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가라는 종의 얼룩말이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다. 얼굴과 몸 앞부분까지 줄무늬가 선명하다가 중간부터 없어지는 독특한 생김새의 얼룩말로, 남아프리카 초원이 서식지였다. 이 매력적인 얼룩말은 1870년대에 야생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1883년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서 사육하던 마지막 한 마리마저 수명을 다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지구상에서 콰가 얼룩말이 멸종되었음을.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부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명이 번성하고 멸종했다. 이 섭리를 인간이 비틀었다.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고 수많은 생물을 식용·약용·미용 목적으로 포획하거나 채취했으며 취미로 사냥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동물과 식물이 줄어들고 심지어 사라졌다.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멸종할 존재는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운 좋게 생존한 종끼리만 살아가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무엇이 왜 멸종했는지, 멸종이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내고,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 했다. 1964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레드 리스트가 출범했다. 전 세계 동식물과 균류 현황을 조사하는 기구는 ‘적색 목록(레드 리스트)’을 발표한다. 이들의 연구 결과, 한때 지구에서 인간과 공존했으나 지금은 영영 사라진 종은 카스피호랑이, 황금두꺼비, 핀타자이언트거북, 카리브해몽크물범, 웃는올빼미 등 땅·바다·하늘을 가리지 않고 무려 935종에 이른다.멸종된 종을 붙들고 울고만 있기엔 상황이 급박하다. 현재 지구상에 북부흰코뿔소는 암컷 두 마리가 전부다. 먼저 죽은 수컷 두 마리에게서 정자를 추출해 냉동해 놓았고, 살아 있는 코뿔소의 난자로 인공수정을 시도 중이다. 그나마 암컷 한 마리는 노쇠해 복원 프로젝트에서 은퇴했다. 2600만 년간 생존해 왔고 19세기 중반만 해도 100만 마리 이상이었다 는 코뿔소가 불과 백수십 년 사이에 이런 처지가 되었다.
IUCN 적색 목록을 보면 원래 환경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보호시설에서 근근이 생명을 이어 나가는 야생 절멸종이 85종, 야생 절멸이 코앞인 멸종 위급·위기·취약 등급 종이 4만 종이다. 조사 대상인 13만 8000여 종의 28퍼센트가 넘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위기종을 포획하고 서식지를 파괴한다. 2010년에서 2021년까지 밀매에 희생된 천산갑은 100만 마리에 달한다. 고기는 식용으로, 비늘은 약재로 쓴다고 잡아들여 결국 천산갑 여덟 종 모두가 멸종 우려 등급에 오르게 했다. ‘산을 뚫는 갑옷’이라는 이름을 지닌 천산갑도 인간의 탐욕 앞에서는 무력했다. 코끼리, 사자, 호랑이, 상어, 독수리가 못 견디는 것을 작은 어류나 곤충이 버티랴.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생물이 자꾸 늘어난다.
여전히 희망은 인간이다. 세계가 10년간 꾸준히 어획 할당량 정책을 시행하자 멸종 위기종인 참치 7종 가운데 4종의 위기 등급이 하향 조정되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나 한국에서는 자취가 사라진 백두산호랑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키고 있다. 중국이 서울 면적의 23배에 이르는 1만 4100제곱미터 땅을 국가공원으로 지정하고 보호 조치를 실시한 결과 2017년 27마리에서 2021년 50마리로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1월 31일은 국제 얼룩말의 날이다. 2월 셋째 토요일은 세계 천산갑의 날, 5월 23일은 세계 거북의 날이다. 1년에 동식물을 기념하는 날은 100여 일. 멸종 위기 생물이 이토록 많고 그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니 1년 모든 날을 그들에게 돌려주어도 모자라다. 우주에서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에 불과한 지구에 생물 150만 종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인간이 발견해 종을 지정한 생물이 이 정도다. 과학자들은 1000만~2000만 종에 이르리라 추정한다. 거대한 생명의 그물. 얼룩말이 사라진 지구는 지금의 지구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얼룩말이 살지 못하는 지구가 인간에게 안전한 터전일 리도 없다.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 진심 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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