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라 말하니 애틋하고, 따듯하기도 한 여운이 입가에서 아른거린다. 비밀스러운 혹은 환하게 맑은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은 밀양의 고운 어감. 뜻풀이 그대로 빽빽한 볕이 깊숙이 내리쬐는 이 도시엔 햇살의 풍경이 두텁게 어리었다. 화악·재약·천태·운문의 산줄기가 겹겹이 솟아오른 사이에서 밀양강이 남하하고, 그 아래 낙동강은 삼랑진을 휘감아 바다로 나아간다. 산이 그윽하며 강물이 유유해 빛살이 차곡하게 담기는 땅의 경관은 봄부터 겨울까지 찬연하다. 봄이면 종남산에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한다. 여름엔 얼음골 너덜 지대 틈에서 얼음이 청량한 바람을 선사한다. 가을 재약산의 억새가 아름답고, 눈 내린 겨울 시례호박소엔 그지없이 고요한 서정이 흐른다.
밀양에 터 잡은 삶의 풍경도 자연만큼이나 정취가 깊다. 도심에서 밀양강을 내려다보는 영남루는 신라 시대에 사찰로 창건했으나 허물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했다. 결국 1844년에 재건해 지금껏 자리를 지키면서 밀양의 햇살과 밤빛을 비추고 있다. 조선 시대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월연 이태 선생이 1520년에 세웠다고 알려진 별서 월연정 또한 소실과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마당에 아롱진 연분홍 배롱나무 꽃과 밀양강 정경을 모아 펼치는 별서가 사위에 포근한 기운을 내준다. 한때 빛바래도 기어이 반짝이는 삶들을, 이 대지는 너그러이 품어 왔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연이 유장한 세월 동안 이곳에 쌓였을 것인지. 사계절 수려한 곳, 사람이 견실한 밀양은 어디에서나 속 넓은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 등장한 위양지, 드라마 <아랑사또전>에 나온 영남루, 영화 <밀양>의 배경이 된 도심 일대엔 현재도 영상 속 장면들처럼 자연과 사람이 가만가만 어우러져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밀양”이라고 말하니 여전히 애틋하며 따듯하기도 한 여운. 입가에 맴도는 그 고운 어감을 들이쉬어 본다. 산이 솟아오르고, 강이 남하하고, 억새가 흔들리는 빽빽한 볕의 대지가 가슴에 두텁게 어리어 간다.
이곳에서 촬영했어요
드라마
<붉은 단심>
@금시당 백곡재
자신을 폐위하려는 세력에 둘러싸여 왕이 된 이태는 왕권을 강화하고자 냉혹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정적인 유정을 마음에 두게 되고,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이 사극에서 유정이 머무르는 거처인 금시당 백곡재는 빼어난 영상미를 선보인다. 마루에 걸터앉은 유정 뒤에서 노란 은행나무가 애절한 분위기를 고조한다.
뮤직비디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영남루, 충혼탑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가 2019년 밀양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민요 ‘밀양아리랑’을 산뜻하고 경쾌하게 부르면서 영남루와 충혼탑 그리고 밀양의 산과 도심을 누비는 장면을 담았다. 메이트리는 같은 해 ‘아리랑’ 세계문화유산 등재 7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서도 이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영화
<소리굽쇠>
@삼랑진 일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할머니는 밀양에서 태어났다. 17세인 1941년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끌려간 뒤 해방이 될 때까지 고통을 받았다. 98세인 현재도 그때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박옥선 할머니의 삶을 독립 영화로 다루었다. 대부분 장면을 밀양에서 촬영한 영화는 피해자의 호소가 묻혀 버리고 아픔은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여 주었다.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될 이 땅의 비극이다.
영화
<밀양>
@밀양역 등
개봉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 <밀양>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주인공 신애가 그토록 바라던 구원이거나 그를 쓰러지게 하는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햇살 가득하던 영화 속 밀양역, 도심 거리 풍경이 오늘날에도 곳곳에 잔잔하게 고여 있다. 밀양시는 주요 촬영지였던 세트장을 매입하고 카페로 단장해 여행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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