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버번과 버번이 아닌 것으로 나뉜다. 물론 생산지로 따져 스카치(스코틀랜드), 아이리시(아일랜드)도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버번을 사랑하는 많은 이가 버번만 마시고 음미하고 다시 찾는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천국에서 버번위스키를 마시지 못한다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 그리 매력적인, 오직 미국에서 생산하는 버번위스키 가운데 와일드 터키가 있다. ‘있다’라는 표현은 얼핏 존재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지나, 와일드 터키는 ‘있다’를 훌쩍 뛰어넘는 존재감을 가진다. 버팔로 트레이스, 메이커스 마크와 함께 한국에서 ‘버번 3대장’, 또는 사랑과 위트를 담아 ‘법원 3대장’으로 불리는 와일드 터키의 의미는 마니아에게 독보적이다.
버번은 무엇일까. 미국 켄터키의 한 마을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알려졌는데, 사실 버번은 기원보다 주조 방식이 중요하다. 위스키 이름에 버번을 붙이기 위해선 미국 연방정부 규정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그중 옥수수를 51퍼센트 이상 함유한 원액을 쓰고, 매번 새 오크통에서 숙성하며, 어떤 첨가물도 가미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전술했듯,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 이것이 발아 보리가 주재료이면서 오크통을 재활용하는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와 구별되는 대목이다. 먹음직스럽도록 색소를 가미하는 다른 위스키와 달리 버번의 빛깔은 새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드러난다. 옥수수를 증류하고 숙성할 때 올라오는 적당히 달금한 맛 또한 버번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버번위스키의 새 시대를 열다
이렇게 까다로운 규정을 지키는 버번위스키 중에서도 와일드 터키는 특별하다. 1869년 미국 켄터키 로렌스버그에 세운 증류소에서 와일드 터키 브랜드가 탄생한 게 1942년. 그 무렵 어느 날 밤, 증류소 직원들이 둘러앉아 위스키를 마셨다. 어떤 이가 자신이 직접 만든 위스키를 마셔 보라 권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맛이었다. 마침 그날 직원들은 야생 칠면조를 사냥했고, 놀랍도록 맛난 그 위스키는 와일드 터키(Wild Turkey)가 되었다.
버번은 1960년대 미국에서 보드카가 대유행하며 몰락 위기에 처한다. 생존이 급박한 버번 증류소들이 앞다퉈 보드카 모방 위스키를 출시하던 뒤숭숭한 시기, 오늘날 ‘살아 있는 전설’로 칭송받는 지미 러셀이 등장한다. 와일드 터키 증류소에 위스키 제조 책임자인 마스터 디스틸러로 부임한 그는 시류에 편승하는 대신, 오히려 버번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쏟는다. 그러곤 트렁크에 와일드 터키를 잔뜩 실은 차를 몰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주류 판매장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일이 들러 홍보했다. 유행이 어떻든 옥수수, 호밀, 맥아 비율을 모든 제품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뚝심까지 보여 온 지미 러셀은 마니아들이 와일드 터키만큼 떠받드는 버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그렇게 기울인 노력이 결국 오늘날 버번 전성기를 이끌었다. 켄터키 여러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들은 그를 ‘버번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40여 년 전, 와일드 터키 증류소에 합류해 또 한 명의 전설이 되어 가는 아들 에디 러셀이 아버지에게 헌정한 브랜드가 저 유명한 러셀스 리저브다.
세계가 열광하는 와일드 터키의 맛
여전히 현역인 러셀 부자가 와일드 터키를 빚고 숙성하는 곳, 로렌스버그에서 2017년 유쾌한 이벤트가 열렸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매튜 맥커너히)가 추수감사절에 집집이 깜짝 방문해 칠면조 요리를 선물한 것이다. 세계적인 배우가 도대체 왜 로렌스버그에 와서 하필 칠면조 요리를 배달한 걸까. 그는 와일드 터키의 홍보 모델이다. 와일드 터키를 너무 사랑해 단순히 홍보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제품 개발에도 참여한다. 매슈 매코너헤이는 ‘와일드 터키 덕후’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 스티븐 킹, 헌터 톰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곁에 두고 마시며, 얼마나 좋은지 작품에서도 종종 와일드 터키를 언급한다. 버번 본연의 달금한 바닐라 향이 묵직하게 어리는 와일드 터키를 마시고 음미한다. 천국에 와일드 터키가 없다면, 되도록 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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