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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그림을 찾아라

최근 신윤복의 그림 ‘고사인물도’가 도난 국가유산 목록에 올라왔다. 끊이지 않는 미술품 절도 사건을 알아봤다.

UpdatedOn July 24, 2024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사라진 미소

없이도 살 수는 있지만, 함께하면 삶이 풍성해지는 것. 예술이 그렇다. 인간은 늘 작품을 만들고 누렸으며, 지위와 부를 가진 이는 수집했다. 문제는 미술이 음악, 문학과 달리 작가의 손길이 닿은 단 한 점을 직접 감상하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술품은 절도와 약탈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세기 초 가장 뜨거웠던 사건은 1911년 8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사라지고도 박물관은 인지조차 못 하다가 관람객의 제보를 받고 혼비백산 신고했다. 국경을 폐쇄하고 현상금을 걸었지만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전보다 훨씬 좁아진 당시, 언론이 사건을 연달아 보도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쏠렸고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아닌 ‘모나리자가 없어진 자리’를 보러 루브르를 찾았다. 대단한 유물이 워낙 많아 ‘평범하게 유명’한 정도였던 이 작품은 도난 이후 ‘엄청나게 유명’해져, 경찰이 전 세계로 수색 범위를 넓혔음에도 성과가 없었다.

2년 3개월이 지난 1913년 11월 범인이 흔적을 흘렸다. 이탈리아의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하려다 꼬리를 잡힌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범인은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등 작품을 보호하는 유리 액자 제작 일을 맡았던 이였다. 다빈치가 이탈리아인이니 작품도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훔쳤다 진술했다. 프랑스가 작품을 소장한 계기가 약탈이 아니었기에 ‘모나리자’는 정당하게 돌아왔고 루브르의 상징, 나아가 모든 예술 작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914년 1월 4일 다시 ‘모나리자’를 선보이자 이틀간 루브르에는 평상시 관람객의 20배인 10만 명이 몰려왔다. 이 미소를 영원히 잃을 뻔했다는 아찔함. 예술이 선사하는 감동과 더불어 도난의 위험성을 깨치게 한 사건이다.

신윤복 ‘고사인물도’

#한국에서는

조선 최고 명필 안평대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자 문종과 세조의 동생인 그는 계유정난 이후 귀양 가고 끝내 사사되면서 작품이 거의 종적을 감추었다. 한국에 남은 유일한 진적이 국보 <소원화개첩>인데, 2001년 소장자 집에서 도둑맞았다. 인터폴 국제 수배 명단에도 올렸으나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국가유산청 도난 국가유산 정보에는 다종다양한 유물이 한탄을 자아낸다. 1985년부터 2023년까지 3만 점 넘는 유산이 사라졌다. ‘문화유산 전문 도둑’이 활동하던 분야에 다른 세력이 대거 발을 들여놓은 계기로 TV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을 꼽는다. 1996년 한 영정에 감정단이 1억 2000만 원을 매기자 전국 서원, 향교, 사당의 영정이 우수수 도난을 당했다. 대부분 CCTV가 없고, 일상적 관리만 하는 곳이다 보니 절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수사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신윤복의 ‘고사인물도’ 또한 도난 시점을 2019년 말, 2020년 초로 추정할 뿐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다.

도난 작품은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암암리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도둑들이 대학 같은 기관에 연구 명목으로 맡기는 ‘세탁’ 작업을 한 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훔쳤다가 판매처를 찾기가 곤란했는지 돌려주는 사례도 가끔 있다. 장소를 지정해 어디에 있다고 전화로 알려 주거나 국가유산청에 택배로 보내는 경우다. 기억할 점. 도난 작품을 파는 행위는 물론 사는 행위도 무조건 불법이다.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3 / 10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레인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레인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레인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최대 규모 도난

1990년 3월 18일 오전 1시 24분. 미국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경찰관 두 명이 찾아왔다. 경비원이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경찰복 차림을 한 도둑은 경비원 둘을 지하실에 가둔 채 81분에 걸쳐 유유히 미술관을 털었다.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페르메이르의 ‘콘서트’ 등 회화와 유물 13점이 사라졌다.

FBI가 즉시 나섰다. 당시 보스턴에서는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 마피아 세력이 범죄를 일으키고 세력 다툼을 했는데, FBI 역시 마피아를 대상으로 집중 수사했다. 그들을 의심할 이유도 충분했다. 아일랜드계는 작품을 훔쳐 아일랜드공화국군인 IRA의 무기 구입 담보물로 밀반출하려 시도한 전적이, 이탈리아계는 작품을 담보로 마약을 들여온 전적이 있었다. 마일스 코너라는 마피아는 1975년 훔친 작품을 가지고 형량을 협상하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돌려주겠다면서 징역 13년을 28개월로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작품을 양형 협상 카드로 이용하는 전례가 되고 말았다.

수많은 이가 수사 명단에 올랐지만 34년이 지나도록 작품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그 사이 여러 용의자가 사망하거나, 마피아 세력 다툼 속에 살해되었다. 미술관은 지금도 텅 빈 액자를 그대로 둔 채 관람객을 맞는다. 반드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000만 달러 보상금도 걸었다. 전 세계에 남은 작품이 37점 정도라는 페르메이르의 ‘콘서트’는 어디 있을까. 살아 돌아오기만 해 달라고 간절히 비는 마음은 모두가 같겠다, 범인만 빼고.

