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정취, 맛은 흔한 단어다. 어떤 장소와 맞댄들 그만의 의미를 완성해 주기에 두루두루 사용하고 곳곳에서 듣는다. 하지만 앞에 ‘한국’을 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 전통과 결부해 생각하는 한국적 풍경이나 정취, 맛을 보여 주는 장소는 고민할 여지가 있다. 셋을 동시에 드러내는 곳은 더욱 그러하다. 도시 하나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옥마을 골목에서 올려다본 기와 풍경, 경기전을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 정취, 계절마다 다른 재료를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의 맛. 이제는 도시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장 우리다운 모습을 귀하게 간직해 온, 바로 전주다.
산줄기가 높고 길어 딛고 설 땅이 좁은 한반도에서 지평선이 바라보일 만큼 트인 호남평야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호남평야를 서쪽에 둔 비옥한 대지를, 또한 산이 나머지 방위에서 둘러 감았다. 자연이 선물하는 안락을 고이 건네받으면서 전주는 조선 시대에 수도와 맞먹는 위상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 어진을 봉안했으며,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큰 전주성을 품었다. 전라감영에서 호남을 총괄한 고장에 평야의 산물이 밀려들었으니, 시대를 풍미한 자취가 오늘날 어디에서보다 넉넉하다. 동학농민혁명처럼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에 섰던 전주성 풍남문, 1380년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승리를 기념해 연회를 열었던 오목대, 기원이 후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선 시대 성곽 남고산성이 이 땅의 내력을 밝힌다.
자연도 역사만큼 생생하다. 이맘때 물억새가 피어오르는 전주천에서는 조선 시대 별장 한벽당이 가을 물가 분위기를 성실하게 돋운다. 오리나무 군락이 푸른 오송제에서도 자연을 모자람 없이 느낄 수 있다. 조화하는 자연을 그릇에 담고는 비벼서 한 입, 전주비빔밥은 어찌 그리 자연을 닮았는가. 그래서일 것이다. 한국적인 풍경, 정취, 맛을 보여 주는 전주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거듭 만나도 그때마다 색다르다. 가장 우리다운 모습을 귀하게 간직해 온 곳, 여기는 전주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한벽터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그 처음이 오늘이니까 오늘까지만 서툴겠습니다.” 청춘의 일이란 날마다 낯선 세상과 맞닥뜨리는 것,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기. 낯선 너에게 닿아 의지했으나 상처받고 끝내 사랑하는 희도와 이진은 이야기한다. 함께하기에 일어설 수 있다고. 초록빛 계절에 한벽터널 앞에서 둘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드라마 <연모>
@경기전
왕가에서 태어났으나 버려진 담이는 쌍둥이 세손의 죽음으로 비밀리에 세자 자리에 오른다. 담이는 여성이었고, 쌍둥이 오빠인 척 연기해야 했다. 세자 휘가 된 담이는 지운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신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비운에 직면한다. 경기전은 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했으며 언제는 사랑을 위해 이별을 고한 명장면의 무대였다.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전주 일대
혼자라서 외롭지만 씩씩하게 사는 춘희는 소모임에서 주황을 만난다. 가정 폭력 후유증으로 말을 더듬는 주황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의 그림자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전주 출신 최진영 감독이 골목과 공원 등 고향 곳곳을 따듯한 감성으로 담아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았고, 일본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재능상을 수상했다.
뮤직비디오 <그늘과 볕>
@전동성당
가야금 트리오 헤이스트링이 전동성당 앞에서 ‘그늘과 볕’을 연주하는 모습을 KBS전주가 <국악한마당> 영상으로 기록했다. 드러나는 양상은 전혀 달라도 꼭 같이 존재하기에 모두 빛나는 그늘과 볕. 모자란 부분을 서로 보완하는 둘처럼 고풍스러운 전동성당, 깊이 있는 가야금 선율이 눈과 귀를 충만하게 채운다. 가만히 보고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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