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에 저마다의 사연이 입혀지듯 좋은 미술 작품에는 다양한 해석이 더해진다. 공포와 혐오, 충격과 황홀, 시각적 탐미와 잔혹한 역설이 뒤섞여 감성과 이성을 뒤흔드는 강렬한 세계, 데이미언 허스트의 멀티 유니버스.

대학 시절 시작한 이후, 시공간에 따라 변주되며 허스트의 시그너처가 된 ‘스폿 페인팅’ 작업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미술 애호가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허스트는 지난 수십 년간 현대미술계 한복판에서 작가이자 기획자, 비즈니스맨으로 종횡무진하며 미술사의 문제적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슈퍼스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한물간 작가의 뒤늦은 기착지’라거나 ‘과도한 예산 투입’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터져 나왔다. 지난해 50만 관람객을 동원한 론 뮤익 전시의 흥행 공식을 답습한다는 지적과 함께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기획’이라는 매운 비판도 따랐다. 무거운 이름값을 증명하듯 여러모로 뜨거웠던 반응 속에 드디어 전시가 시작됐다.



시대의 아이콘, 현대미술의 포식자
데이미언 허스트, 현대미술사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 있을까. 1988년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 재학하던 중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린 후 수십 년간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비엔날레, 옥션을 넘나들며 현대미술계를 호령한 그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군단 ‘YBAs(Young British Artists)’의 핵심 인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미술 시장의 지배자, 막강한 자본에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꾼 혁명가이자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인 영민한 기획자. 허스트는 강력한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시대의 강력한 아이콘이자 현상이 됐다.
기획부터 오픈까지 무려 4년이 걸린 이번 전시의 미덕은 명확하다. 허스트의 대표작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그간 사진과 기록으로만 접했던 주요 작품을 망라하며 35년 예술 여정을 폭넓게 펼쳐 보인다. 대학 시절부터 끝없이 변주해 온 ‘스폿 페인팅’ 연작과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어 회전속도와 물감의 유동성, 색상에 따라 우연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스핀 페인팅’ 연작 등 초기작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방을 지나면 그를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려놓은 대표작들이 관람객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에는 일명 ‘상어’로 불리는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 놓여 있다. 20세기 미술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로 기록될 이 센세이셔널한 작품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유리 수조 안에 거대한 상어를 가둔 설치미술 작품이다. 금방이라도 관람객의 머리를 집어삼킬 듯 입을 쩍 벌린 채 생생하게 박제된 상어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공포와 불멸을 향한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대면시킨다. 건너편에서는 또 다른 대표작 ‘천년’을 마주한다. 커다란 유리장 한쪽에 파리 유충이, 다른 한쪽에는 피가 흥건한 소 머리가 놓인 풍경으로 인한 시각적 충격이 촉발한 공감각적 환상일까. 부화한 파리들이 피 냄새를 좇아 이동하다 살충기에 부딪혀 죽음을 맞이하는 이 충격적 설계 앞에서 관람자는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자리를 뜨지 못한다. 무작위적 죽음이 반복되는 광경을 생생히 지켜보면서도 진짜인지 거듭 확인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 냉정하리만큼 잔혹한 생명의 순환을 미술관 한복판에 펼쳐 보이는 이 작품 역시 허스트의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향하고 있다.


