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관계의 예술가 천근성

2026년 06월 01일

  • EDITOR 이미선
  • PHOTOGRAPHER 황필주

천근성 작가는 사람과 물건, 공간을 연결한다. 시선은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노숙인과 청소 노동자, 시장 상인, 버려진 물건 같은 도시 주변부를 예술의 중심으로 불러온다. 예술을 통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을 고쳐 주고 수리비로 그림을 받은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는 ‘집 수리’ 편과 ‘노점상’ 편으로 나뉜다. 집 수리를 일주일에 한 번만 할 수 있어 그림을 더 모으기 위해 서울역 앞에 노점상을 차렸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앞 조형물에는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은 오직 예술가만 만들 수 있을까. 천근성 작가는 이러한 질문의 답을 행동으로 보여 준다. 그를 알게 된 건 ‘만물미술트럭’을 통해서다. 알록달록한 셔츠에 낚시 조끼를 입고 파란색 팔 토시를 낀 채 만물미술트럭을 끄는 그를 예술가라 여기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돈 안 받아요. 그림 받아요”라고 적힌 트럭의 현수막을 보면 호기심이 동한다. 만물미술트럭은 동대문페스티벌 이벤트에서 출발한 이동형 시장 퍼포먼스다. 작가가 시장에서 장을 봐 트럭에 진열하면, 관객은 원하는 물건을 골라 그림을 그려서 값을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물건을 오래 바라보고, 집중해서 그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그림은 결제 수단이 되고, 관객의 시간과 노동은 화폐를 대신한다. 그리고 천근성 작가는 낮에는 장사하고 저녁에는 물건값으로 받은 그림을 전시한다. 소비를 창작으로, 관람을 참여로, 거래를 관계로 바꾸는 실험이다. 만물미술트럭 퍼포먼스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만물미술트럭 주인장의 촌스러운 2 대 8 가르마도, 유행 지난 보잉 선글라스도 예술적 행위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단체전 <습습하하>에서 선보인 작품 ‘트래쉬 만다라’는 버려진 장난감을 조각조각 해체해 만다라처럼 배열한 작업이다.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 ‘수원역전시장커피’를 위해 시장 상가의 빈 점포를 임대해 원두커피 전문점을 운영했다. 커피값 대신 그림이나 시, 낙서 등의 창작물을 받았고, 이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전시했다.

관계를 뒤집는 예술의 교환 실험
천근성 작가를 알린 작업은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다. 작가는 서울역 홈리스가 건넨 새해 인사에 캔버스 안 풍경화처럼 여겼던 홈리스를 이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파나 폭우, 폭염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웃의 안부가 궁금했고, 버려진 것들의 쓰임을 찾는 예술 집단 ‘피스오브피스’의 사물 돌봄 행위를 동네로 옮겨 왔다. ‘이웃집 홈리스’는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의 물건을 고쳐 주거나 쪽방, 텐트촌의 열악한 주거를 수리하고 그 대가로 노숙인들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받은 퍼포먼스다. 작가가 수리 노동을 내놓고 이웃 홈리스는 예술 노동을 내놓은 거다. 이를 통해 천근성 작가는 기술과 수고, 배려와 기억을 교환하는 관계의 형식을 만들고자 했다. 일회성 퍼포먼스로 끝내고 싶지 않아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 사물 돌봄 강의를 했고, 유기 사물로 바퀴 달린 집을 만들어 거리가 삶터인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DDP 잔디언덕에 문을 연 ‘필사 카페’는 돈 대신 필사를 커피값으로 받은 퍼포먼스였다. 타인의 삶이 담긴 문장을 따라 적고, 보이지 않는 존재와 교감하는 프로젝트다. 텐트와 폐박스를 활용해 부스를 짓고, ‘디딤돌 인문학’과 협업해 교정 시설 수용자나 노숙인처럼 사회 가장자리에서 살아온 이들이 쓴 시와 수필로 메뉴판을 만들었다. 문장을 따라 적으면서 글쓴이의 삶에 잠시 머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손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수원역전시장커피’는 ‘필사 카페’의 연장선에 있다. 전시를 위해 작가는 2개월 동안 노후한 상가 점포를 임대해 원두커피 전문점을 운영했고, 상인들은 그림이나 시 같은 창작물로 커피값을 지불했다. 돈으로 값을 치르면 거래가 끝나지만, 값을 매기기 어려운 창작물은 거래 후 관계를 남긴다. 천근성 작가는 커피값으로 받은 창작물을 모아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수원역전시장커피’ 프로젝트의 범위는 카페 운영부터 미술관 전시까지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퍼포먼스의 관람객이던 사람들이 미술관에 자신의 창작물이 전시되면서 참여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경제적 교환의 법칙을 낯설게 뒤집는 사람, 천근성 작가는 도시 주변부 사람들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호혜 관계의 이웃으로 바라보고, 기부가 아닌 그림·노동·말·기억을 교환하는 장면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겉으론 가볍고 괴짜처럼 보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날카롭다. ‘우리에게 무엇이 가치 있는가’ ‘예술은 어디까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계속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죠. 1999년에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닷컴 버블이 한창이었는데, 컴퓨터 관련 기술을 익히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학원에서 웹 관련 기술을 익혔고, 고등학생 때는 웹사이트를 제작해 용돈벌이를 했죠. 부모님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했지만 잘 맞지 않았어요. 미술대학은 순수 미술을 연구하고 작가를 양성하는 곳인데, 당시 저는 작가라는 직업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기질을 발휘해 미술 관련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름 전공을 살린 거라 여기며 조형물 만드는 회사를 다니기도 했어요. 다 해 보고 내린 결론이 ‘나는 작가가 되겠다’였어요.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의 이사님이 던진 한마디, “우리가 이렇게 먹고살 수 있는 건 다 작가들 덕분”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었어요. 미술 관련 산업은 작가가 있어야 작동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거든요. 그때부터 작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아르바이트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는 방법을 모색했어요. 9년이나 다닌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해였는데, 저 같은 작가 지망생들이 모여 있는 문래동으로 들어갔어요.

