다. 여기부터 본격적인 공원 탐방로가 펼쳐진다. 영주호를 옆에 낀 탐방로엔 숲 내음이 그윽하다. 이따금 길바닥에, 탐방객의 정수리에 도토리를 떨구는 참나무가 양옆으로 시원스레 자라나 있어서다. 나무 덱 길이 끝나면 조촐한 기념비 광장이 보인다.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영주댐 수몰지 이주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혔다. 그 모습을 얼마간 지켜보았다. 비석 너머엔 벤치 몇 개가 옹기종기 놓여 있어, 그곳에서 다리를 쉬어 가기로 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만 귓가에 찰랑거리는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옛 평은면의 모습을 그려 본다. 햇살을 난반사하는 모래톱, 느릿느릿 굽이치는 모래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만 귓가에 찰랑거리는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옛 평은면의 모습을 그려 본다.
햇살을 난반사하는 모래톱, 느릿느릿 굽이치는 모래내···.
어제와 내일의 평은역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건물 하나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평은역이다. 해발 135미터, 수몰 지구 안에 위치해 영영 수장될 위기에 처한 옛 평은역사를 물 위로 옮겨 놓은 것이다. 1941년 영업을 시작한 평은역은 1990년대 이후 화물열차를 주로 취급해 오다가 2007년 6월에 이르러 여객 수송 기능을 상실했고, 2013년 3월 28일 폐역이 되었다. 찾는 이는 드물었지만 오랜 세월 잘 보존된 건물이 아담하고 아름다웠던 까닭에 TV 프로그램에 왕왕 등장하곤 했다. 이전과 함께 복원 공사를 한 뒤로 옛 건물의 호젓한 정취는 찾기 어려워도, 앞으로 오래도록 새로운 이야기를 축적하며 그만의 역사를 만들어 갈 평은역이다.
용마루공원에 머무는 동안 자전거 여행자를 자주 마주친다. 영주댐 일주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영주호를 살뜰히 휘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없어도 좋다. 문평로 건너 용혈폭포가 보이는 지점에 영주시에서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 정거장이 있으니, 여기서 자전거를 빌려 영주댐 일주도로를 달리면 된다. 이왕 달리는 김에 영주호 오토캠핑장에 여장을 풀고 호숫가에서 적요한 밤을 맞는다. 광공해 없는 까맣고 말간 하늘, 깊고 푸른 숲이 자아내는 낭만을 만끽하면서.
기차와 함께 흐르는 역사, 관사골
“죽령을 넘어서 영주역으로 들어오던 증기기관차는 늘 힘에 부쳐서 이런 소리를 냈다고 해요. 칙, 푹, 칙, 푹. ‘칙칙폭폭’보다 무거운 소리죠.” 류명희 문화관광해설사의 실감 나는 재연에 웃음이 터진다. 관사골협동조합 입구 담벼락에 부조로 설치된 기차의 커다란 앞머리를 마주하자니,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열차의 도착>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도 든다. 스크린으로 기차를 처음 마주했을 19세기 사람들의 당혹감, 철도가 놓이면서 새 시대를 맞이했을 옛 관사골 사람들의 흥분과 기대감을 잠시나마 헤아려 보았다. 도시와 문명, 처음과 시작을 표현하기에 기차만큼 강력한 상징물도 없을 것이다.
1940년대, 영주는 이제 막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관사골이 자리했다. 관사골이란 말 그대로 철도 관사가 모여 있는 골짜기란 뜻이다. 1941년 영주역이 문을 열고 중앙선이 개통하기에 앞서 역 뒤편 골짜기에 관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작은 부락을 이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십수 채가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두서길 위에 나란히 자리한 5호(두서길 57), 7호(두서길 63) 관사뿐이다. 두 관사의 모습은 관사골협동조합에서 마카점방과 관사골 온실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서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일본식 주택의 전형을 띤 5호, 7호 관사는 철도 공사 기술자의 숙소로 쓰였다. 옛 시절은 빠르게 잊혔고, 관사골의 존재감도 차츰 희미해졌다. 관사골이라는 이름이 세간에 다시 오르내린 건 2010년대 중반 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되고부터다. 가파른 골목길 바닥엔 샛노란 페인트로 칠한 철길이 놓였고, 빛바랜 담벼락 위에는 알록달록한 기차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렇게 관사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야외 갤러리가 탄생했다.
