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휘영청 밝다.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 변함없이 차고 기운다지만 정월의 첫 보름달은 어쩐지 특별하다. 음력 1월 15일을 정월 대보름이라 부르며 각별한 날로 여기는 한국처럼 타이완도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을 원소절이라 이름 짓고 뜻깊게 보낸다. 원소절은 설날인 춘절 다음에 찾아오는 타이완의 두 번째 명절로, 예부터 사찰이나 집에 등불을 내건 채 폭죽을 터뜨리고 모두의 안녕을 기원했다. 오래전 황제의 즉위를 기념하거나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 거행한 이 의식은 시간이 흘러 민간에 널리 퍼졌고, 오늘날 천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에 날려 보내는 등불축제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화려한 등불축제 덕에 세계에 이름을 떨친 신베이, 핑시 같은 도시는 이맘때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핑시 천등 축제는 방문자 수가 매년 10만 명이 넘을 정도라니, 지역 주민에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중대한 날일 테다. 정부 차원에서 기획하는 ‘2024 타이완 등불축제’ 역시 성대하다. 2000년까지는 타이베이에 자리한 주요 사찰을 무대로 했으나 최근 해마다 개최지를 바꾸어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타이완 역사가 40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지역 선정에 공을 들였다. 무대는 바로 남부에 위치한 도시 타이난. 1624년 네덜란드가 원주민이 거주하던 현재의 타이난 땅을 발견한 뒤 점령하고 지배하기에 이르는데, 이때가 타이완이 처음으로 서구 문헌에 이름을 남기는 순간이다. 타이난 곳곳을 누비다 보면 과거의 흔적을 쉽게 발견한다. 네덜란드가 주도해 건축했다는 안핑 고성 유적, 타이완의 경제 기반을 마련한 타이난 운하, 타이완의 역사를 한 곳에 응축한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 등이 지난 시간을 증명하니, 과연 4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의 주인공으로 선정될 만하다.
도시에 다시 밤이 찾아든다. 수천 개 천등이 타이난의 깜깜한 하늘을 수놓는다. 각자의 소원과 축복이 커다랗고 둥그런 달을 향해 느릿느릿 떠간다. 지구에서 보낸 편지가 언제 달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소원을 빈 이들의 마음만은 모두 같을 것이다.
‘2024 타이완 등불축제’가 타이난 안핑과 타이난 고속철도역 일대에서 2월 3일부터 3월 10일까지 펼쳐진다. ‘영광으로 빛나는 타이난’을 주제로 여는 축제는 각종 등불 작품으로 옛 수도 타이난의 웅장함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문의 www.taiwantou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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