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Crépuscule)’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불이 켜진 전구와 꺼진 전구가 있다. 합쳐서 165개. 전구에 연결된 전선들은 전시실 한편에서 모인다. 저곳이 뿌리라면 전구는 전선이라는 가지에 핀 열매가 된다. 이건 나서 성장하고 어울리는 생명에 관한 작품이지 않을까. 그런데 불이 꺼진 전구가 있는 것이다. 전시 막바지인 현재 꺼진 전구가 더 많다. 전시 기간에 불빛은 매일 하나씩 사라지고, 마지막엔 모든 전구가 꺼진다. 그때 이곳은 완전한 어둠이다. 이건 생명에 관한 작품이며, 생명은 반드시 끝을 맞는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도 지난해 7월 14일 영면했다. 그는 죽기 직전 ‘황혼’을 포함해 43점을 선정하고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공간을 직접 구성했다. 뜻하지 않았지만 유작전이 된 전시, 오늘도 ‘황혼’의 불빛이 하나 사라졌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죽음도 삶이기에.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예술과 죽음을 작품에서 들여다보는 지금, 그는 우리와 함께한다. 이건 반드시 끝을 맞는 생명에 관한 작품이며, 끝나도 삶은 영원할 수 있다.
* 부산시립미술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전, 3월 27일까지. 문의 051-744-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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