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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붙인다는 희망

예술과 봉제 산업의 역사가 재봉틀로 꿰맨 듯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옛 공간들이 서울 창신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UpdatedOn April 26, 2024

창신동에 전망 좋은 카페와 화려한 간판이 들어서고 있지만, 일부는 예전 그대로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길을 걷다 보면 점점 속도가 느려지니, 그 덕에 평범하고 낯선 장면을 천천히 둘러본다. 좁은 골목 사이로 펼쳐진 이 동네의 풍경이 색다른 즐거움을 안긴다.

동대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의류 도매가 이뤄지면서 창신동에 봉제 공장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엔 3000여 개가 성업했고, 지금도 일부가 남았다.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은 공장들이 들어선 골목으로, 몇 개의 안내판에 봉제 거리가 설명되어 있으니 유심히 살펴야 한다.

동대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의류 도매가 이뤄지면서 창신동에 봉제 공장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엔 3000여 개가 성업했고, 지금도 일부가 남았다.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은 공장들이 들어선 골목으로, 몇 개의 안내판에 봉제 거리가 설명되어 있으니 유심히 살펴야 한다.

동대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의류 도매가 이뤄지면서 창신동에 봉제 공장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엔 3000여 개가 성업했고, 지금도 일부가 남았다.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은 공장들이 들어선 골목으로, 몇 개의 안내판에 봉제 거리가 설명되어 있으니 유심히 살펴야 한다.

봉제 공장을 스치는 소리

오토바이가 계속해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린다. 교차하는 두 오토바이가 마치 손뼉을 치는 듯하다. 바쁜 일상이 펼쳐지는 골목, 봉제거리 박물관의 출발점을 알리는 마름모 형태 표식을 발견하곤 쭉 걸어가 보았다. 가정집과 비슷하게 생긴 봉제 공장이 양옆으로 줄지어 있는 이 골목을 봉제거리 박물관이라 부른다. 벽에 붙은 안내판이 낯선 봉제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까이 다가가 읽어 보니 ‘큐큐’는 재킷·코트 등에 사용하는 성냥개비 모양 단춧구멍을 가리키고, 일자형 단춧구멍은 ‘나나인치’라고 부른다 한다. 창신동 봉제 공장의 24시간도 짧게나마 엿본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작업 주문과 원자재 공급이 이루어지고, 11시부터는 원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들로 분주하단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인근 부자재 시장에서 재료를 구매해 하청 공장에 전달하는 시간이겠다.

이곳 역사가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면 마냥 흥미롭지만은 않다. 1970년대 평화시장, 소녀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집이 가난해서 공장 ‘미싱기’ 앞에 앉아야 했다. 하루 열네 시간 노동을 하며 받은 일당은 겨우 70원. 2023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679원이다. 이들이 부당함을 외쳤기에 현재 노동환경은 나아졌다. “언니 미싱 소리가 제일 좋은 것 같아.”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다. 일도 권리 주장도 치열했을 그들의 삶. 자신의 재봉틀 소리에, 옆 친구의 재봉틀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보냈을 테다. 고된 환경에서 그 소리는 어쩌면 내 옆 사람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소중한 증거였을지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떤 색깔이 떠오르세요?” 이 질문에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미싱사 신순애 씨는 답했다. “빨간색이 가장 정열적이지 않나. 내가 최선을 다해 했으니까.” 그 뜨겁고 귀한 역사가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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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기억하다

창신동 하면 떠오르는 두 명의 예술가가 있다. 박수근은 6․25전쟁 기간 미군 PX에 근무하며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창신동의 작은 한옥을 사들였다. 가족과 12년 사는 동안 마루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데, ‘판잣집’ ‘세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또 한 명의 예술가는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이다. 일본, 독일,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돌며 활동한 그는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유년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냈다. 백남준 가족이 소유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 중 하나가 2017년 백남준기념관으로 단장해 손님을 맞는다.

“난 사실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거거덩.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 한국 예술가들 수준이 당대의 서구라파나
일본의 아방가르드적 수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우.”

