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길이 있었다. 숲을 지나 마을로, 골짜기를 넘어 강변으로 가는 길에서 마음도 길을 걸었다. 걸음마다 가슴에 담기는 풍경들. 나무들이 하회마을 골목에 그늘을 드리웠으며 담장 너머 모래톱은 무성한 초록 풀을 품어 냈다. 낙동강은 막힌 곳을 돌고 파인 곳은 채우면서 흘렀다. 봉정사 나무 기둥이 천년 세월을 떠받들고, 어스름 내린 호수는 달빛을 비추었다. 태백산맥 줄기의 높은 땅, 안동이 산과 물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었다. 유장한 이야기를 따라 소요하는 동안 마음도 함께 거닐었다. 가슴에 담긴 풍경이 차곡차곡 쌓이던 초여름 어느 날, 안동은 잊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청량리역에서 KTX-이음을 타고 안동역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자연의 순리, 하회마을
부용대에 올라 낙동강과 하회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안동 도심을 통과한 뒤 산자락에 붙어 이리저리 요동하는 낙동강은 해발 328미터 화산을 마주하고 나서야 부드러운 굽이를 그린다. 강물이 느릿느릿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화산 서쪽에 평지 한 조각이 남겨졌고, 여기에 하회마을이 들어섰다. 하회(河回)라는 이름부터 물이 돌아 나간다는 뜻이니 오롯하게 자연이 일군 경관인 셈이다. 마을 건너편 절벽 부용대는 그런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한눈에 잡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물줄기와 모래톱이 감싼 강둑에서 벚나무가 줄지어 다시 마을을 감싸는 모습이 아늑하다. 평화로운 한때를, 더디 휘도는 강물처럼 만끽했다. 만약 강이 자신을 막는 산을 타박하듯 몰아쳤다면 평지도, 하회마을도 존재할 수 없었다. 저 강물과 평지는 느릴지언정 돌아서 결국 나아가는 자연의 순리를 내보인다. 그곳에 사람이 모여 마을을 만들었다. 길이 휘어진들 서두르지 않는 담박한 삶의 정취가 부용대로 불어오는 것 같다.
절벽에서 내려와 낙동강을 건너 하회마을에 들었다. 우거진 들머리 숲길이 먹빛 기와와 누런 초가지붕을 층층이 진 골목으로 이어진다. 흙담에 햇살이 떨어지고 한옥 돌계단에는 나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나뭇잎에서 신록을 묻힌 바람이 사방으로 푸르게 번진다. 그리 멀지 않은 저쪽에서는 논이 강둑 벚나무와 더불어 마을을 둘러 감았다. 언제 또 이런 평온을 만날 수 있을까. 새소리 울리는 하회마을이 안식을 건넨다. 서쪽 만송정 숲까지 산책을 즐기고 거듭 걸어 양진당에 닿았다. 고려 말인 13세기 이곳에 들어와 씨족 마을을 이룬 풍산 류씨 가문의 대종가로, 조선 시대 문신 겸암 류운룡 선생의 고택으로도 불린다.
우뚝한 솟을대문을 넘자 안채와 사랑채를 두른 마당이 나온다. 마을에 감도는 평온이 여기에서 샘솟는대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니겠다. 하회마을 입향조 류종혜 선생이 자리 잡은 곳에 지었다 알려진 양진당은 역사만큼이나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쪽마루와 흙담 밑에 핀 꽃을 쓰다듬었다. 구경하는 여행객만 홀로 갸웃대는 반듯한 양진당으로 곧바르게 솟은 먼 산 풍경이 간단없이 넘어오고 있다.
