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입니다. 광주 하면 으레 뜨거운 저항 의지나 강건한 시대정신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와는 정반대의 감각을 환기하는 주제라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를 어떻게 구현할 계획인가요?
A. 지난 3년은 팬데믹, 환경오염, 인종차별, 전쟁 등 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 위기를 실감한 시기였습니다. 큐레이터로서 미술이 이런 위기의 순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다가 ‘유약어수(柔弱於水)’라는 어구를 발견했죠. 강한 것을 이기는 건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물이란 뜻인데, 마음에 와닿더군요. 광주 또한 부드럽고 예술적인 이미지 아래 강한 정의감, 용감한 저항 정신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이 도시가 걸어간 항쟁의 길을 생각하면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산문적 제목을 내세우기로 결심한 겁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광주 정신이 오늘날 세계 곳곳의 다른 미술가들과 공명하는 현장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Q. 그러고 보니 한국의 김순기·장지아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여성 작가가 참여해 전체 작가의 절반을 이루었다는 점, 그리고 예술감독이 여성이라는 점도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A.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니 참여 작가의 절반이 여성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비교적 적은 분야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아직 이런 차별이 버젓이 존재하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별을 넘어, 국적이나 문화를 논할 때 한쪽이 우수하고 다른 한쪽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없애 보자는 뜻에서 인류 공동체의 수평적 관계성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지구가 당면한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하나라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연대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Q. 신작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공언하셨지요.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 주신다면요.
A.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 현장과 사회·정치적 맥락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행사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처음 공개된 작품들은 일반 관객은 물론 미술 전문가에게도 생소합니다. 전시 공간에서 맞닥뜨린 낯선 작품을 이해하고 싶을 때는 설명을 꼼꼼하게 읽어 보세요. 잠시나마 작가의 시선을 상상해도 좋습니다. 어떤 의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공감 가는 부분을 발견할 겁니다. 관객 여러분이 무슨 이야기를 탐지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Q. 영국 런던을 무대로 오랫동안 일하셨지요. 광주와 런던의 비슷한 점, 또는 다른 점이 궁금합니다.
A. 광주 시민이 광주비엔날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귀감이 될 만합니다. 그간 광주비엔날레가 가장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동시대 미술 작품을 선보여 온 데에는 관객의 적극적인 관람 태도와 열렬한 참여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사람이 모여드는 대도시인 런던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나, 광주비엔날레에 비견할 만한 축제는 없습니다. 제가 몸담은 테이트 모던처럼 훌륭한 미술관이 여럿 있긴 합니다만, 광주비엔날레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현장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Q. 이번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광주 예술 기행을 계획하는 이에게 어떤 여정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A.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외부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나무가시 아트폴리곤, 예술공간 집이 광주 구시가지, 양림동, 상무지구 등 다양한 지역에 자리하니, 동네 곳곳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예상합니다. 이왕이면 광주에서 며칠간 머물며 여유롭게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겠네요. 본전시 외에도 해외 9개국의 예술 문화 기관이 참여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비엔날레라는 큰 행사 안에서 한층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전시장 밖에서 한 곳을 꼽자면, 무등산을 올라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한 발짝 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세계 미술 현장을 광주로 집결하는 연계 전시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광주시립미술관(네덜란드 프레이머 프레임드), 이이남스튜디오(주한 스위스 대사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스라엘 CDA 홀론), 동곡미술관(주한 이탈리아 문화원), 은암미술관(중국미술관, 주한 중국 문화원), 이강하미술관(캐나다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코어퍼레이티브), 10년후그라운드(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문화원), 양림미술관(주한 프랑스 대사관), 갤러리 포도나무와 ACC(우크라이나 참여 협의 중) 등 도시 전역에서 동시대 미술을 체험하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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