2012년 정크아트대회 수상 경력이 있어요. 문래동의 공간성에서 영향을 받은 건가요? 작업실 위치가 고민이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소음과 분진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거든요. 20세기 모던 보이들이 종로 다방에 모였던 것처럼 21세기 작가 지망생은 모여 있어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 서울 문래동이었어요. 솔직히 정크아트대회에 나가게 된 건 상품이 욕심나서였어요. 부상이 뉴욕 여행이었거든요. 공고를 보자마자 잴 것도 없이 지원했고, 당당히 1등을 했죠.

만물미술트럭으로 작가님을 알게 됐어요. 정크아트대회 우승 후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회에서 수상하고 작품을 판매하면서 정크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어요. 겉으로는 꽤 잘나가는 예술가가 된 거죠.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시에 노출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전혀 환경적이지 않았어요. 그저 만드는 것이 좋을 뿐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나 철학이 없었죠.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어요. 한 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점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대구예술발전소 레지던시에 지원했죠.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리셋하고 싶었어요.

리셋에 성공했나요? 대구예술발전소 스튜디오 옆에 청소 노동자 쉼터가 있어요.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없는 곳이죠. 작업실 근처 송풍관 판매 거리를 매일 지나는데,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그래서 송풍관으로 대구예술발전소와 청소 노동자 쉼터를 연결하는 설치 작업을 했어요. 이후 주고받는 게 생겼어요. 시원한 바람을 보냈더니 송풍관 모터 위에 귤이 놓이더라고요. 좀 더 긴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저의 새로운 이웃들을 전시에 초대했어요. ‘예술은 모른다’며 거절하시기에, 제가 전시 해설을 자청했고요. 전시실을 청소하면서 작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누구나 미술을 향유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구나. 그렇다면 작가로서 내 작업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깨닫게 된 거예요, 꼭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형태가 아닌 행위도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표를 맡고 있는 피스오브피스는 어떤 조직인가요? 대구의 레지던시에서 나와 많은 지역을 떠돌았어요. 자본이 넉넉하지 않으니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작업을 했어요. 결혼을 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오면서 한 템포 쉬기도 했고요. 이후 귀농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지인이 운영하던 문래동 게스트 하우스를 물려받았어요. 여행을 좋아하니 잘 운영할 거란 기대와 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게스트 하우스를 접고 일부 공간을 작업실로 만들어 마을회관 같은 곳으로 운영했어요. 문래동에 터를 잡았던 2011년에 비해 작업자들끼리 교류가 많이 줄었거든요.

