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몸짓과 머리 위로 솟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짜릿한 표정. 서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와 동시에 하지 못할 운동이라는 결론에 닿기 일쑤였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한데, 다가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는다니. 그저 두렵게 느껴지던 서핑이다만 올해는 큰 마음 먹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월포해수욕장에 도착해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넘실대는 소리가 예상외로 위협적이지 않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모래사장에 발을 내딛는다.
모두를 위한 포항의 바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풀잎은 언제 봐도 좋지만, 바다는 필요할 때 한 번씩 찾는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은 답답한 현실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소망을 포함한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파도 소리로 마음을 씻어 내리려 어느 바다로 갈지 검색한다. 동해, 남해, 서해. 저마다 매력이 달라 행복한 고민이 이어진다. 동해에 닿으면 푸른빛을 띠는 물이 그저 아름답고, 그 풍경에 정신이 팔려 복잡했던 마음이 단순해진다. 여름이라 눈에 담는 걸로는 아쉬워서일까. 서핑, 패들보드, 제트스키 등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이 계절 못지않게 뜨겁다.
뜨거움과 설렘으로 모인 사람들이 포항 바다로 뛰어든다. 월포해수욕장, 용한리해수욕장, 영일대해수욕장 등 선택지도 여럿이다.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포항서핑협회 강성훈 전무이사를 만났다. 강 이사는 서핑 선수를 꿈꿨다가 현재는 서핑 숍을 운영하며 강습을 하고 있다.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해수욕장별로 무엇이 다른지 물었다. 아마 서핑을 위해 포항을 찾는 이라면 가장 궁금한 점일 테다. “용한리해수욕장은 해저지형이 암석으로 이루어져 파도가 매우 높아요. 중·상급자가 즐기기 좋은 포인트지요. 영일대해수욕장은 먹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해 제2의 광안리라고 부릅니다. 월포해수욕장은 해저지형이 모래로 이루어진 데다 수심이 낮아 입문자와 중급자가 안심하고 즐길 만한 서핑 포인트라고 할 수 있고요.”
그는 다른 지역에서도 서핑협회 일을 하며 바다를 몸소 느껴 봤기에 포항 바다만이 가진 매력도 안다. “북적거리지 않아 편안하게 서핑을 즐기는 곳이죠. 특히 처음 발을 내딛는 분께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힌다. 서핑이라는 분야에 그었던 선이 점점 희미해진다. 반복해서 밀려오는 파도가 경계를 서서히 지운 듯하다.
중요한 건 균형과 집중
웨트 슈트를 입은 수강생 네 명이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몸에 완전히 밀착되는 이 옷은 체온 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부력이 있어 몸이 물에 뜨도록 돕는 것은 물론, 일광 화상과 보드로 인한 부상을 방지한다. 서핑 숍에서 배운 이론을 몸으로 익힐 차례다. 각자 서프보드 정중앙에 올라가 엎드린다. 파도가 왔을 때를 가정하고 실습을 진행한다.
강사가 “파도 옵니다”라고 말하면 집중하라는 의미다. 모두 눈을 크게 뜬다. “패들(paddle)” 하면 시선을 전방으로 옮기고 가슴을 들어 올린다. 이때 바른 자세로 패들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수영의 자유형처럼 팔을 크게 교차하며 힘껏 물을 젓는다. 마지막으로 ‘테이크 오프(take off)’가 남았다. 보드 위에 서는 동작을 칭하는 말인데, 서핑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푸시(push)’와 ‘업(up)’으로 동작을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푸시”라는 말이 들리면 양손을 정확히 가슴 옆에 두고, 팔꿈치를 뻗은 채 시선을 멀리 둔다. “업!” 하면 빠르게 일어난다. 시선은 정면에 고정하되 양발만 끌고 와서 보드 위에 일어서야 한다.
막상 바다로 들어가니 보드에 올라타는 것부터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제대로 서지 못해도 즐거운 듯 수강생들은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응원을 보낸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세이 <아무튼, 서핑>에 나온 첫 문장을 비로소 이해했다. “대부분의 운동이 ‘0’에서 ‘1’을 더해가는 일이라고 치면 서핑은 ‘0’에서 ‘0.1’로 겨우 갔다가 ‘-3’으로 굴러떨어지는 일 같다. 근데 그 ‘0.1’이 미치도록 좋아서, 고작 파도 하나 타려고 몇 시간 동안 물살을 버티곤 한다.” 좋은 파도는 언제 온다고 확신할 순 없어도 다시 온다. 다른 모양과 다른 속도로 계속 올 테니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저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4년 차 어린이 서퍼도 만났다. 바다를 바라보며 보드를 든 양 갈래 머리 서퍼의 이름은 지혜. 거주하는 곳과 가까워 해마다 이곳에 온다. 물놀이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서핑을 처음 도전한 날 이야기도 들려 준다. “언니, 오빠들과 균형 잡기 게임을 했는데 제가 일등 했어요.” 그 성취감이 계속해서 바다로, 보드 위로 지혜를 이끈 걸까. 카메라 앞에서 멋쩍은 듯 몸이 경직되지만 보드 위에 서 있을 때만은 신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여름 동안 즐겁게 서핑을 배우고 가을에는 페스티벌에 참여해도 좋겠다. 월포 서핑 페스티벌은 올해 2회를 맞는다. 용한리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포항 메이어스컵 서핑 챔피언십이 선수들을 위한 행사라면, 월포 서핑 페스티벌은 서핑을 주축으로 다양한 부스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서핑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해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한다. 경기 종목이 없는 건 아니다.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날 마주한 여러 명의 서퍼는 파도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서핑이 파도에 맞서고 헤쳐나가는 운동이라 여긴 편견은 천천히 부서졌다. 서퍼는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기민하게 살핀다. 이 파도일까, 다음 파도일까. 서핑 실력은 상관없다. 바다는 그걸 구별하지 않은 채 그저 모래사장으로 밀려오고, 보드를 밀어 줄 뿐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는 바다에 마음을 내어 본다. 월포해수욕장, 이곳이라면 파도와 시작이 가능하겠다고, 제법 단단해진 마음을 모래사장 위에 새기고 왔다.
바다거북이 육지로 올라와 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 멈춰 육지와 바다를 잇는 것도 같다.
느려도 나아가고 있음을
이제 바다 밖에서 바다와 시간을 보낸다.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를 눈앞에 두고 소리에만 귀 기울여도 시간이 성큼성큼 흐른다. 난생처음 서핑을 하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바다와 더 친해진 느낌이다. 그 안으로 뛰어들든 주변을 맴돌든 바다는 모든 여행자를 넉넉히 감싸 안는다. 바다를 감상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가리 간이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변 근처에 조성한 이가리 닻 전망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이 102미터, 높이 10미터의 닻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바다를 향해 휜 형태로 시원하게 뻗어 있다. 끝부분에 세운 붉은 탑이 존재감을 뽐낸다. 이 모습이 익숙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드라마 <런 온>에서 주인공 미주가 선겸에게 당신을 기다리길 잘했다며, 바다가 예쁘다 말한 장소가 바로 여기다.
거북바위를 발견하는 재미도 누린다. 바다거북이 육지로 올라와 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 멈춰 육지와 바다를 잇는 것도 같다. 바위를 어루만지는 파도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전망대 끝에 다다르자, 배를 조종하는 조타기가 눈에 든다. 속도는 중요치 않다. 어디로 나아갈지 나만의 방향을 정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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