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모두 녹았다. 대륙이 물에 잠기자 사람은 딛고 설 땅을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돈다. 김청귤 작가의 판타지 소설 <해저도시 타코야키>의 배경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살기 위해, 또는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연대와 배려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디스토피아에서 늘 사랑을 외치고, 타인 대신 희생한다. 무녀와 인어의 관계를 그린 <재와 물거품>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사랑. 곧 망해 버릴 세계에서도 끝내 춤추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는 낭만적인 예술가에게 대화를 청했다.
Q. 작가님의 작품 대부분이 판타지 문학입니다. 비현실적인 세계를 설정하거나 SF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해저도시 타코야키>를 예로 들게요. 실제로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60미터 정도 상승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책의 배경처럼 바다만 존재하는 세상은 아닌 거죠.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서는 모든 땅이 잠기고, 바다에 갑자기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아요. 상상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이 힘들어서 상상에 기대나 봐요. 인간은 너무 많은 걸 만들고, 과소비하죠. 그 결과 지구는 점점 오염됩니다. 한쪽에서는 인간, 동물 할 것 없이 새 생명이 계속 태어나요.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선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디스토피아에서도 행복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Q. <재와 물거품>과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다른 이야기지만 바다라는 배경이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바다는 무슨 의미인가요?
A. 어릴 적 바닷가에서 살았어요. 조금만 달려가면 바다에 닿았죠. 떠오르는 기억은 몇 없지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던 것과 잠수해서 수면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선명해요. 제게 바다는 그리운 곳이에요. 어릴 때 기억이 소중해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바다는 생명, 순환을 의미하기도 해요. 반대로 모든 것을 앗아 가는 무서운 곳이기도 하고요. 죽음과 생명이 돌고 도는 공간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고, 다시 사랑하는 일이 어울리지 않나요?
Q. 작가님의 작품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주제는 다르겠지만, 작가님이 소설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A. <해저도시 타코야키>에 “우리는 멸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을 거라 믿었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작가의 말에는 “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겠습니다”라고 썼고요. 태어나면 죽는 게 당연해요. 그 사이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하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 밀려오고, 지치고, 좌절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고, 사랑하고, 행복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준비하는 차기작 역시 로맨스입니다. 여름이 떠오르는 <재와 물거품>과 다르게 겨울과 어울리는, 몸종과 아씨가 주인공인 고전풍 소설입니다.
Q. 바다의 계절 여름입니다. 작가님이 추천하는 여름 여행지가 궁금합니다.
A. 지난봄에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운전을 못해서 기차나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한 곳을 찾다가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에 갔는데 모래사장이 정말 길더라고요. 파도 소리 들으며 해변을 걷는 것도 좋았고, 벤치에 앉아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도 생각나요. 다시 부산을 방문하더라도 바다를 실컷 보고 싶어요. 돼지국밥도 먹으러 갈 거예요!
김청귤 청귤 10킬로그램을 사서 고군분투하며 청귤청을 만들었던 기억 때문에 필명을 김청귤로 지었다. 2019년 안전가옥 단편 공모전에 당선된 <서대전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구역>을 시작으로 앤솔러지 소설집에 참여했고, 경장편 <재와 물거품>, 연작소설 <해저도시 타코야키>를 출간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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