‘약국 레스토랑의 미술관 디스플레이’(2026). 작품이 걸러야 할 전시 공간이 약으로 도배된 약국으로 전환되는 생경한 경험을 통해 당연시했던 믿음의 구조가 흔들리는 혼란을 경험케 한다.
예술가는 경계에 산다
세 번째 방, 가장 깊숙한 어둠 속에서는 그 유명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형형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경매로 구입한 18세기 유럽인의 실제 유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무려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빈틈없이 장식한 이 작품은 제작비만 약 3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원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와 소멸을 뜻하는 해골의 이질적 결합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은유한 작가의 의도를 차치하더라도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시각적 경외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해골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는 노부부와 보안을 위해 배치한 시큐리티 요원, 쉴 새 없이 셀카를 찍어 대는 젊은 관람객들이 한데 뒤섞인 이 검은 방은 아름답고 기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숭고함의 동거랄까. 그 뒤편에는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찬란하게 빛나는 해골과 어우러져 성스러운 무드를 자아내는 이 작품에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 관람객은 다시 한번 흠칫 놀란다. 화려한 기하학적 패턴의 실체가 수천 마리 나비의 날개를 하나하나 떼어 내 붙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수천 번의 죽음을 전제한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잔혹한 역설, 데이미언 허스트가 설계한 멀티 유니버스의 진면목이다.
이쯤 되면 허스트에게 ‘생명을 경시하는 잔인한 상업주의자’라는 오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기행이라고 불러도 좋을 일련의 작업이 단순히 명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기에 그의 탐구는 길고도 진중했다. 허스트는 지난 30여 년간 ‘삶과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좇아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집요한 변주를 이어 왔다. 그가 탐구해 온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종교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는 불우했던 유년 시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을 떠난 뒤 허스트는 엄격한 어머니와 건강에 대한 강박이 심했던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절도죄로 두 차례나 체포될 만큼 반항적인 청년기를 보낸 그는 시체 안치소에서 시신을 닦고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의 이면을 목격했다. 죽은 육체를 마주하는 공포와 허무가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강력한 뿌리가 된 셈이다. 이후 허스트는 영생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과학과 자본의 관계, 종교와 예술의 역할을 치열하게 사유했다. 왜 그토록 극단까지 치닫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때로는 선을 넘어 봐야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고 답하며.


판타스틱 현대미술 가이드
예술은 엄숙해야 하는가? 예술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까? 예술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업은 현대미술이 지난 수십 년간 던진 질문을 미술관 안으로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그리고 관람객에게서 불현듯 터져 나오는 생생한 감상 평만으로도 그 답은 충분해 보인다. “이거 진짜 소 머리 아니겠지? 설마!” “이거 작가가 한 땀 한 땀 붙인 건가?” “근데 미술관에 이런 게 있어도 되는 거야?” 불쾌함과 경외심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허스트가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허스트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예술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존재’라고 선언하고 조수 수십 명의 손을 빌리는 걸 자랑스레 밝혔던 그는 지금 ‘직접 그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런던의 작업실을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스튜디오’로 고스란히 옮겨 와 현재 몰두하고 있는 회화 연작을 최초로 공개했다.
60대가 된 허스트의 작업실은 캔버스와 물감으로 가득하다. ‘리버 페인팅’이라고 이름 붙인 그림 속에는 총천연색 도트와 박제된 동물, 꽃이 뒤엉켜 있고, 작가 노트에는 “사람은 강과 같고, 그 강은 모든 그림의 한가운데로, 그리고 우리 모두를 관통해 흘러간다. 어쩌면 그 강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죽음일지도”라고 적혀 있다. 개념의 설계자에서 붓을 든 수행자로 회귀했지만 그의 멀티 유니버스 속 화두는 여전히 삶이자 죽음 그 자체인 것이다!
더 많은 관람객, 더 넓은 세대에 ‘미술관 오는 즐거움’을 선사하려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의도는 이번에도 적중한 듯 보인다. 전시장은 남녀노소, 내외국인(장안의 외국인은 다 여기 와 있나 싶을 정도로 많다!)이 뒤섞인 채 기분 좋게 출렁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차마 전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관람객들의 상기된 표정이다. 충격과 황홀을 두루 경험하며 전시를 만끽한 관람객들은 마지막 전시 공간에 놓인 긴 벤치에 앉아 말 그대로 ‘예술적 수다’에 몰두한다. 지금 여기서 예술이란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해프닝을 바라보는 시선, 마음 깊숙한 곳에 눌러 뒀던 죽음에 대한 기억, 예술가의 생명 윤리에 대한 단상 등 주제는 수많을 것이다. 바다 건너에서 시시각각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채 침묵과 외면에 익숙해진 오늘, 죽음에 대한 즉각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허스트의 예술이 지닌 가장 놀라운 힘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전시 제목 그대로 진실은 없을지언정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언어가 예술을 완성한다
고정관념을 갖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품명을 보지 않는 감상법도 있지만,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만큼은 예외다. 요즘 말로 ‘작명 센스’를 타고난 그는 성경과 고전문학, 과학 용어 등을 차용해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거대 담론으로 격상시킨다. 박제된 상어에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다이아몬드 해골에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고 이름 붙여 사유를 이끄는가 하면, 수십 개의 칼날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애드벌룬에는 ‘사랑의 취약성’, 수천 마리의 실제 나비 날개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에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라는 이름을 붙여 시각적 충격을 철학적 질문으로 치환한다. 작품을 충분히 보았다면 반드시 작품명을 소리 내어 읽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