낙동강의 삶
겸암 선생의 동생 서애 류성룡 가문 종택인 충효당은 양진당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졌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내면서 국난을 극복하는 데 헌신한 서애 선생을 기리고자 후손과 유림이 힘을 모아 건립했다. 서애 선생은 평생 청빈한 삶을 살았다. 벼슬을 마치고 귀향해 1607년 풍산현 작은 초가에서 별세하자 상을 치르지 못할 것을 염려한 백성들이 스스로 부조할 정도였다. 조정이 사흘간 조의를 표하도록 했지만 백성들은 또한 자발적으로 하루 더 일상을 멈추고 죽음을 애도했다. 선생은 사라졌어도 양진당처럼 반듯한 충효당에 그의 삶이 남았다. 수백 년간 건실하게 사람을 기른 하회마을이 오늘도 고즈넉하듯이. 화산을 에두른 낙동강이 삶의 흔적인 양 남긴 모래톱을 벚나무 줄지은 강둑에서 바라보았다. 여전히 먼 산 곧바르고, 신록을 머금어 번지는 바람 푸르다.
천등산의 봉황, 봉정사
하회마을에서 북쪽으로 가 서후면 산기슭에 닿으면 그곳부터 천등산의 영역이다. 해발 574미터 천등산(天燈山)은 하늘에서 비추는 등불이라는 뜻으로, 안동의 진산 학가산을 마주하고 서 있다. 산마루 높이가 대부분 비슷하고 산세는 순해 중턱으로 오르는 길이 온화하게 느껴진다. 크고 작은 논을 펼친 해발 250미터 산허리에 도착했다. 산줄기를 오른 논이 더는 나아가지 않는 이곳에서 숲길이 시작된다. 나무가 어찌나 빼곡한지 하늘이 저를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나뭇잎 사이에서 파란 점만 찍을 뿐이다. 그래도 눈부시다. 나뭇잎이 물결같이 일렁이는 초록의 바다, 비탈 곳곳 야생초가 벌이는 싱그러운 향연. 미세한 틈을 거친 빛으로도 세상은 환하다. 이대로 온전한데 무엇이 궁해 아쉽다 할 것인가. 햇살 한 줌 어깨에 이고 비탈을 마저 걷는다.
천등산 중턱에 이르자 울창하던 숲이 천천히 벌어진다. 나무가 연 틈에서 전각들이 고색창연한 빛을 쏟아낸다. 천년 고찰 봉정사로 가는 길. 가파른 언덕 위 만세루가 여행객을 굽어본다. 만세루 아래 통로는 좁고 나직하다. 작디작은 저 공간을 지나야 봉정사에 든다. 부딪치지 않도록 허리를 굽혀 좌우를 살핀다. 돌계단 밟는 소리만 메아리치는 길목에서 얼굴을 계속 바닥으로 향한다. 목을 길게 빼거나 콧날을 추켜올린다면 누마루에 부닥칠 터. 낮춘 몸으로 누마루 높이를 가늠하고 계단 간격을 헤아리며 돌계단 끝에서 대웅전이 찬찬하게 떠오르는 광경을 감상했다. 봉정사 마당에 올라서는 천등산에 안긴 대웅전과 극락전, 오솔길을 봤다. 봉황이 쉬는 듯 기다랗게 누운 사찰이 아름다워 고개를 돌리기 힘들다. 낮아서 보이는 것과 낮아져야 가는 길이 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에서 많은 것을 보며 살아가는지. 누군가에겐 덧없고 다른 누군가에겐 알찬 지금, 우리는 간곡하게 걸어서 봉정사를 만났다.
만세루를 뒤로하고 대웅전에서 극락전으로, 극락전에서 화엄강당으로 이동했다. 봉정사는 7세기에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기록이 드문 까닭에 창건 이후 역사는 비교적 희미해도 고려 후기 극락전, 조선 초기 대웅전, 조선 중기 화엄강당 등 시대별 전각이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배흘림기둥이 주심포를 받드는 고려 건축양식의 극락전과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를 단 조선 건축양식의 대웅전을 차례로 훑었다. 시간의 더께를 얹은 나무 기둥이 굳건하다. 억겁을 지켜 온 천등산은 능선을 옹그려 사찰을 끌어안았다. 화엄강당까지 세 전각 모두 시야에 들어오는 담장 앞으로 봉정사의 세월이 밀려든다. 겸허하게 걸어 하늘과 천등산을 우러러본 숱한 순례자처럼 기쁜 마음으로 찬탄을 보낸다.
