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배경은 중요하다.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하고, 특정 사건의 진실을 깨닫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장면을 어디서 촬영하느냐는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어느 창작자가 동선을 줄여 효율을 높이자고 대충 가까운 아무 데서나 찍으랴. 영상 제작자들은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할 극적인 배경을 찾아 오늘도 전국을 헤맨다. 마찬가지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을 낳은 ‘명배경’은 창작자에게 사랑받게 마련이다.
대구가 바로 그런 도시다. 삼국시대 고분군인 불로동고분군부터 조선 시대의 경상감영, 대학자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기리는 도동서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은 근현대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청라언덕과 북성로, 현대의 대도시 면모까지 시간의 켜를 올올이 간직한 대구는 수많은 영상의 명배경으로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켰다.
세상의 끝 같은 너럭바위 봉우리에 돌탑이 우뚝 선 비슬산 대견사의 웅장한 풍경은 드라마 <추노> 마지막 장면을 낳았고, 고풍스러운 건물에 담쟁이가 자라 낭만을 더하는 계명대학교는 드라마 <모래시계> <야망의 전설> <에덴의 동쪽> <이브의 모든 것> <사랑비> <꽃보다 남자>, 영화 <동감>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해 여름> 등 100여 편 영화·드라마 속 인물이 다니는 학교로 등장했다. 웬만한 영상에서 ‘어, 저 학교 예쁘다’ 싶으면 계명대학교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캠퍼스 내 한학촌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세기 초 고딕 양식 성당인 계산성당, 90개 좁은 계단의 3·1만세운동길, 서양식 선교사 주택이 늘어선 청라언덕 또한 여러 작품에서 대활약해 화면을 풍성하게 하고 시청자와 관객을 설득했다.
시간과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은 촬영을 위해 일부러 만든 세트장이 갖지 못한 정서를 지닌다. 좋은 배경이 되는 곳 자체가 사진 찍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구가 선사한 잊지 못할 장면으로 들어간다. 이야기가 가득한 장소들이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영화 <모던보이>
@챔니스 주택
재즈가 흐르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집 안, 주인공 해명은 구두를 고르고 페도라를 쓰더니 거울을 보고 말한다. “역시.”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에 눈 감은 채 신문물과 오늘의 낭만에 집중하던 그의 집으로 청라언덕에 있는 20세기 초반 선교사 저택이 등장한다. 의문의 여인을 사랑하면서 변화해 가는 ‘모던 보이’의 성장이 여기서 시작된다.
영화 <수성못>
@수성못
오리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편입을 준비하는 주인공 희정은 수성못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에 연루되어 평화로운 일상이 깨진다. 대구 출신 유지영 감독이 지역 청년의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장소가 수성못이다. 실제로 이곳을 산책하다 작품을 구상했다고. 대구 시민의 추억이 서린 대표 유원지는 오늘날에도 인기가 여전하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성서캠퍼스
내가 엑스트라라니! 고등학생 단오는 자기가 사는 세상이 만화 속임을 깨닫고 경악한다. 그럼 나는 작가가 의도한 ‘설정 값’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란 말인가. 자아가 생긴 엑스트라 단오의 ‘내 인생 스스로 개척하기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이 계명대학교. 단오가 자아와 첫사랑을 지키려 분투하는 장면을 예쁘게 그렸다.
뮤직비디오 <업사이클링: 훌라>
@북성로
대구읍성 북쪽 성벽을 해체하고 조성한 길 북성로는 산업화 시기까지 대구의 중심가였다. 북성로 공구골목에는 무엇이든 만들고 고치는 장인이 모였다. 세월이 흘러 생기를 잃어 가던 동네를 눈 반짝반짝한 청년들이 찾았다. 버려진 부품을 주워 합주를 했다. 장인의 생애를 듣고 기술을 배우며 함께 놀았다. 재미있었다. 그 결과물이 업사이클링 밴드 훌라(Hoola)의 뮤직비디오다. 북성로에 폭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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