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 인간은 동굴에 거주했다.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건축물을 고안한 지금은 동굴이 집이라기보다는 여행지, 탐험 장소로 다가온다. 마테라는 다르다. 여전히 동굴이 생활공간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같은 형태를 간직한, 같은 데서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이탈리아 남부 마테라는 석회암 협곡 지형을 따라 들어선 도시다. 자연 동굴에, 이후 정착한 사람들이 인공 동굴을 파고 집을 지어 마을을 이루었다. 언덕을 타고 다닥다닥 올라붙은 1500여 채 돌집의 행렬은 말 그대로 거대한 화석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돌 건축물을 ‘사시(sassi)’라 부르는데, 유네스코도 가치를 인정해 1993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오랫동안 빈민 거주지였던 이곳은 정부의 손길조차 제대로 닿지 않은 채 외면받다가 20세기 중반에 열악한 실상이 알려지면서 주민이 강제 퇴거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심지어 흉물이라며 파괴하려 했으나 기존 주민과 언론 등이 사시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의견을 냈다. 텅 빈 도시에 학자와 학생, 예술가가 모여 탐험과 연구를 시작했고, 수백 년 전에 지은 동굴 교회 150여 곳을 비롯해 수천 년 시간이 담긴 유적과 유물이 속속 나왔다. 마침내 마을에 수도와 전기가 놓이고 주민도 차츰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빛바랜 암석 도시의 분위기는 세상 어디서도 찾기 힘들기에 많은 영상 제작자가 마테라를 촬영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오프닝 추격 신은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마테라를 2000년 전 예루살렘으로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지난여름 출시한 인기 게임 ‘로드나인’에도 정교하게 구현한 이 도시가 배경에 등장한다.
마을을 살린 주민들은 이제 동굴과 암석 주택을 카페, 식당, 소품 가게, 숙소, 갤러리로 단장해 손님을 맞는다. 돌벽에 햇살이 드리울 때 그 따스한 꿀색, 해 질 녘에 물든 빛깔, 밤의 가라앉은 정취, 구불구불한 계단‧골목과 소박한 동굴. 첫눈에 반하게 할, 걷고 들여다볼수록 더욱 빠져들게 할 풍경이 온 도시에 고여 있다.
<KTX매거진>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