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 필요할까. 잭 다니엘스는 많은 이에게 위스키 그 자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미국 위스키이자 셀럽이 그토록 사랑하는 위스키.
숯 여과 공정을 거쳐 저만의 맛과 향을 완성한 잭 다니엘스를 마신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이게 위스키다.
대중적. ‘수많은 사람의 무리를 중심으로 한’이라는 의미다. 뜻이 이러하기에 이 단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대중적인 제품이 있다. 사람들은 더 싼 가격에 보다 큰 만족을 얻으려 한다. 만족감에 열중해서 가격을 따지지 않는 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가격 대비 성능인 가성비를 추구한다. 그래서 대중적이라는 단어를 가성비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가 많으며, 거듭 강조하건대 가성비는 가격과 성능을 동시에 따지는 개념이다. 어렵게 설명한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해, 대중적인 제품에 최고의 품질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문장은 틀렸다. 이거나 저거나 다 그르다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잭 다니엘스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수많은 사람이 가장 맛있다고 손꼽는 위스키.
사각 병, 검은 라벨의 유혹
잭 다니엘스는 놀랄 만큼 팔린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위스키 가운데 독보적 1위다. 자체 브랜드 중 ‘올드 넘버 7’만 연간 1억 5000만 병이 160개 나라에서 판매된다. 다른 브랜드를 모두 더해 2억 병에 이를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연매출이 39억 달러이고, 이는 5조 1070억 원이다. 지구 탄생 이래 최고로 흥행한 영화 <아바타>의 성적이 29억 달러로, 2009년 개봉 이후 14년간 수익을 합산한 수치다. <아바타>가 영화 산업에서 나아가 문화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떠올려 보자. 매출액이 전부는 아니나 한 가지는 남김없이 확실하다. 무슨 영화든, 문화 콘텐츠와 제품이든 잭 다니엘스는 그것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성취를 일궜고 계속 쌓아 가는 중이다. 궁금하다. 전 세계 사람이 줄기차게 찾고 마시는 잭 다니엘스는 도대체 어떤 위스키일까.
위스키를 잘 몰라도 각진 병과 검은색 라벨을 어디선가 봐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어마어마한 판매량은 물론이고, 온갖 위스키가 범람하는 오늘날 역시 독특하다 느껴지는 디자인 때문이다. 병 모서리를 되도록 둥글게 만드는 여느 위스키와 다르게 잭 다니엘스는 사각에 가깝게 꺾었다. 게다가 온통 검은 라벨을 두르고 글자를 빼곡하게 채웠다. 강렬하다. 그리고 숱한 이가 매혹되었다.
앞에 놓으면 주변 분위기를 달라지게 하는 위스키는 적지 않다. 한 발 나아가 잭 다니엘스는 저만의 분위기를 창조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배우 알 파치노와 등장하는 신처럼, 그저 잭 다니엘스를 옆에 뒀을 뿐이지만 나와 동등하게 분위기를 장악해서 결국에는 내가 돋보인다. 전설이 된 밴드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병째 입에 털어 넣는 너무나 유명한 사진도 그렇다. 내친김에 말해서 무수한 뮤지션이 잭 다니엘스를 떠받들었다. 너바나, 머틀리 크루…. 프랭크 시나트라의 경우 사후에 가족이 잭 다니엘스를 묘에 함께 묻었다. 잭 다니엘스가 대기실에 없어서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기에 그 결정엔 추모 이상의 의미가 담겼겠다. 잭 다니엘스는 시나트라 셀렉트를 출시해 자신을 숭배한 대가를 기렸다.
숯에 여과하는 위스키
매혹하는 디자인은 인기를 끄는 이유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누가 뭐래도 위스키는 맛과 향이다. 이쯤에서 짚어야 할 사실. 잭 다니엘스는 테네시위스키다. 잠깐, 미국에서 생산하는데 버번위스키가 아니라고? 버번위스키는 미국 연방 주류법을 지켜야 한다. 주재료인 옥수수 함유 비율, 오크통 사용 방법 등 까다로운 규정에 부합해야 버번위스키라는 이름을 쓴다. 2013년 미국 테네시주가 위스키 관련 법률을 공포했다. 테네시주에서 생산할 것,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를 적용할 것. 그래야 테네시위스키라고 명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는 버번위스키 규정과 동일하다. 와일드 터키, 포 로지스, 버펄로 트레이스, 우드포드 리저브를 비롯한 이름난 버번위스키 증류소가 켄터키주에 자리한다. 잭 다니엘스 증류소는 테네시주 린치버그에서 위스키를 빚는다. 위치가 다른 건 알겠고,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Lincoln County Process)는 무얼까.
잭 다니엘스 증류소를 방문한 이는 아주 특별한 모습을 만난다. 사탕단풍나무 장작을 거대하게 쌓고는 모조리 불태우는 것이다. 활활 타오른 장작은 숯이 되고, 직원들이 이를 증류소 내부로 가져가 전용 통에 쏟는다. 잭 다니엘스의 모든 것이라 해도 충분한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의 정수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숯이 가득한 수 미터 높이 전용 통 위에 기다란 파이프가 놓였다. 증류를 마친 원액이 파이프의 자그마한 구멍에서 떨어진다. 한 방울, 한 방울, 천천히. 장작을 태울 때 위스키를 부은 덕분에 숯은 이미 향이 스며든 상태다. 파이프에서 낙하한 원액이 향내 나는 숯을 통과해서 통을 빠져나가는 데 3일에서 5일 소요된다. 차콜 멜로잉(Charcoal Mellowing)이라고도 부르는 이 공정을 거쳐서 불순물이 사라진 원액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이런 다음에야 원액을 오크통에 넣어 숙성한다. 잭 다니엘스 증류소는 “오크통이 몇 년 동안 하는 일을 우리는 며칠 만에 달성한다”라고 말한다.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는 분명 잭 다니엘스의 맛과 향을 결정짓는다.
잭 다니엘스를 즐길 시간
1866년, 애칭이 잭인 재스퍼 뉴턴 다니엘이 증류소를 세웠다. 어려서부터 주조 기술을 배워 온 그는 야망이 컸고 장사 수완이 빼어났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네이선 그린에게 숯 여과 공정을 전수해 적용했으며, 당시에 파격적인 사각 병을 디자인했다. 또한 밴드를 동원하는 요란한 방법으로 위스키를 홍보했다. 그가 완성한 공정, 디자인, 홍보 방법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매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서 유지하는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 변함없이 각지고 검어서 왠지 가지고픈 유리병, 한 뮤지션이 투어 기간에 아침마다 시리얼을 넣어 끼니로 마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등. 160여 년 전 그때를 그대로 옮긴 듯 고고하게, 그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할 듯 건실하게 잭 다니엘스가 우리 앞에 있다. 대량생산이 선물한 저렴한 가격의 혜택을 마음으로 먼저 음미하고, 자 이제 마실 차례다. 부드러이 올라오는 바닐라 향을 감상한다. 기분 좋게 거칠어서 더 달콤한 맛을 입안에서 굴린다. 여운은 나중에 느끼기로 한다. 다시 글라스에 코를 대고 입을 맞춘다. 잭 다니엘스를 앞에 둔 분위기, 이 맛과 향을 즐기기만 해도 지금은 짧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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