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기차와 함께한 오후_김현정
기차를 ‘타러’가 아니라 ‘보러’ 서울역에 왔다. 기차 구경도 식후경. 먼저 3층 식당가의 ‘땀땀 서울역점’을 찾았다. 광고사진에 혹해 고른 ‘매운 한우 소곱창 쌀국수’는 사진 그대로다. 이 집 상훈(商訓)은 ‘퍼 주자’일 듯. 소곱창을 듬뿍 얹은 푸짐한 쌀국수를 흡입하니 기운이 솟는다. 옥상정원에서 문화역서울 284의 거대한 지붕을 감상하고, 그 옆 도킹서울에 들렀다. 주차타워를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도킹서울은 기차 옆모습을 보는 명당이다. 이어지는 서울로7017에서 평균 2~3분에 한 대씩 오가는 KTX, KTX-산천, ITX-새마을, ITX-마음, 무궁화호, 전철, 화물열차 등 온갖 기차를 실컷 지켜봤다. 기차에 더 다가가고 싶어 통일로를 따라 걸었다. 염천교에서는 기차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기차 뷰 성지’ 서소문 건널목에서는 코앞으로 지나가는 기차에 감탄했다. 땡땡땡 소리는 어찌 이리 정다운지. 내친김에 충정2교까지 가 터널을 들고 나는 기차에 손을 흔들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예쁘고 낭만적인 기계 덩어리. 기차 안 사랑하는 법, 그게 뭔데! 기차가 있어 행복해요.
용산역
몸과 마음을 채우는 나들이_김수아
경인선 철도가 한강 이북까지 이어진 1900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용산역. 처음에는 작은 목조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복합 문화 공간처럼 규모가 크고 볼거리도 많은 곳으로 변모했다. 인근에 세련된 카페와 세월이 느껴지는 옛 건물이 공존해 운치 있다. 7분 정도 걸어 도착한 ‘뿌리서점’,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는 출입구가 왠지 비밀스럽다. 헌책방의 묘미는 존재조차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것. 김근태 화백의 <들꽃처럼 별들처럼> 전시 도록이 눈길을 끈다. 초록, 주황, 노랑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과 작가의 시선으로 본 장애인의 모습을 담았다. 잘 모르는 세계를 타인의 눈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 소중히 품는다. 그 외 다섯 가지 버전의 <어린 왕자>와 절판된 책들을 훑었다. 이젠 허기를 채울 차례. 용산역 아이파크몰 7층에 자리한 비건 식당 ‘플랜튜드’에서 ‘트러플 감태 크림 떡볶이’에 바게트를 추가해 먹었다. 고소한 마카다미아 크림소스가 속을 든든히 채워 준다.
영등포역
맥주로 잇는 역사 산책_남혜림
영등포역은 경인선 개통과 함께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경부선에 편입되고 노량진역 임시 역사가 놓이는 등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이곳은 수도권 전철 1호선과 ITX-새마을, 무궁화호 등 일반 열차와 KTX가 지나간다. 서울의 다른 역과 비교해 일반 열차 정차 횟수가 적다고 눈 돌리면 서운하다. 승강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1번 출구로 나왔다. 걸은 지 5분이 채 안 되어 영등포공원이 보인다. 비밀을 하나 말해 보자면, 공원 부지가 맥주 공장 터라는 사실! 재료 수급이 용이한 역 근처에 공장을 세운 것이다. 공원 중심부에서 1930년대에 실제로 사용했던 거대한 담금솥을 마주한다. 공원뿐 아니라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도 맥주 공장 터임을 증명하는 기념물이 있어 산책길이 흥미롭다. 하늘이 어두워진 후, 맥주를 마실 요량으로 수제 맥주를 취급하는 역 근처 펍 ‘이목구비’에 들어갔다. 흑맥주 ‘영등포터’에 피자를 곁들여 맛보니 비로소 맥주로 이은 여정이 완성된다.
청량리역
옛 서울을 만나는 시간_강은주
청량한 어감 때문에 자꾸만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이름 청량리. 가장 믿을 만한 어원 중 하나는 오늘날 홍릉근린공원 옆에 자리한 청량사라는 고찰이다. 청량리역은 1911년 10월 15일 영업을 개시한 이래 지금까지 수도권 전철 1호선과 경원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수인분당선 등이 오가는 서울 동쪽 교통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서쪽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여전히 낯선 청량리역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다. 동대문구청에서 운영하는 근사한 아카이브 ‘동대문구 기억 여행’(memory.ddm.go.kr)을 참고해 청량리역 검수차고-삼익아파트-답십리 굴다리 지하차도-경동시장-청량사에 이르는 동선을 짰다. 빽빽한 마천루가 펼쳐진 청량리역 북서쪽과 달리 검수차고가 위치한 남동쪽은 빛바랜 사진 같은 옛 서울의 정취가 고스란하다. 오래된 아파트, 알록달록한 네온사인 간판, 닳고 닳은 담벼락. 잃고 싶지 않은 풍경이기에 사진을 100장은 찍었나 보다. 경동시장 앞 ‘전통한방다전 경동점’에서 쌍화차를 마시며 앨범을 정리했고, 지금 그 결과물을 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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