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분재, 한 뼘의 미학

2026년 06월 01일

  • writer 박진명(헤이! 트래블 기자)
  • PHOTOGRAPHER 봉재석

한 뼘의 화분에 설계된 거대한 자연, 분재는 도심 속 사유의 정원이자 휴식처가 되어 준다. 공간에 자연을 들이는 서울의 감각적인 분재 숍을 소개한다.

도심 속 작은 숲
아틀리에 애채

‘나무에 새로 돋은 가지’라는 뜻의 순우리말에서 이름을 딴 아틀리에 애채는 공간 디자이너 출신인 채혜린 대표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이자 갤러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정원 가꾸는 모습을 보고 자란 채 대표에게 나무를 돌보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계절마다 나무의 모습이 변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정성 어린 손길을 건네면 더욱 강해지는 나무의 생명력이 더 큰 감동이었다. 대학교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채 대표는 나무를 하나의 풍경이자 시간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여긴다. 아틀리에 애채가 단순한 분재 숍을 넘어 전시 공간이자 창작자들의 아지트로 쓰이는 이유다. 서울 강남 주택가에 자리한 아틀리에 애채에 들어서면 화이트 톤의 공간 깊숙이 자연광이 들어와 마음이 따스해진다. 마치 숲속 갤러리에 온 듯한 기분. 수형을 자연스럽게 가꾸면서 화분과 돌, 이끼 등을 이용해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든 손길이 경이롭다. 계절별로 <애채숲 예술전> 같은 기획 전시를 열어 회화, 가구, 한지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하고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한다. 채 대표와 전문 가드너들이 진행하는 분재 클래스에서는 나무의 형태를 잡는 법부터 분갈이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 준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05길 53
문의 070-4416-0722

나무들의 소우주이자 식물 병원
레이아웃플랜트

서울 인왕산 수성동계곡으로 향하는 서촌의 골목길, 한적한 풍경 사이로 나무들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식물 편집 숍이자 분재 스튜디오인 레이아웃플랜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절제된 공간 구성이다. 무채색의 차분한 인테리어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저마다 독특한 수형의 분재와 관엽식물이 마치 갤러리의 조각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조대성 대표는 지난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분재와 함께하는 삶을 이어 왔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경기도 양주 분재원에서 나무를 돌보고 금·토·일요일에는 레이아웃플랜트에서 분재 클래스를 연다.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분재원으로 분재를 가져가 돌본다. “분재를 하던 이가 세상을 떠나면 누군가 그의 분재를 대신 돌봐요.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나무는 기나긴 삶을 살죠. 그런 걸 생각하면 이 작은 나무 앞에서 늘 겸손해집니다.” 어떤 이들은 레이아웃플랜트를 식물 병원이라 부른다. 상태가 심상치 않은 분재를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44

사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일상 풍경
블룸블루

손바닥만 한 분재부터 키가 1미터를 훌쩍 넘는 관엽식물까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식물 작업실이다. 박현규 대표는 음악 작업실에 들여놓은 나무가 죽어 가는 것을 살리려고 물꽂이를 시도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나무에서 뿌리가 나오더니 새순이 돋아났다. 당시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며 숨가쁘게 살던 박 대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큰 위안을 얻었다. 작고 연약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은 그에게 식물지기라는 새로운 직업을 선사했다. 서울 필동, 오래된 주택가에 자리한 블룸블루는 시원한 통유리창과 단정한 우드 프레임이 먼저 발길을 붙든다. 안으로 들어서면 파란색 카펫이 깔린 공간이 싱그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제각각 개성 넘치는 분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 대표는 분재가 관상용이 아닌, 사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일상 속 풍경이 되길 바란다. 계절마다 다른 색을 띠는 산앵두나무를 백자에 심고 초록 들판을 연상시키는 이끼를 덮어 완성한 분재는 관찰자를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36가길 83

자연을 사랑하는 부부의 창작 공작소
분재가

아내 유희조가 만든 화분에 남편 이재규가 묘목을 심어 파는 분재 숍. 서울 합정동 골목에 자리한 분재가는 2019년, 제주에 살던 부부가 어느 날 마당에서 자라는 풍나무를 집 안으로 들인 데에서 시작되었다. 3년 전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부부는 도예와 원예가 만나 하나의 완결한 세계를 이루는 분재에 닻을 내렸다. 이 대표가 분재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3년 후 나뭇가지의 위치다. 가지 하나를 덜어 낼 때도 3년 뒤의 밀도감을 치밀하게 설계한다. 그렇게 세심한 손길과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한 분재는 관상용 식물을 넘어 ‘작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붓으로 그려 넣은 듯 아름다운 수형에 완벽한 균형미를 이루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 준다. 도자기 클래스를 이끄는 유 대표는 흐린 날의 구름 같기도 하고 버드나무가 호수에 비친 것 같기도 한, 지극히 자연적인 색을 화분에 표현한다. 뒷마당 텃밭에서 모은 나뭇잎이나 풀을 흙 위에 올려 무늬를 내고 불에 구워 만든 펜던트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분재가만의 자랑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8길 42
문의 02-6396-0422

식물을 매개로 세상의 안부를 묻는
서간

낮은 한옥과 붉은 벽돌 건물이 어깨를 맞댄 서울 종로 필운대로 골목, ㄷ자형 한옥에 둥지를 튼 서간은 식물을 매개로 세상의 안부를 묻는 스튜디오이자 분재 쇼룸이다. 서간(書簡)은 ‘소식을 알리는 편지’라는 뜻의 한자어로, 유상경 대표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집에 있는 식물들이 문득 자신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느껴져 지어 두었던 이름이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나무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는 ‘자연 수형’이 유 대표의 분재 철학. 그는 스스로를 식물의 생장을 돕는 편집자라 이르며, 야생의 생명력이 깃든 나무와 화분, 돌, 이끼 등을 조화롭게 배치해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완성한다. 그래서일까, 유 대표의 분재는 이 작은 생명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탄생의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나무의 형태는 특정한 풍경을 담고 있어요. 나무 각각이 지닌 특성과 느낌을 강화하는 것이 분재의 핵심입니다.” 서간에서는 선이 가늘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한국 전통 분재와 함께 국내 작가들의 공예품도 만날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인터뷰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느린 호흡으로 생명과 교감하는 소규모 분재 클래스도 진행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1길 15
문의 070-8064-7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