대문으로 들어서면 모니터에서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하늘을 향해 휘감아 오르는 형태의 붉은색 구조물이 존재감을 뽐낸다. 이 작품은 ‘다다익선’을 오마주해 백남준의 빛의 세계에 경의를 표하는 김상돈 작가의 ‘웨이브’다.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로 구성한 원작과 달리 3000여 개의 투명 아크릴 조각을 사용해 주변 환경을 투과하며 비춘다. 전시관을 거닐며 공간 한편에 키워드로 정리해 놓은 백남준의 생애를 통해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사유를 좇아가 본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으며 창의적이고 독특한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린 그이기에, 헤어진 유치원 친구를 보고 싶다 했다거나 <춘향전>과 ‘심청가’를 보고 들었던 추억을 이야기했다는 일화에 기대했던 말을 들은 것처럼 반갑다. “난 사실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거거덩.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 한국 예술가들 수준이 당대의 서구라파나 일본의 아방가르드적 수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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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리, 음악이 되다’라는 서사 패널 제목도 시선을 끈다.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한 도시는 꼬마 백남준을 공감각의 세계로 인도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방적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창신동 집 안에서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짓는 장면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다채로운 소리는 어린 백남준의 내부에 쌓이고 쌓여 작품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그의 피아노 사랑도 소개한다. 코끼리 같은 몸체에서 예쁜 소리를 내는 물체라 반했다는데, 그 아이는 훗날 피아노를 부수고 넘어뜨리는 퍼포먼스를 관객 앞에서 선보인다. 소리에 예민한 그는 글을 쓸 때도 리듬을 살렸다. “사랑아 사랑 사랑/ 사랑아 살랑 살랑/ 사랑아 달랑 달랑/ 사랑아 팔랑 팔랑/ 사랑아 갈랑 갈랑/ 사랑아 담방 담방/ 사랑아 빠각 빠각”. 1967년에 쓴 글 ‘뉴욕 단상’의 일부다. ‘사랑아’로 시작해 변주하는 구절이 입에 맴돈다. 꽃잎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땅에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수북한 낙엽을 밟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공간은 백남준을 기억하는 방이다. 미국 뉴욕 소호에 있던 백남준의 작업실 사진으로 벽면을 꾸며 사적인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강하다. 그 앞에는 생전 작품 도구로 애용했던 오래된 TV와 컬러 바를 배치했다. 색동 천 자락이 드리운 모습은 가까이에 자리한 컬러 바와 묘하게 겹쳐진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백남준이 무대에 올라 무반주로 춤사위를 선보이는 장면. 이내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송출된다. 수천, 수만 대의 TV에 오로지 그만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9분할, 16분할, 그 이상으로 쪼개져 무한히 상영될 것 같다. 짧은 상상을 마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문을 나와 입구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무얼 기억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거리를 안고 더 높이 올라갈 시간이다.

탁 트인 전망이 주는 기쁨

구불구불한 골목과 가파른 계단, 창신동의 높은 지대를 올라 도심을 내려볼 때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골목 끄트머리에 자리한 황토색 건물이 바로 산마루 놀이터를 대표하는 ‘풀무골무’다. 지역 특성을 살려 골무 모양으로 세웠다. 그 안에 벌집 모양의 정글짐이 우뚝 서 있고, 완만한 경사로가 정글짐을 휘감는다. 평일 낮이라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벽에 묻은 그들의 흔적은 훑어봄 직하다. 그중 눈에 띄는 문구, “엄마 사랑해!” 6·25전쟁 직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오른손 검지에 낀 골무가 낡도록 바느질했다. 그 희생에 감사를 표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 흔한 문장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바빠도 창신동에서 전망 구경을 빼놓긴 아쉽다. 경사를 이겨 내고 채석장 전망대 위에 서니 서울 일대가 한눈에 보여 건물을 찾는 재미도 있을 터. 서울 지형을 잘 몰라도 저마다 다른 높이, 색, 형태를 지닌 건물과 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아파트와 주택 사이에 자리한 채석장, 외롭지 않게 노란 개나리가 곁을 지킨다. 반대편에 위치한 한양도성 성곽까지 한자리에서 이 모든 존재를 눈으로 음미한다. 이런 게 호사가 아닐까. 역사와 사람의 숨결이 생생한 창신동을 마주한다. 빠르게 허물어지고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곳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참 귀한 동네다.

한양도성 낙산 자락에 위치한 창신동에는 채석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물 외장재로 석재가 필요했는데, 거리상 가까운 데다 질 좋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낙산은 재료를 공급하기에 용이했다. 깎고 허물어 서울을 세웠다.

한양도성 낙산 자락에 위치한 창신동에는 채석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물 외장재로 석재가 필요했는데, 거리상 가까운 데다 질 좋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낙산은 재료를 공급하기에 용이했다. 깎고 허물어 서울을 세웠다.

한양도성 낙산 자락에 위치한 창신동에는 채석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물 외장재로 석재가 필요했는데, 거리상 가까운 데다 질 좋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낙산은 재료를 공급하기에 용이했다. 깎고 허물어 서울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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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수아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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