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사랑 #이별 #기쁨 #슬픔
음악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는 증거다. 인류는 감정‧사건‧일상을 음악으로 만들고, 지금 내 마음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살아왔다. 가장 노래가 필요한 때는 역시 사랑과 이별의 순간. 수많은 대중음악이 이를 표현하면서 기차를 찾았다. 만나고 떠나는 일이 매일 매 시각 벌어지는 기차는 절절한 상황을 표현하고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기 적절한 공간이다.
특히 한국 가요에는 전쟁과 산업화로 만나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장면 등 시대상을 반영한 노랫말이 무수하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란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징병 의무제인 국가라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 주기 싫었”다는 노래도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기차는 사랑과 이별의 원인이고 목격자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으로 운명이 갈라지고, “희미한 어둠을 뚫고 떠나는 새벽 기차”에 “허물어진 내 마음을” 실어 보낸다. 누구나 탈 수 있기에 재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 준다 했지”. 옛 연인의 우연한 재회를 담담하게 담은 노래 때문에 시청역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저릿저릿했는지. 기쁘고 슬픈 모든 날에 기차가 다녀 다행이다. 적어도 “이별이 아파서/ 버릴 곳을 찾아서/ 무작정 기차를” 타는 게 가능하니까.
플레이리스트
이별의 부산 정거장, 고향역, 입영열차 안에서, 차표 한 장, 새벽 기차,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기차를 타고
Life
#인생 #시간 #평화 #여행
기차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첫걸음이었다. “외로운 세상에 살던 작은 마을의 소녀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야간열차를 탔어요”. 세상에 시달려 돌아오는 길도 기차가 함께한다. “그는 조지아행 야간열차를 타고 떠날 거예요/ 더 단순하던 시절로”.
일단 출발한 뒤에는 목적지까지 앞으로 나아간다는 특성상 기차는 인생길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 기차를 멈춰 주세요/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기차가 움직이는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칸칸마다 내 고통을 싣고/ 생각을 싣고/ 용광로는 과열되었지요/ 그러나 기차는 멈추지 않아요”.
기차의 또 다른 특징, 모든 승객이 한 방향을 향하는 공동 운명체가 된다는 점 때문에 평화와 인류애를 말하는 노래에도 기차가 등장한다. “어둠의 끝을 찾아서 평화 열차를 타요”. “전 세계 사람 모두 손을 잡아요/ 사랑의 열차가 출발해요”. 베트남전쟁 당시 발표한 곡들이 지금도 평화의 가치를 전한다.
뭐니 뭐니 해도 기차의 본질은 이동, 곧 여행이며 기차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사색과 낭만에 젖는 특권을 얻는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5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지금은 ITX-청춘이 옛 경춘선 무궁화호를 대신하지만, 이런 정서를 바칠 교통수단은 역시 기차뿐이다.
플레이리스트
Don’t Stop Believin’, Midnight Train To Georgia, Stop This Train, This Train Don’t Stop There Anymore, Peace Train, Love Train, 춘천 가는 기차
Classical Music
#클래식 음악
가곡, 오페라 등을 제외한 대부분 클래식 음악은 가사가 없다. 기차에 주목한 음악가들이 오로지 악기만으로 구현해 낸 기차 소리는 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듣자마자 기차를 연상시킨다.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오네게르의 ‘퍼시픽 231’은 아예 제목이 기차 이름이다. 현악기가 트레몰로로 울리다 관악기가 합류해 박자를 착착 맞출 때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달리기 시작하는 장면이, 유려한 현악 선율 부분에서는 차창 밖에 펼쳐지는 들판이 떠오른다.
덴마크 작곡가 룸뷔에가 지은 ‘코펜하겐 증기 기차’의 트라이앵글은 누가 뭐래도 ‘땡땡땡’ 소리. 증기 내뿜는 소리를 타악기가 완벽하게 재현하는 가운데 휘슬이 현장감을 더해 웃음을 유발한다. 브라질 작곡가 빌라로부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2번 중 ‘토카타’는 경적에 이어 규칙적인 리듬과 서정 넘치는 멜로디가 열차에 올라 자연 속을 달리는 기분을 선사한다.
기차 ‘덕후’ 작곡가로 드보르자크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열차 종류와 시간표를 달달 외울 정도로 기차를 사랑했기 때문인지 ‘유머레스크’ 7번,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를 기차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첫 음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 불후의 명곡,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기차가 낳은 곡이라고 작곡가가 말했다. 그 옛날의 기차 소리와는 달라졌어도 여전히 기차는 음악을 감상하는 데 최적의 감수성을 끌어내는 장소다. 적당한 소음, ‘창밖멍’, 좋아하는 음악, 기차 여행의 3요소.
플레이리스트
Pacific 231, Kopenhagener Eisenbahn-Dampf Galopp, Bachianas Brasileiras No.2-IV. Toccata(O Trenzinho do Caipira), Humoresque No.7, Symphony No.9 ‘From The New World’, Rhapsody In Blue
Jazz
#재즈
기차는 재즈를 닮았다. 기차의 규칙적인 소리가 철길과 마찰하면서 엇박을 만들어 내고, 그날그날의 날씨, 선로 상태, 승객 숫자 등에 따라 소리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모든 날의 기차는 단 한 번뿐인 연주를 한다. 재즈처럼. 수많은 재즈 음악가가 기차에 매료되었다. ‘테이크 더 에이트레인’은 미국 뉴욕 할렘가로 향하는 열차 에이트레인을 그린 곡이다. 창밖엔 풍경이 흐르고, 듀크 엘링턴과 밴드가 눈빛으로 교감하며 연주하는 뮤직비디오 분위기가 정말 사랑스럽다. 요즘엔 차내 정숙이 당연하지만, 경춘선 타고 떠나는 청춘들이 기타 치고 노래 부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경이로운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팻 메스니는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라스트 트레인 홈’에 담았다. 재즈 역사상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은 ‘블루 트레인’에서 기차의 움직임을 유려하게 보여 준다. 기차를 타지 않고도 덜컹거리는 기차에 앉아 있는 기분. 재즈가 기차와 얼마나 닮았는지 새삼 느낀다.
모던재즈콰르텟은 상상을 현실화했다. 기차 시대 이전 작곡가인 바흐가 기차를 목격했다면 어떤 음악을 썼을까 하는.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에서 가져온 멜로디에 기차를 연상시키는 리듬을 입혀 편곡했는데, 1720년대 곡이 모던한 기차 리듬과 이루는 조화가 감탄스럽다.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기차를 사랑하며 음악을 만들고 감상할 것이다. 음악 면에서도 기차는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 같은 존재다.
플레이리스트
Take The A Train, Last Train Home, Blue Train, Don’t Stop This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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