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한다. 가게는 10월만 되어도 트리와 각종 전구로 꾸며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고, 거리에는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진다. 이토록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필리핀에 ‘크리스마스의 수도’라 여겨지는 곳이 있다.
팜팡가주 산페르난도는 예부터 수공예 랜턴으로 유명한 도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팜팡가 토착어로 ‘파룰 삼페르난두’, 또는 필리핀어로 ‘파롤’이라 부르는 등을 집집마다 다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다. 그 시작점을 찾아 필리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약 300년의 시간, 스페인은 지역 주민에게 랜턴을 들고 행진하며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라고 명했다. 랜턴은 예수의 탄생을 뜻하는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했는데, 랜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예수와 사람을 연결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자이언트 랜턴 페스티벌이 산페르난도의 연말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축제에는 산페르난도의 8~10개 마을이 참여한다. 전구 수천 개와 카피즈 조개껍데기 등으로 장식해 각 마을의 특징이 드러나는 랜턴은 지름이 무려 6미터에 달한다. 크리스마스캐럴, 행진곡, 현대 크리스마스 음악에 맞추어 4~7분 동안 랜턴이 반짝이고 디자인, 색상 조합, 관객 반응 등을 기준으로 심사를 거쳐 최고 랜턴이 탄생한다. 축제 마지막 날은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랜턴에 불을 밝힌 채 퍼레이드를 진행해 장관을 이룬다. 랜턴에 불이 들어오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방문객은 저마다 환호하거나 춤을 추며 황홀한 광경을 감상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같은 소망이 생겨난다. 반짝거리는 저 랜턴처럼 다가올 새해도 빛나기를. 그리하여 모두가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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