골목길 바닥엔 샛노랗게 칠한 철길이 놓였고,
빛바랜 담벼락 위에는 알록달록한 기차와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관사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야외 갤러리가 탄생했다.
관사골이 갤러리라면, 광복로는 박물관이다. 관사가 자리한 두서길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죽 내려가니 광복로에 닿는다. 구도심의 생활사가 깃든 건축물이 한데 늘어선 곳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석간 가옥이다. 명나라 황제의 어머니 병을 고쳐 준 값으로 99칸 집을 받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집이다. 현재는 별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광복로 한복판에 위치한 영광이발관도 시선을 끈다. 1930년대에 국제이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고, 시온이발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가 한 이발사가 이곳을 인수하면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영광이발관이라는 상호로 성업 중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8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 온 이발관은 그 자체로 귀하디귀한 사료다.
물론 관사골에는 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버티고 선 것이 많다. 부용대가 그렇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를 지내던 때, 관사골 뒷산 기슭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았는데 그 풍광이 하도 곱고 아름다워 이곳을 부용대라 불렀다. 인조 14년에는 영천 고을 출신의 생원진사시 합격자 55인이 여기 모여 계를 만들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부용대에서 이름을 딴 부용계가 이 모임의 이름이었다. 부용정에 올라 어둠이 한 겹 내린 영주 구도심을 굽어본다. 퇴계가 보았을 서천 물길은 아득히 멀고, 부용계 청년들이 사랑했던 버드나무 숲도 스러진 지 오래지만, 별처럼 불 밝힌 관사골 풍경은 여전히 따스하다. 마침 영주역으로 들어서는 기차가 혜성같이 긴 꼬리를 늘어뜨린 채 철로를 내달리고 있다.
영주의 볼거리&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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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시장
풍기역 바로 앞에 위치한 풍기인삼시장은 이 지역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1990년 9월 개업한 이래 풍기 농가에서 공수한 질 좋은 인삼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수삼, 홍삼, 백삼은 물론이고 선삼, 흑삼, 발효삼 등 다양한 종류를 갖췄다. 상인들이 귀띔하기를, 인삼은 잔뿌리가 많고 굵을수록 생육이 잘된 개체로 판단한다. 풍기에는 이 외에도 죽령로의 풍기소백산인삼시장, 소백로의 풍기인삼도매시장, 풍기인삼농협 등 인삼을 판매하는 곳이 여럿 있다.
문의 054-636-7948 -
영주인삼박물관
풍기 인삼의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공간이다. 한국 인삼의 기원, 인삼 재배의 내력을 전시한 1층 전시실과 인삼의 효능, 생육 환경을 살필 수 있는 2층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인삼 고사를 지낼 만큼 정성을 다했던 농민들의 모습을 기록한 전시 자료가 특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1층과 2층이 죽령옛길을 테마로 꾸민 완만한 경사로로 이어진 덕에 휠체어나 유아차로도 쉽게 접근한다.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소백산 풍기 온천 리조트와 함께 휴양 여행 코스로 즐기기에 좋다.
문의 054-639-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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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갈비
한우와 인삼을 오랜 시간 고아 낸 인삼갈비탕이 이곳의 대표 메뉴다. 농밀한 질감이 느껴지는 국물 한 술에 기운이 솟는다. 밑반찬과 함께 나온 생인삼까지 꼭꼭 씹어 먹어야 제맛이다. 쌉싸래하고 시원한 잎 부분이 풍미를 더한다. 곰탕과 도가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반반탕, 갈비와 도가니와 전복을 한데 넣은 원기회복탕도 더없이 든든하다. 열세 가지 한약재와 배, 생강, 양파, 대파를 넣고 푹 재운 풍기인삼돼지갈비도 별미다. 인삼막걸리나 인삼주를 곁들이면 온몸이 후끈해진다.
문의 054-635-2382 -
녹스고지
관사골과 부용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카페. 전망대로서도 훌륭한 데다, 미술관처럼 단정하고 고즈넉한 인테리어가 커피 맛을 돋운다.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와 바위, 흐르는 물을 한데 완상할 수 있는 수정원이 운치를 더한다. 메뉴도 알차다. 복숭아 과육과 히비스커스 티의 만남이 매력적인 임복히 아이스티, 되직하게 갈아 넣은 곡물이 크림처럼 뭉글뭉글하게 느껴지는 오곡슈페너, 자체 레시피로 정성껏 구워 내는 베이커리가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한다.
문의 054-631-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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