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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통제
“꿈은 그림과 함께 호흡을 해 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서식을 해 왔다.”예술과 사랑, 노동과 육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천경자의 젊은 날은 혹독하고도 치열했으나, 그에겐 꿈이 있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는 1941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미술을 공부했고,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부상’으로 입선하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다. 이듬해 결혼해 가정을 이뤘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가족을 등진 남편 대신 모교인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해 생계를 책임졌고, 안간힘을 쓰며 육아와 작업을 병행했다. 천경자는 훗날 자신의 삶을 이끈 원동력이 꿈, 사랑, 모정이라 회고했다. -
슬픔을 삼키는 방법
“현실이란 슬퍼도, 제아무리
한 맺힌 일이 있어도 그걸 삼켜 넘겨
웃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전쟁 한복판, 천경자 생애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난다. 동생 옥희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깊은 슬픔을 헤아려 줄 이는 없었다. 남편과 소식이 끊겼고, 전시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언론인 김남중을 일방적으로 마음에 품은 채 처절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 시기 천경자의 화폭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는 뱀이었다. 그는 뱀을 “이브를 홀려 슬픔과 기쁨, 고뇌를 맛보게 했다는 창조의 요술사”라고 생각했다. “오직 인생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 뱀을 그리던 천경자는 1953년 휴전협정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강단에 섰으며,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이라는 성취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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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논쟁을 넘어서다
“창작적 개성 속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한다면
그것이 곧 한국의 독특한 미(…).”혼돈의 시대, 예술가들은 ‘한국화’라는 이상에 도달하고자 했다. 한국적 기법과 소재에 천착하느라 수묵화만이 한국화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채색화를 일본화라 곡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천경자는 꿋꿋이 사랑과 고통 같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흥건한 색감으로 표현했으며, 음악이나 문학 등 예술적 관심사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그뿐인가. 제자였던 후배 여성 예술가들이 좁은 틀을 벗어나 개성을 추구하도록 독려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이러한 그의 행보를 두고 “현대를 멋있게 걸어가는 작가”라며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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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사랑하며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
그 위에 인생이 떠 있는지도 모른다.”예술가 그리고 여행가. 천경자는 <남태평양에 가다>와 같은 기행문을 냈을 만큼 기록하기를 좋아했다. 목적지는 타히티, 인도네시아, 인도, 중남미와 유럽 등으로 대륙과 나라를 가리지 않았다. 에밀리 브론테, 마거릿 미첼 등 그가 사랑한 작가와 작품을 좇아 문학 기행을 떠나기도 했다. 여행은 그림으로 남았다. 채도 높은 색과 강렬한 표현으로 동물·자연·생활 풍속·인물 등 여러 소재를 담았는데, 특히 남국 여인들을 관찰하고 묘사해 그만의 독창적인 여성상을 구축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여자’. 1979년 천경자가 낸 수필집 제목이자, 그가 평생 좇아 온 자아다.
+ 바로 지금, 천경자를 만나는 전시
<찬란한 전설 천경자>
기간 11월 11일~12월 31일
장소 전남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아트센터
천경자의 고향에서 천경자를 만난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만선’ ‘화혼’ ‘아이누 여인’ 등 작품 약 70점과 유품 및 아카이브 40여 점을 소개하는데, 이 중엔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작품도 있다.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
기간 11월 1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1924년에 태어나 2015년 영면한 천경자와 동시대를 살아간 여성 작가 22인의 작품과 자료를 한눈에 마주하는 시간이다. 천경자 컬렉션 상설전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도 함께 관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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