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문을 열 때부터 이미 손님은 웃고 있다. 메뉴를 보면서 오늘의 디저트를 숙고하고, 주문 즉시 만들기에 잠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정다운 대화로 채우고, 마침내 눈앞에 메뉴가 등장하면 감탄하고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는 디저트가 눈과 코, 입에 이어 마음까지 행복하게 하는 ‘소나’. 성현아 셰프는 2013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 잡은 뒤 지금껏 작은 주방에서 ‘작품 활동’ 중이다.
# 오너 셰프의 길 요리에 늦게 입문했어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20대 후반에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회의가 들었지요. 미래가 안 그려지더라고요.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내 길은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그럼 무엇을 할까. 회사 다니면서 제과제빵을 꾸준히 배웠거든요. 요리에 관심도 많았고요. 퇴사하고 준비해서 30대 초반에 유학을 갔고, 돌아오니 어느새 30대 중후반이었어요. 레스토랑에서 일도 해 보고 식품 관련 기업에 입사하려고도 했는데 역시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내가 만들고 싶은, 나만의 디저트를 하자. 가로수길 큰 도로에서도 몇 걸음 들어와야 보이는, 2층의 작은 공간 ‘소나’의 시작이었지요.
# 자체로 완성된 요리 유학을 가기로, 디저트를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했어요. 늦은 만큼 제대로 해야 했으니까요. 학생 때 라스베이거스 MGM 호텔에서 실습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다양한 레스토랑을 거쳐 마지막에 프렌치 레스토랑 ‘조엘 로뷔숑’ 견습생으로 들어갔어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주방은 신세계였지요. 무려 18코스 요리에 디저트만 두세 코스라니. 극도로 섬세한 작업 끝에 탄생한 디저트는 모양도 아름답고 맛도 다채로웠어요. 가히 작품이라 할 만했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는지 제가 졸업하기도 전에 제안을 해 주셔서 2년 정도 일했어요. 외양만 예쁘거나 적당히 단, 식사 마무리로서 으레 내는 게 아니라 자체로 훌륭한 요리가 되는 디저트를 경험했어요.
# 나의 디저트 이런 고백은 우습지만,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솔직히 단맛은 쉽게 질리잖아요. 식재료 각각의 맛을 살려서 단맛과 다른 맛을 조화롭게 하고, 허브로 복합적인 맛의 층을 만들거나 온도를 달리해 색다르게 접근하죠. ‘오! 초콜릿’ 메뉴를 예로 들어볼게요. 아래쪽에는 차를 우려 넣은 크렘브륄레를 깔고 초콜릿 무스,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을 쌓은 다음 맨 위에는 아주 얇은 판 초콜릿을 올려요. 손님이 따뜻한 초콜릿 소스를 부으면 판 초콜릿이 녹으면서 구멍이 뚫리고 내용물이 드러나죠. 층층이 차별되는 식감과 온도의 온갖 초콜릿을 맛보도록 설계한 메뉴예요. 디저트는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음식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고 특별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제 역할이죠. 빨강이라는 색에 수많은 변주가 있듯이 단맛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를 지녔는지 보여드리는 디저트, 여기에 먹는 과정까지 즐거운 디저트를 구상합니다. 물론 예술적으로 예뻐야 하고요.
# 여전히 공부하는 사람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파인다이닝 셰프님들이 낸 책은 구해서 읽어요. 디저트 말고 파인다이닝이요. ‘지나치게 디저트스럽지 않은 디저트’를 내놓고 싶거든요. 저희 ‘샴페인 슈가볼’ 소스에는 생강과 후추가 들어가고, ‘레몬’이라는 메뉴에는 새싹 허브를 장식해요.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상상과 도전을 하는 일이 즐거워요. 저는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요리를 시작했잖아요. 눈뜨면 출근해 종일 서서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문 닫는 날에도 클래스 같은 외부 일정으로 쉴 틈이 없거든요. 정말 지치는 순간도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괜찮다, 재미있다, 이런 생각이 지치는 순간을 덮어요. 셰프님들 책을 보거나 새 디저트를 구상할 때요. 머릿속에 여러 디저트가 완성돼 있거든요. ‘소나’를 운영하는 10년 동안 저도 그만큼 성장했다고 믿어요. 첫 마음, 파인다이닝을 방문하지 않아도 파인다이닝급 디저트를 맛보게 해 드리겠다는 포부는 그대로지만요.
샴페인 슈가볼, 이스파한 서울
슈가볼 안에 색색 꽃잎과 분홍빛 샴페인 거품, 딸기와 딸기 판나코타 등을 넣은 ‘샴페인 슈가볼’은 영롱한 외양 덕분인지 단시간에 대표 메뉴가 되었어요. 국내외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해 주셨고요. 설탕 공예 디저트가 일반적으로 불투명한 광택을 살리는 데 비해 저는 내용물을 눈으로 먼저 즐기시라고 투명하게 만들었어요. 얇은 설탕 막을 톡 깨뜨려 먹는 퍼포먼스도 재미를 주지요. ‘이스파한 서울’은 세계적 셰프 피에르 에르메의 장미 향 디저트인 이스파한을 재해석한 메뉴예요. 장미와 리치, 라즈베리를 조합한 이스파한에 딸기 소르베, 자몽 그라니타, 머랭 스틱 등을 더했어요. 달콤함과 상큼한 맛, 다양한 식감의 조화가 매력이랍니다.
성현아 셰프가 사랑하는 미식 공간
훌륭한 셰프님이 많아서 저도 늘 배워요. 빵 만드는 아내와 디저트 하는 남편이 운영하는 따팡은 모든 빵과 디저트가 감탄스러워요. 프랑스로 유학 간 한국 여성이 프랑스 남성과 결혼하고 서울 후암동에 연 가게랍니다. 장봉뵈르는 꼭 드셔 보세요. 한식을 빼놓을 수 없죠. 서울 메이필드 호텔 내 봉래헌을 오래 지킨 이금희 셰프님은 전통 조리법의 대가세요.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신선로를 강력 추천합니다.
<KTX매거진>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