귀농의 꿈은 어떻게 됐나요? 농촌에 잘 적응하려면 제대로 농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사 학교를 찾아갔어요. 전국귀농운동본부였는데, 농사 기술이 아닌 식량 위기와 기후 재난을 이야기하는 곳이었어요. 생태에 관심이 많고 한때 업사이클링 작업을 했던 저와 결이 잘 맞았고요. 안정적으로 귀농하기 위해 공동체 이루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그 개념을 문래동 마을회관에 적용해 봤어요. 끈끈한 유대감이 있는 공동체에 업사이클링 개념을 버무려 쓰다 남은 자투리 물건을 교환하는 ‘자투리 잡화점’을 열었어요. 자연스럽게 교류가 늘어나면서 파티와 워크숍을 열고, 작가들끼리 협업을 하기도 했어요. 제가 바라던 것이 현실이 된 거죠.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쳐 예술가들이 고립되었어요. 코로나블루를 겪는 이들에게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자, 가끔 축구도 하자’고 선동했어요. 피스오브피스는 그렇게 탄생한 동료 작가들의 모임이에요. ‘평화의 조각들’이란 뜻인데, 자투리 잡화점의 상호이기도 하죠.

‘이웃집 홈리스’ 프로젝트에서는 왜 작가님을 그리게 했나요? 이유는 세 가지예요. 먼저 저를 기억하게 하고 싶었어요.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이 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기억해 줬으면 했어요. 둘째는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싶었어요. 그려 본 적이 없거나 아주 오래됐을 거라 여겼거든요. 안 해 본 걸 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새롭게 시도하고,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거든요. 나를 한계 짓지 않고, 나의 한계를 넘는 힘이 돼요. 마지막으로 그림을 모아 전시했을 때 그분들이 미술관에 오길 바랐어요. 서울역에는 공공 미술관인 문화역서울284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노숙인들은 들어가지 않아요. 저는 더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혹은 화장실이 급할 때도 미술관에 들어가거든요. 심리적 장벽을 없애고 싶었어요. 아쉽게도 <이웃집 홈리스> 전시는 문화역서울284가 아닌 경복궁 메트로미술관에서 열었지만, 다녀가신 분들이 방명록을 작성한 걸 보고 정말 감동했어요.

‘이웃집 홈리스’가 노동과 그림을 교환한 첫 프로젝트였나요? 제주도에서 쓰레기로 기념품을 만들어 관광객들한테 판매한 적이 있어요. 관광객이 만든 쓰레기를 스스로 섬 밖으로 가져가게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석관시장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석관시장에 대한 기억과 시장에 마지막까지 남은 참기름집의 기름을 교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이웃집 홈리스’ 이후에는 돈 대신 필사를 커피값으로 받는 ‘필사 카페’를 운영했고, 이를 확장해 수원 역전시장에 카페를 차리기도 했어요.

공공 미술이나 사회 참여 예술을 하면서 수혜자와 제공자의 비대칭을 경계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학창 시절에 자원봉사를 많이 했어요.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솔직히 그분들을 돕고 싶은 마음보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외국인을 만나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이해하는 지점이 생겼어요. 저는 작가로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예술로 표현하는 것뿐이에요. 물론 조심스럽게 다가가요. ‘이웃집 홈리스’ 때는 그들을 대상화하는 걸 경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책에는 답이 나와 있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과 엮여야 그 감각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홈리스 행동’이라는 단체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면서 그곳의 활동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점검받았어요.

요즘은 만물미술트럭을 끌고 전국 일주를 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지방으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다음 장을 봐요. 올해는 지역에서 기른 것을 지역 사람들이 소비하도록 연결하는 것이 목표예요. 내년이나 후년부터는 지역과 지역을 잇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원주 시장에서 장을 봐서 부산이나 광주에서 만물미술트럭을 펼치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이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작가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여행은 익숙한 일상의 사이클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에요. 몸이 낯선 공간에 있으면 무뎠던 감각이 선명해지는데, 그 감각이 진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목욕탕에서 바로 온탕에 들어갈 때와 냉탕을 거쳐 온탕에 들어갈 때의 감각은 완전히 달라요. 경험에 따라 같은 장소와 같은 장면도 다르게 감각하는 거죠. 저는 여행을 통해 내 안에 축적된 경험들이 정동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을 살피게 돼요. 작은 낯섦이 자극이 되어 익숙한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 감각을 다시 삶과 작업에 적용해 보는 거죠. 다시 말해 저에게 여행이란 정동의 흐름을 살피고 예술 활동으로 이행하기 전 감각을 깨우는 동기부여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