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가득해졌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산재한 쓰레기를 하나하나 허리 굽혀 줍느라 척추가 마모되는 느낌이었다. 이 만만치 않은 일을 기꺼이, 수월히 해낸 줍깅 선배들에게 심심한 존경을 보낸다. 실은 고통만큼 보람도 크다. 쓰레기를 두르고 하천을 휘젓는 모습을 본 어르신들이 “아이고, 참 착하구먼” 하며 칭찬하신 데다, 내 고장의 여름 풍경을 이렇게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보천, 굴포천 그리고 아라마리나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이 계절에 더 근사해진다(길 중턱에 대형 와인 판매점이 있다는 사실은 산책을 더욱더 즐겁게 한다). 굴포천에 펼쳐진 황금빛 금계국 군락이 부디 오래도록 건강히 피고 지기를 바라며 대보천 줍깅을 정례화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줍깅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낯설어서 어리둥절해질 때 조언을 얻고자 ‘집 안에서 온갖 물건 쓸고 다니기 전문가’ 여섯 살배기 아들과 지난달에 이어 동행했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기점 삼아 성내천 인공폭포광장에 이르는 천변을 걸었다. 성내천은 맑고 아름다웠다. 근데 이제 쓰레기를 곁들인. 가볍게 산책하자면 보이지 않겠지만, 줍자고 작정하니 어찌나 잘 보이던지. 이걸 다 어떻게 주워야 하나 어리둥절해졌다. 아들이 조언했다. “아이스크림 먹고 줍자.” 맞구나, 먹어야 힘이 나는 것이었어. 먹고(물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성내천에 복귀해 아들과 격렬하게 쓸면서 나아갔다. 전문가 아들은 물에서 건져 올리는 시범까지 보여 주었다. 그렇게 쓰레기가 성내천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전설. 쓰레기야, 봤지? 우리 아들 무서우니까 나타나지 마!
신구로유수지 근처 서울과 광명 경계에서 출발해 한강 합수부까지 안양천을 8킬로미터 정도 걸은 적이 있다. 다양한 풍경을 지닌 안양천 자체도 좋고, 서로 다른 긴 여정을 달려온 물이 만나는 장면은 가슴이 찡했다. 그 구간을 줍깅하기로 했다. 목적이 달라지니 이전에 산책할 땐 보이지 않던 구석구석 쓰레기가 눈에 띈다. 과자 봉지, 페트병, 마스크, 담배꽁초 정도는 예상했으나 신용카드, 반려동물 배변 패드, 우산 손잡이, 심지어 쓰다 만 이력서는 뭐죠? 1킬로미터도 못 가서 10리터 봉투가 꽉 찼다. 주운 것 중 비닐봉지를 ‘재활용’, 이 역시 한 시간 만에 채웠다. 더는 쓰레기 담을 데가 없어 줍깅을 마쳤다. 평상시 한 시간에 5킬로미터를 걷는 내가 두 시간 동안 겨우 3킬로미터를 이동했다. 시속 1.5킬로미터, 이날 지구를 사랑하는 내 속도였다.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던 줍깅에 도전하는 날. 걷기 편한 옷차림을 하고 현정 선배에게 빌린 장갑을 낀 뒤, 집에 굴러다니던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중랑천 장미공원에서 며칠 전 장미 축제가 열렸단 이야기를 듣고 쓰레기가 많을 거라 예상했다. 삐빅~ 쓰레기 레이더 가동. 유심히 관찰하며 걷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지 않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발견한 현수막. “장미랑! 달려랑! 주워랑!” 아하, 그렇구낭. 장미 축제에서 이미 한 차례 줍깅을 진행한 후였다. 그래도 쓰레기는 있다. 쓰레기봉투를 반쯤 채우고 줍깅을 마쳤다. 아쉬운 건 물속 쓰레기를 주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쓰레기 옆을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물고기야, 인간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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