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항해에도 숨 돌릴 기항지가 있다면 좋겠다. 이왕 바라는 거, 온화한 해풍이 1년 내내 밀려오는 고즈넉한 부둣가이기를 꿈꾼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잔 뒤, 낯 모르는 얼굴 틈에 섞여 헤엄치고 낚시하고 맥주 마시면서 한없이 게으른 시간을 보내다가,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도 괜찮은 곳.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서쪽 일리아 지방 피르고스시에 자리한 작은 바다 마을 카타콜로는 막연한 상상에 실감을 부여하는 장소다.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과 부둣가에 정박한 통통배, 외벽을 알록달록하게 칠한 노천카페가 소박하면서도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은 마을엔 사로니코스만의 피레우스에 이어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여객 규모가 큰 크루즈 항구가 있다.
초호화 크루즈에서 벌어지는 희비극을 그린 영화 <슬픔의 삼각형>에 나오는 장면 일부도 바로 이곳에서 촬영했다. 영상 속 카타콜로의 풍광은 온갖 소동이 난무하는 선실과 대조를 이루며 묘한 잔상을 남긴다.
카타콜로 항구는 이오니아해를 누비는 동부 지중해 크루즈 여정의 기항지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발한 배가 사나흘이면 여기에 닿는다. 아침에 잡아 올린 해산물을 파는 식당과 선술집이 늘어선 길 뒤쪽엔 전형적인 해변 상점이 모인 거리가 이어진다. 일리아 지방에서 빚은 잘 익은 포도주, 갓 짜낸 듯 향긋한 올리브유를 파는 식료품 가게와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공방이 이따금씩 발길을 멈추게 한다.
크루즈 승객 중엔 항구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카타콜론 박물관까지 둘러보는 호기심 많은 이도 있을 테다. 플라톤이 사용했던 알람 시계의 원리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알찬 전시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 대부분은 마을 밖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자동차로 30여 분 달리면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도시로 유명한 올림피아에 닿는다. 제우스와 헤라 신전의 빛나는 기둥을 마주하는 순간, 인생이란 제법 살아 볼 만한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최고급 크루즈 여행을 떠난 승객들이 배가 전복되면서 뜻밖의 사고를 겪는다. 웃음 뒤에 쓴맛이 남는 블랙코미디로,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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