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의 매력은 아름다운 바다나 석양에만 있지 않다. 가야섬의 고요한 새벽과 생명력 넘치는 맹그로브 숲, 푸근한 원주민 문화까지, 자연과 사람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이야기가 곳곳에 가득하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자연주의 휴가를 만끽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키나발루산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곳. 보르네오섬 북단,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인 코타키나발루는 산과 바다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여행자에게 최적의 선택지다.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은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가야섬, 사피섬, 마무틱섬, 술룩섬, 마누칸섬 등 다섯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가야섬은 빽빽한 원시 열대우림과 맹그로브 숲으로 덮여 있고, 약 20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이킹 트레일과 고운 백사장이 있어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 우리 일행도 첫 여정으로 가야섬을 찾았고,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웰컴 음료를 마시고 나니 그제야 산홋빛 바다와 열대우림에 둘러싸인 빌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카약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도시에서의 복잡한 상념이 스르르 사라진다. 배를 타고 고작 20여 분 이동했을 뿐인데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온 느낌. 현지 PR 컨설턴트인 신시아에게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의 첫인상을 말하자, “이곳에서는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답한다.

긴꼬리원숭이가 사는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는 총 121개의 프라이빗 빌라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시아 사바(Sabah)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객실은 열대우림 언덕에 자리한 바유 빌라, 맹그로브 숲속에 지은 캐노피 빌라, 바다와 말레이시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키나발루 빌라, 그리고 2층 구조의 수리아 스위트까지 네 가지 타입이 있다. 모든 빌라는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내가 머문 곳은 키나발루 빌라. 객실로 다가서자 원숭이 두 마리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순간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의 보존 총괄 디렉터이자 자연학자인 저스틴의 말이 떠올랐다. “원숭이들이 노크를 하거나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숭이와 눈을 마주치는 건 좋지 않아요. 원숭이는 그걸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거든요. 사람이 자극하지 않는 한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가야섬에는 긴꼬리원숭이뿐 아니라 왕도마뱀, 도마뱀붙이, 코뿔새, 대벌레 등 다양한 생물이 숲과 해안을 오가며 살아간다. 산책길을 걷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이들은 불청객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과 오랜 시간 공존해 온 섬의 원주민 같은 존재다. 객실에 들어서니 발코니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코타키나발루는 석양으로 유명하지만,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는 섬 동쪽에 자리해 일출 또한 아름답다. 날이 맑으면 침대에서도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 이른 아침, 발코니에 마련된 커다란 데이베드에 누워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바다 위의 섬 같은 거대한 키나발루산 너머에서 봉긋하게 떠오른 해가 수면 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물론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선셋도 놓칠 수 없다. 가야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몰 장면을 만나려면 선셋 크루즈가 답이다. 프라이빗 요트인 리틀 프린세스(Little Princess)에 몸을 실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선착장을 떠난 보트가 천천히 섬과 섬 사이를 지나간다. 칵테일과 샴페인을 마시며 인증 사진을 찍는 사이, 짙은 에메랄드빛을 띠던 바다가 어느새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하늘은 오렌지빛, 붉은빛, 분홍빛이 층층이 겹쳐진 거대한 캔버스가 되고, 태양이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마지막 빛을 쏟아 냈다. 그동안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선셋을 마주했지만 코타키나발루가 왜 최고의 석양 명소인지 실감했다.


