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할 뿐 AI는 어디에나 있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계는 어떨까?

나는 지금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예술가 ‘아이다(Ai-Da)’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의 팔로워 수는 9만 9000명. 영국의 한 갤러리스트와 로봇 회사가 협업해 개발한 작업복 차림의 이 단발머리 로봇은 옥스퍼드셔의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며, 카메라가 내장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컴퓨터 알고리즘과 로봇 팔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그림은 지난해 11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미드저니(Midjourney), 달리(Dall-E)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처음 세상에 나온 3년 전만 해도 AI 예술 작품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AI가 만든 것을 과연 예술이라 할 수 있는지, 예술의 정의에 관한 케케묵은 논쟁은 잠시 접어 두자. 그보다 요즘 예술계가 관심을 갖는 건 ‘예술가들이 AI로 어떠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다. 곧 미국 LA에는 세계 최초의 AI 아트 갤러리 ‘데이터랜드(Dataland)’가 문을 열 예정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AI가 융합된 예술 경험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모델을 확립’하려는 데이터랜드는 첫 전시를 위해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과 코넬대학교 조류학연구소 소장품 등 수백만 개의 이미지와 소리가 포함된다. AI와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자연계의 데이터를 다중 감각 설치 작업으로 표현하며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아나돌은 지난해 북촌의 푸투라 서울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AI를 ‘생각하는 붓’이라고 말하는 아나돌과 그의 팀이 개발한 오픈소스 생성형 AI 모델 ‘LNM(Large Nature Model)’이 창조하는 건 시각적 이미지뿐이 아니다. 전시 공간에서는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0만 개의 향기 분자로 만든 독특한 냄새가 풍겼다.
예술을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보는 예술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인 최초로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한 김아영 작가는 전통 기법과 혁신 기술을 융합해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독창적 관점을 제시한다.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선보인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일종의 공상 과학 애니메이션 영화다. 주인공인 여성 배달 라이더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여러 세계의 자신과 만난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생성형 AI와 적극적으로 소통한 김아영은 이 대규모 멀티채널 작품에서 게임 엔진과 3D 모델링, 머신 러닝 등의 기술을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활용했다. 특히 매력적인 건 확률을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의 작동 방식과 기술적 한계를 다중 우주론이라는 사변적 현상에 매핑했다는 점이다. 전시 공간은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 속 미래 도시 같다. 이 같은 설치 방식과 표현의 도구, 작품 주제의 통일성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고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수젠 청의 작업 방식도 흥미롭다. 중국계 캐나다인 예술가 수젠 청은 MIT 미디어랩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뒤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탐구하는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인공지능 로봇 ‘더그(D.O.U.G: Drawing Operations Unit Generation)’를 직접 개발했다. 오랜 시간 그의 움직임과 드로잉 데이터를 축적해 온 더그는 헤드셋을 통해 작가의 생체 정보와 뇌파를 감지해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작가에게 새로운 그림을 제안하기도 한다. 더그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프로그램 같은 창작 도구가 아니라 그야말로 공동 작업자다.
“우리는 지금 예술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미드저니로 완성한 그림이 미술 공모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엑스(X)에는 공포 섞인 댓글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성에 종말을 고할 거라며 경계했지만 예술은 아직 살아 있고 세상은 조용하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적대적 경쟁자로 치부되어 온 역사는 유구하다. 카메라가 발명된 1800년대에는 사진을 예술의 치명적인 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달리 사진은 회화를 대체하는 대신 실험적인 현대미술 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고, 예술가들은 리얼리즘의 과거에서 벗어나 추상의 미래로 나아갔다. 뒤샹의 변기나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 백남준의 TV와 인공위성은 또 어떤가.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의 화두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였다. 2023년 챗GPT로 본격화된 생성형 AI 시장은 산업 전반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할 뿐 AI는 어디에나 있다. 물론 저작권이나 표절 문제 등에 관한 법적 논의와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홀리 헌던과 매트 드라이허스트 같은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AI의 데이터 오용과 저작권 이슈에 대응한다. 이들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업이 AI 생성 작업에 참고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구인 ‘스포닝 AI(Spawning AI)’를 만들기도 했다. 수수께끼 같은 알고리즘과 그로 인한 신뢰성 문제도 있다. 대체 시스템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건 매우 큰 불안감을 안긴다. 하지만 모르는 건 배우는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다면 학습하라. AI가 그러하듯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