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나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 저만치 보이는 63빌딩의 자태가 얼마나 눈길을 끄는지. 일출과 일몰 시간, 한낮과 밤, 빛이 쨍쨍한 날과 구름 끼고 비 오는 날, 빌딩 색은 매 순간 달라진다. 고단한 근현대사를 건너 온 한국인이 ‘할 수 있다’ 외치듯 쌓아 올린 건물은 인공물이면서도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느새 서울의 한 풍경이 되었다. 서울을 말하는 사진을 찍는다면 꼭 들어갈 장면.
지하 3층에 지상 60층, 남산보다 1미터 낮은 해발 264미터 건물은 지금도 높지만 그때는 더욱 높았다. 직전 한국 고층 건물이 38층의 롯데호텔 서울, 31층의 삼일빌딩이다. 63빌딩은 1980년 2월 착공해 1985년 5월 준공하자마자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마천루로 올라섰다. 직사각형을 벗어나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외형, 빛나는 금색 외벽도 화제였다. 지을 당시 외벽을 감싼 유리 1만 3516장 하나마다 실제 금 0.5그램을 넣었는데, 이 때문에 외부 빛을 반사해 빌딩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효과가 났다.
사람들은 휘둥그레져서 63빌딩과 놀았다. 한국 최초 수족관 ‘63씨월드’에는 50개 넘는 수조에 400여 종, 2만여 마리 생물이 관람객을 맞았다. 남극의 임금펭귄, 1.3미터 왕게, 바다코끼리를 여기서 처음 만났다. 가로 25미터, 세로 18미터라는 경이로운 화면 크기를 자랑하는 아이맥스 극장도 63빌딩이 최초다. 하이라이트는 물론 60층 전망대다. 시계가 50킬로미터에 이르러 인천 앞바다, 서울 동쪽 끝인 강동구까지 보이니 서울 전체가 들어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0개 층을 30초 만에 주파하는 엘리베이터의 어질어질한 속도도 큰 충격이었다.
63빌딩은 한국 사회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1985년 7월 27일 일반인 관람을 시작한 이래 2년 4개월 만에 방문객 2000만 명을 돌파했다. 63씨월드‧전망대‧식당가의 황금 동선이 나들이 코스가 되었고,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에는 63명 산타가 곳곳에서 나타나 선물을 안겨 주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였다. 1986년에는 63빌딩이 우표에 등장했고, 88서울올림픽 기간에는 외벽에 레이저로 대형 호돌이를 그려 축제 분위기를 고조하기도 했다. 김현식‧이문세‧전영록‧주현미‧패티김 등 최고 인기 가수가 콘서트와 디너쇼를 진행하고, 한국 최초 사이버 가수 아담이 데뷔했으며, 기자회견‧시상식‧패션쇼 같은 행사가 이어졌다.
63빌딩 하면 떠오르는 ‘수직 마라톤’, 곧 계단 오르기 대회는 1995년 개장 10주년을 기념해 처음 개최했다. 1층 로비를 출발해 60층 전망대까지 1251개 계단을 오르는 숨 가쁜 대회로 역대 최고 기록은 남성 7분 15초, 여성 9분 14초다. 1개 층을 평균 7초에 주파한 놀라운 기록은 2003년 수립 이후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특이한 복장을 한 채 완주하는 참가자를 가리는 코스튬 부문도 매년 웃음을 유발한다. 63빌딩을 배경 삼아 여는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매년 100만 명이 불꽃놀이를 즐기며 가을밤의 낭만을 만끽한다.
완공하고 39년. 사람도, 사회도 변해 한국 최고 높이 빌딩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63빌딩은 여전히 첨단에서 추억을 아우르는 건물이다. 특별한 날 거기를 구경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룬 이에게, 수족관과 전망대의 기억을 간직한 이에게 이 건물은 전철 타고 한강을 건너다가 문득 과거 어느 날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지녔다. 누적 방문객 9000만 명의 63씨월드, 나중 이름 아쿠아플라넷63이 지난 6월 문을 닫았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분관 공사를 하기 위해서다. 퐁피두센터가 리모델링하면서 전 세계에 세 곳 내는 분관 가운데 하나가 63빌딩에 들어온다. 마티스‧샤갈‧칸딘스키‧피카소, 가슴 뛰게 하는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추억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추억이 자라나겠다. 높지만 제일 높지 않아 더 좋은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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