생물학자에게 듣는 맹그로브 숲 이야기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에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다. 리조트에서 맞은 둘째 날, 해양생물학자와 함께하는 스노클링에 참여했다. 배를 타고 30여 분 달려 스노클링 포인트에 닿았다. 다양한 해양생물이 보존된 산호 삼각지대 서쪽 경계에 위치한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은 에메랄드빛 바다 아래로 산호초와 해초 군락이 이어지며 수백 종의 열대어와 바다거북이 살아간다. 스노클링을 하며 바닷속을 보니 물고기 숫자는 많지 않지만 종류는 그 어느 바다보다 많았다. 형형색색의 산호 정원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음에는 부러진 산호를 보살펴 바다로 돌려보내는 머린 센터를 찾았다. “오늘 스노클링을 한 포인트는 2년 전에 훨씬 더 아름다웠어요.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죠.” 해양학자 스콧의 말은 위험수위를 넘은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여행자들은 머린 센터에서 산호 양식 교육을 받고, 직접 심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산호가 자라는 데도 6개월에서 1년이 걸려요. 어떤 산호는 정말 거대하고 수 세기에 걸쳐 성장합니다. 파괴하는 건 쉽지만 회복하는 속도는 매우 느려요. 마치 건강처럼 말이죠.”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는 산호 복원 활동 외에도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을 도는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맹그로브 숲은 단순한 나무숲이 아니에요. 건강한 맹그로브 숲은 바다로 흘러드는 퇴적물과 오염원을 걸러 산호초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저스틴의 안내를 받으며 카약을 타고 맹그로브 숲을 탐험했다. 물길을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갈수록 거미줄처럼 얽힌 뿌리와 열대우림이 나타나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듯하다. “가야섬의 맹그로브 숲에는 희귀한 맹그로브 종이 서식합니다. 거의 멸종된 종으로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300그루 정도만 남아 있어요.” 저스틴은 맹그로브 복원 프로젝트와 야생 조류 구조 및 방생, 바다거북 구조 등 자연보호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액티비티를 한 후 스파 빌리지로 향했다. 정글 한가운데 자리한 스파 빌리지는 단순히 마사지를 받는 공간이 아닌, 보르네오의 자연과 사바 원주민 문화에 몸을 맡기는 웰니스 공간이다. 스파를 받을 때 비가 내렸는데, 고요한 숲속에 온갖 새소리와 빗소리만이 가득해 그 자체로도 온전히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의 매력 중 미식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매끼를 섬 안 리조트에서 해결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루프톱에 자리한 ‘피셔맨스코브’에서 랍스터, 타이거 새우 등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먹고, ‘피스트 빌리지’에서는 수영장과 해변, 키나발루산을 감상하며 조식과 중식을 즐겼다. 철판 요리가 일품인 ‘오마카세’에서는 셰프가 즉석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현지 쌀로 만든 와인 ‘리힝’과 함께 데판야키, 샤부샤부, 나베 등 세 가지 스타일의 일본식 오마카세 다이닝을 경험했다.

활기 넘치는 코타키나발루 시내 풍경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야섬에만 머무는 것이 아쉬워 마지막 날은 보트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열대우림에 둘러싸인 섬에서 벗어나면 전통 시장과 모스크, 해변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코타키나발루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는 시티 모스크(City Mosque)다. 건물의 돔과 첨탑이 푸른빛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이 모스크는 규모가 어마어마해 최대 1만 2000명을 수용한다. 모스크를 둘러싼 인공 호수는 마치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맑은 날이면 수면에 비친 푸른 돔과 첨탑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부를 관람하려면 입장료 5링깃과 전통 의상 대여비 5링깃을 내야 한다.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한 모스크 안에는 견학 온 어린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현지인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기에 시장만큼 좋은 곳은 없다. KK 워터프런트 호텔 북쪽에서 수공예품 시장 뒤쪽을 지나 중앙 시장 전까지 이어지는 필리피노 마켓으로 향했다. 코타키나발루에 이주한 필리핀 사람을 중심으로 열리던 작은 시장에 현지인까지 모여들며 규모가 점점 커졌다. 채소와 과일, 건어물 등을 파는 매대는 물론 현지인들이 식사하며 맥주를 즐기는 노점까지, 맛있는 냄새와 함께 흥겨운 열기가 가득하다. “싸다 싸!” 유창한 한국어로 호객하는 과일 가게 청년에게 사바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밤방안’이라는 야생 망고와 망고스틴을 사서 안주 삼아 워터프런트에서 맥주를 마셨다. 해가 질 무렵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탄중아루 비치로 모여든다. 코타키나발루의 일몰 명소로, 현지인들은 해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여행자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저마다 황홀한 순간을 기록한다.
도시를 벗어나 조금 더 깊은 사바를 만나고 싶다면 마리 마리 민속촌(Mari Mari Cultural Village)을 추천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마리 마리’다. ‘오세요, 오세요’라는 뜻. 마리 마리 민속촌은 사바 지역에 거주하는 5개 부족의 전통 가옥과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마을이다. 원주민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5개 부족이 살았던 독특한 가옥들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바에서 가장 큰 부족인 두순족의 집에서는 쌀로 만든 술을 맛보고, 룽구스족의 집에서는 대나무와 코코넛을 비벼 불을 붙이는 경험을 해 본다. 해상을 떠돌던 바자우족이 직조한 화려한 수공예품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다양한 체험은 물론, 전통주와 먹거리로 배를 채우다 보면 반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원주민 대다수가 숲을 떠났지만 키나발루산 계곡에는 극소수의 원주민이 아직 남아 있다. 마리 마리 민속촌 투어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뱀부 댄스를 신나게 추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코타키나발루, 어떻게 갈까?
에어아시아 항공편을 이용하면 코타키나발루에 쉽게 닿는다. 에어아시아 말레이시아(AK)가 주 4회(월·수·금·일요일) 인천-코타키나발루 노선을 운항한다. 코타키나발루행 항공편(AK1624)은 오전 9시 20분 인천을 출발해 오후 1시 30분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다. 인천행 항공편(AK1623)은 오전 1시 55분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해 오전 8시 20분 인천에 도착한다. 시차는 말레이시아가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