휴식의 환희, 영산암
봉정사를 마주 보고 오른편에 영산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놓였다. 봉정사 암자인 영산암은 사찰이라기보다 살림집 같은 모습이다. 석등, 향나무가 어우러진 중정이 정성껏 보살핀 한옥 정원을 빼닮았다. 나한전인 응진전을 비롯해 우화루, 관심당, 송암당에 툇마루를 놔 아담한 분위기가 한층 짙다. 툇마루에 앉아 중정과 눈을 맞췄다. 숲에 둘러싸인 공간을 외따로 누리고 있자니 가슴이 차오른다. 텅 비었으며 동시에 충만한 희열. 무르익는 고요가 열락을 속삭이는 영산암에서 숲길이 그랬듯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파란 점을 찍는다. 눈부신 안동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숲에 둘러싸인 영산암을 외따로 누린다.
텅 비었으며 동시에 충만한 희열. 무르익는 고요가 열락을 속삭여 준다.
자연의 선물, 낙강물길공원
해 보고 싶던 월영교 야경 탐방은 여행을 계획할 때 일찌감치 결정해 두었다. 해가 기우는 중이니 그에 앞서 들를 곳을 찾았다. 안동댐 북쪽, 낙강물길공원이다. 월영교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인 낙강물길공원은 어둠을 기다리는 동안 설렁설렁 걸어가 둘러보기 좋다. 월영교를 출발해 낙동강 덱 길을 따라 산책했다. 우측에는 강줄기가, 좌측에는 무성한 나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안동댐에 다다를 무렵엔 폭을 넓힌 낙동강이 광활한 풍경을 선사한다. 가슴을 두드리는 강과 나무가 어여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 여행은 내내 자연이 함께했다. 이리 풍요로운 자연이 예사로 나타나 여행객이 떠날 때까지 시야를 흠뻑 적시는 것이다. 낙동강 덱 길을 보인 안동은 이번에도 연이어 낙강물길공원을 내어 준다.
안동댐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나무 그림자가 둥치를 가린 숲에 산책로가 소담스럽게 걸쳐 있다. 얼핏 분수와 벤치가 보이지만, 입구에선 비밀의 화원인 양 전모를 밝히지 않는 공원에 걸음을 내디딘다. 이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메타세쿼이아, 전나무, 물풀, 연못. 작다면 작은 2만 6000제곱미터(약 7800평) 면적에 정원의 서정이 모자란 구석 없이 가득하다. 비밀을 걷은 공원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2000년에 조성한 폭포공원엔 야생동물이 뛰놀고 수련과 야생화가 열렸다. 도심으로 흐르는 낙동강 변의 자연 감상 동선을 안동댐 인근까지 끌어올린 폭포공원은 2017년 대대적으로 단장해 현재 이름과 모습을 갖추었다. 물풀이 한들거리는 호수에 분수가 물을 흩뿌리고 메타세쿼이아는 잔영을 비친다. 돌다리를 건너며 재잘대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갓진 시선을 분수와 잔영으로 던진다. 안동이 건네는 휴식이 감미롭다.
안동의 밤, 월영교
서산에 해가 떨어진다. 파랗던 하늘이 이제 거무스레해지는데 한편에서 붉디붉은 낙조가 피어오른다. 하늘을 복사한 낙동강은 타오르는 선홍색 빛을 파동에 담는다. 선명한 것이 어둑한 것으로 변화하는 시간, 머지않아 우리에게 밤의 망각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렇대도 오늘만은 뜨겁게 기억해 달라는 이 도시의 당부가 저다지 짙은 하늘에 아로새겨져 있다. 바람과 강물과 산이 맑은 안동이기에 무엇과도 섞이지 않아 명백한 황혼을 확인한다.
곧 낙조가 자취를 감추고 어스름마저 사라져 간다. 낙동강이 제 몸의 전부에서 어둠을 복사한다. 이로써 끝이 난 걸까. 월영교가 불을 켠다. 낙동강 변에도 불빛이 환하다. 삽시에 세상이 바뀌었다. 색조는 낮과 다르지만, 낮과 같이 깨끗하고 낮처럼 뚜렷한 안동의 밤이 왔다.
