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기에서 먹음직스러운 흰 빵이 줄지어 나온다. 동그란 표면에 곧 빨간 글자가 찍힌다. ‘平安(평안)’. 이맘때 홍콩 청차우섬 곳곳에서는 무사를 비는 마음이 담긴 빵을 만든다. 청차우섬은 과거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고기를 잡으며 생활을 이어가던 섬 주민들은 그들에게 종종 재산을 약탈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돌자 어민의 수호신이자 북방의 왕인 팍타이 신이 나타나 전염병을 없앴고, 섬에 평화를 가져왔다 한다. 이 이야기에서 기원한 것이 바로 청차우 빵 축제다.
해마다 음력 4월 5일부터 9일까지 팍타이 사원 일대에서 열리는 축제의 상징은 붉은 글자가 인상적인 평안빵이다. 참깨, 팥 등으로 속을 채운 달콤한 빵이 희생된 넋을 달랜다고 믿어 그들에게 바친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축제는 평안빵을 만들고 이웃과 나눠 먹는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악령을 쫓거나 겁주기 위해 신처럼 분장하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던 풍습에서 비롯한 피우식 퍼레이드가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전통 의상이나 신 복장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높은 장대에 올라 행진하고, 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사자춤, 용춤을 추는 이들이 거리를 메운다.
하이라이트는 10여 미터 빵탑에 오르는 롤빵 스크램블링 대회. 축제 시작 전부터 예선을 거쳐 인원을 선발하고 마지막 날 결승전을 치르는데, 참가자들이 모형 빵을 쌓아 만든 번 타워에 기어 올라가 경쟁을 벌인다. 물론 모든 참가자는 사전에 등반 교육을 받고 안전 장비를 착용한다. 위쪽에 놓인 빵일수록 점수가 높아 고지를 선점한 후 빠르게 빵을 챙기는 것이 관건.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대회 우승을 제일가는 영광으로 여기니, 그들에게 이 축제가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지금도 청차우섬은 여행자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온화한 날, 바다를 보며 평안빵을 한 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한다. 분명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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