토머스 게인즈버러 ‘데번셔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초상화’

#동기는 무엇일까

절도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돈이다. 범죄자들은 작품을 알려진 가격보다 싼값에 판매하거나 마약·무기 등을 구입할 때 현금 대신 지불한다. 범죄자에게도 도난 작품 거래는 위험한 일이다. 큰 금액이 오가는 상황이지만 판매자와 구매자는 서로 신뢰하기가 어렵고, 미국 FBI 예술 범죄 전담팀 같은 전문 수사 인력이 신분을 속이고 잠입하기도 한다. 과거엔 작품을 ‘인질’ 삼아 소장기관·소장자·보험사에 돈을 요구한 사례가 있었는데, 1994년 도둑맞은 윌리엄 터너의 두 작품을 영국 테이트 갤러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온 이후 이런 방식은 지양한다. 범죄자에게 돈을 주었다는 비난 때문이다.

정치적·사회적 동기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974년 아일랜드 러스버러 하우스에서 고야·루벤스·벨라스케스·페르메이르 등의 작품을 턴 일당은 IRA 요원 석방을 요구했고, 1971년 네덜란드가 벨기에에 대여한 페르메이르 작품을 훔친 범인은 동파키스탄 난민 원조를 반환 조건으로 걸었다. 믿기 어렵지만, 작품을 감상하려고 절도한 이도 있다. 2000년 폴란드에서 모네의 ‘푸르빌 해변’을 가져간 도둑은 모네를 좋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1876년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데번셔 공작부인, 조지아나의 초상화’를 절도한 범인은 25년 동안 그림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100개 이상 박물관과 미술관을 넘나들며 약 240점을 훔친 도둑은 자기만의 루브르를 만들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사유가 무엇이든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포기란 없다

예술가가 영혼을 쏟아 창작한 작품은 단 하나이며, 그 작품만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지닌다. 감상하는 이에게 전하는 감동은 물론이다. 올해 3월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호세 카펠로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를 9년 만에 찾았고, 2020년 도난당한 반 고흐의 ‘봄의 정원’은 지난해 회수, 수개월 복원 과정을 거쳐 다시 관람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나 뭉크의 ‘절규’ 같은,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 또한 도둑의 손에 들어갔다 돌아왔음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과연 사라진 그림들은 어디 있을까. 안부라도 알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전 세계에서 연간 1만 건 이상 미술품 절도 범죄가 일어나는데, 회수율은 10퍼센트 정도다. 범인을 잡더라도 작품이 손상되거나 끝내 작품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포기하랴. 사람은 예술 없이도 살 수는 있지만, 예술은 분명 사람을 살리고 살게 한다. 예술이 우리를 가르치고 이끌고 일으키고 감동을 주었으므로, 작품을 지키고 도난 작품을 찾는 일은 모두의 의무다.

예술 작품 도난을 다룬 콘텐츠

  • 도서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영국 런던 덜위치 미술관은 렘브란트의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을 네 번이나 도난당했다. 가로 24.9센티미터, 세로 29.9센티미터인 그림은 크기가 작아 훔치기 편하고, 렘브란트의 작품 중 덜 유명해 지하 시장에서 거래하는 데 유리했다. 기자 출신 저자는 우연히 미술품 도둑을 만난 일을 계기로 예술 전담 수사관, 미술관장, 전직 도둑, 아트 딜러 등을 인터뷰하고 책을 썼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되찾는 과정은 추리소설처럼 긴박감이 넘쳐, 결과를 알면서도 읽는 내내 심장이 뛴다. 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시공아트 펴냄

  • 다큐멘터리

    <베란 토미치: 파리의 스파이더맨>

    2010년 5월 20일 프랑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레제, 마티스, 모딜리아니, 브라크, 피카소 작품이 사라졌다. 1년 뒤 범인을 잡았으니,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처럼 벽을 타고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기술이 신기에 가까운 베란 토미치였다. 그는 징역 8년형에 보상금 1억 400만 유로(약 1570억 원)를 지불하라고 선고받았다. <베란 토미치: 파리의 스파이더맨>은 진범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다. 그의 과거부터 파리시립현대미술관을 털기 위한 준비 과정과 실행 방법까지 밝힌다. 감독 제이미 로버츠 출연 베란 토미치

  • 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

    전쟁은 인류의 적이지만 예술의 적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역사적 건물과 예술 작품이 파괴되고 불타고 사라졌다. 가는 데마다 ‘쓸어 담는’ 수준으로 작품을 약탈하는 나치에 대항해 1943년 만든 부대가 ‘모뉴먼츠 맨’이다. 학자·예술가·미술관장·학예사 등 340여 명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작품을 지키고, 나치가 숨긴 작품을 수색해 제자리로 보냈다. 그중 하나가 얀 반에이크가 1432년 완성한 ‘겐트 제단화’.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가 잔인한 전쟁과 예술의 의미를 묻는다.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맷 데이먼, 조지 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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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현정
photography. ⓒ 위키미디어, 각 미술관·박물관,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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