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의 연극 <빅 마더>는 ‘투명성’을 명분으로 국민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권력기관과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3월 30일 서울시극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빅 마더>를 무대에 올렸다. 신임 단장 취임 후 첫 공연이자 극단의 지향점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이 작품은 크게 주목받았다. 서울시극단 최연소 단장으로 임명된 이준우는 연극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뮤지컬 <홍련> 등을 연출하며 공연 예술계에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작품을 선호하며, 심도 깊은 작품 분석으로 입체감 있는 인물을 만들어 내고 군더더기 없는 무대 연출을 선보이는 연출가로 호평받는다. 이번에도 시의적절한 작품을 통해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별할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투명한 것이 곧 긍정적인 것이다?
연극 <빅 마더>의 배경은 미국이다. 지지율이 높은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이 퍼지고,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다. 언론사들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다. ‘뉴욕 탐사’도 그중 하나다. 뉴욕 탐사는 문제의 영상이 딥페이크로 제작되었다는 정부 발표를 기반으로 범인 색출에 나선다. 동영상에 나온 이미지를 추적하고, 익명의 정치 커뮤니티를 검색한 뒤 IP 주소까지 확보해 공화당 당원 제니 겔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제니 겔러의 딸 수지 겔러(투명사회연합 당원)가 범행을 자백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더군다나 수지 겔러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딥페이크를 이용한 건 맞지만 영상 속 대통령의 행위는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해 더욱 논란이 된다. 사건의 진범을 잘못 짚어 보도한 뉴욕 탐사에 온갖 악플이 쏟아지고, 기자들에 대한 가짜 뉴스도 무분별하게 생성된다.
악플과 가짜 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뉴욕 탐사 팀원들은 배후에 여론을 조작하는 업체 ‘헌드레드 몽키’가 있음을 확인한다. 업체 대표는 새롭게 부상하는 정당, 투명사회연합의 대선 주자인 하워드 머서다. 그의 행적을 추적하던 팀원들은 ‘빅 마더’라는 이름의 국가 주도 정보 관리 시스템이 존재하고, 하워드 머서가 이를 이용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낸다. 이후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자 기자들은 홍콩으로 도피해 취재한 내용을 발표한다. 그러나 하워드 머서는 압도적인 득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곧이어 기자들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투명사회연합은 더 이상 권력자 한 명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정치인 없이 국민이 직접 모든 법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개개인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저장되는 빅데이터 활용 시스템을 통해 이를 실현하자고 말한다. 정치인에 질린 국민은 이러한 주장을 지지한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모든 것이 유리알처럼 보이기에 통제도 쉽다는 점이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쉽게 노출되고, 즉시 제거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이미 개인정보가 투명하게 노출된 사회에 살고 있다. 섬뜩할 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AI는 치밀한 감시자가 되어 우리의 생활 습관과 소비 패턴, 욕망을 꿰뚫는다. 맞춤 정보를 찾아 주는 생성형 AI, 한 번 검색한 키워드로도 비슷한 카테고리의 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 등이 그 예시다. 극 중 빅데이터 시스템인 빅 마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러더’에서 차용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것을 지켜보며 통제하는 존재. 1949년에 1984년을 상상하며 창조한 ‘빅 브러더’가 2026년 ‘빅 마더’로 진화한 것이다.

연극과 영상의 조화로 만들어 낸 긴장감
<빅 마더>는 뉴욕 탐사 사무실을 중심으로 기자의 개인 공간, 은밀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 기자들이 도피한 홍콩 호텔까지, 공간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경우 대체로 빈 무대를 활용하지만 이준우 연출가는 객석 방향으로 열린 ㄷ자형 투명 무대를 설치했다. 얼핏 복도처럼 보이지만 작품 속 모든 공간을 다 표현하고, 무엇보다 이 연극에서 강조한 ‘투명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투명한 통로로 이동하는 배우를 관찰하면서, 투명해서 다 보이는 것을 좋다고 해야 할지 관객이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미디어 환경도 무대에 적극 반영한다. 무대에 설치한 영상 장치가 뉴스 속보부터 정규 뉴스 방송까지, 대통령 영상 스캔들로 촉발한 미국 대선의 지형 변화를 실시간 보도한다. 그간 이준우 연출가의 작품에서 잘 보이지 않던 영상을 이번에는 최대한 활용했다. 무대 중앙에 큰 화면을 달아 뉴스 속보와 정규 방송을 재생하고, 긴급 기자회견의 라이브 영상은 실시간 카메라를 사용해 생동감을 자아낸다. 배우들이 든 노트북 카메라로 인터뷰와 통화 장면을 영상화해 긴박한 상황을 강조하기도 한다.
뉴욕 탐사 기자들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편집장 오웬 그린 역의 유성주·조한철 배우는 극의 중심을 잡고, 케이트 블랙웰 역의 최나라 배우는 분위기를 조절하는 노련한 기자를 연기한다. 줄리아 로빈슨 역의 신윤지 배우는 열혈 기자를, 알렉스 쿡 역의 이강욱·김세환 배우는 실력으로 자신을 검증하고 싶어 하는 인물을 표현한다.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 주는 언론인의 열정은 진실에 무관심한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빅 마더>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모든 진실이 드러나도 그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인다. 빅 마더 시스템으로 정보를 조작하고 활용한, 명백한 범죄자 하워드 머서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은 정작 사건의 실상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진실이 밝혀지자 그것을 덮으려는 가짜 뉴스에 더 관심을 보인다. 우리의 모습도 작품 속 인물들과 비슷하진 않을까. 공연을 보는 동안 뉴욕 탐사 기자들의 대사가 양심을 쿡쿡 찌른다.

<빅 마더>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빅 마더>는 2023년 프랑스 연극계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울시극단 신임 단장이자 예술감독인 이준우가 올해 첫 작품으로 <빅 마더>를 선택했다. 정치, 미디어, 빅데이터가 결탁한 현대사회의 구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내며 서울시극단의 새로운 방향성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연극이다. 국가의 거대한 관리 시스템을 파고드는 기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서울시극단 배우 김신기·최나라와 함께 유성주, 조한철, 김세환, 이강욱, 신윤지, 김은희, 최호영, 조수연이 열연을 펼친다.
© 서울시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