2003년에 개통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너비 3.6미터, 길이 387미터 나무다리 월영교를 걷는다. 미투리 형상 전망대가 다리 중간 월영정 양옆으로 볼록하다. 1998년, 안동 정상동에서 고성 이씨 이응태 묘를 이장하던 중 머리카락을 더해 만든 미투리 한 켤레와 편지를 발견했다. 조선 전기에 아내를 유달리 사랑한 이응태가 31세로 요절하자 아내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미투리를 삼고 편지를 쓴다. “함께 누워서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했어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투리 형상 전망대에 서서 낙동강을 본다. 초승달 모양 전동 보트인 문보트가 사람을 태우고 유유히 미끄러진다. 강변에선 사람들이 안동의 밤을 노닌다. 불을 켠 월영교가 점점 밝아진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에서 많은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지. 낮만큼 아름다운 이 밤이 이내 그리워지겠다. 어쩌면 꿈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잊지 않을 이름, 안동.
월영교가 불을 밝힌 안동의 밤. 초승달 모양 문보트가 유유히 미끄러진다.
낮만큼 아름다운 밤이 안동에 번진다.
안동의 즐길 거리&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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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호 캠핑 수상레저타운
풍요로운 자연이 깊은 역사와 전통을 만든 안동은 레저의 도시이기도 하다. 여름마다 많은 여행객이 찾는 ‘임하호 캠핑 수상레저타운’은 안동의 자연을 다채롭게 즐기기 맞춤인 여행지다. 안동 동쪽 임하호의 유일한 수상 레저 시설로, 여러 체험 가운데 무엇보다 호수 풍경이 배경이 되어 주는 캠핑이 유명하다. 캐러밴 11대, 글램핑 19동, 오토캠핑장 26면에서 숙박하면서 워터파크, 워터슬라이드, 웨이크보드, 영·유아 풀장을 한꺼번에 누린다. 레저 시설은 반려견도 입장할 수 있다.
문의 054-822-1212 -
단호샌드파크캠핑장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하얀 백사장이 펼쳐지는 ‘단호샌드파크캠핑장’은 안동의 대표 휴양지로 꼽힌다. 최대 8인까지 수용하는 캐러밴은 물론이고 오토캠핑장, 텐트 야영장, 글램핑장을 두루 갖췄다. 어린이 놀이터와 트램펄린, 농구장 등을 설치해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 재밌고 편하게 쉰다. 캠핑장 위치도 절묘하다. 낙동강생태학습관이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에 자리하며, 낙암정과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병산서원, 하회마을도 가깝다. 국토 종주 낙동강자전거길이 통과한다.
문의 054-850-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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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리조트 구름에
안동 도심 동쪽 야트막한 산에 예스러운 한옥들이 안겼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인 고택들을 이건하고 숙소로 단장해 2014년 문을 연 ‘전통리조트 구름에’다. 퇴계 선생 10대손인 이휘면의 칠곡고택 등 일곱 동의 역사를 헤아리며 산책하고 묵어가는 기분이 근사하다. 강화유리 이중창, 현대식 냉난방이 안온한 쉼을 보장하는 이곳은 올해부터 라운지의 조식 메뉴를 일반에 공개했다. 투숙하지 않아도 안동 백진주 쌀밥과 요일별로 반찬을 다르게 구성하는 전통 아침 밥상을 맛본다.
문의 054-823-9001 -
시에스타
천등산 자락, 봉정사 올라가는 길에서 예술적인 분위기가 흥건한 카페를 만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에 걸린 그림들이 화사하다. 왼편에선 갤러리가 반긴다. 카페와 갤러리를 구석구석 메운 예술 공간. 한희영 대표가 세심히 설계하고 지난해 7월 문을 연 ‘시에스타’가 마음의 갈증까지 풀어 준다. 서양화가인 한 대표는 안동에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고자 시에스타와 갤러리 ‘나모’를 붙여 세웠다. 매달 다른 전시를 여는 갤러리와 안동 땅콩을 갈아 만든 밀크셰이크 등 모든 메뉴에 정성이 깃들었다.
문의 010-2837-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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