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음식 수행자와 우주의 밥상

2026년 05월 01일

  • EDITOR 이미선
  • PHOTOGRAPHER 황필주

먹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음식으로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음식을 먹는 건 우주를 만나는 일이요, 그 자체가 수행이고 명상이라 말하는 음식 수행자 대안 스님께 물었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달으셨어요. 만물은 원인과 조건에 의존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죠. 우리의 몸과 정신도 그러해요. 세상에 ‘나’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오온(五蘊: 불교에서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무더기로 분류한 개념)이에요. 오온은 현상적 존재로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아요. 어느 것도 나로 불릴 수 없죠.”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안긴 고요한 산사, 금수암에서 아침 공양을 마치고 대안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스님은 차 대신 커피를 내줬다. 사찰에 오래 머물렀던 바리스타에게 핸드 드립 기술을 전수받았단다. 지난 2월에 방영한 사찰 음식 명장 스님들의 푸드 리얼리티 프로그램 <공양간의 셰프들>에서는 고추장을 이용한 버섯강정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안 스님은 밥과 나물로만 차린 심심한 채식 밥상이라는 사찰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고, 전통 사찰 음식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창의적인 레시피를 개발해 왔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금수암.
자연바루 담장 아래에서 발견한 엉겅퀴. 가시가 많은 식물이지만 봄빛을 머금은 어린잎은 생으로 먹기 좋다.

공양간을 벗어난 사찰 음식 레시피
그저 인연이었을 거다. 이승에서 어머니와의 연이 짧았던 것도, 세상 덧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비구니가 된 것도. 대안 스님은 자신보다 먼저 출가한 언니 지은 스님을 따라 산문으로 들어섰다. 출가 후 해인사 국일암에서 수행하며 사찰의 기본 살림을 익혔고, 제철 식재료와 절제된 조리법을 배웠다. 고초도 겪었다. 꽤 오랫동안 암을 비롯한 갑상선 항진증, 디스크 등에 시달렸다. 하지만 인연을 원망하는 대신 섭생(攝生)을 공부했다. 그리고 사찰 음식을 제대로 하려면 음식과 조리에 관련된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한·중·일 사찰 음식의 기본 원리를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한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대안 스님은 금수암 주지이자 금당전통음식연구원 이사장이다. 1997년부터 요리 강좌와 저술 활동을 하며 사찰 음식을 소개했다. 2009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사찰 음식 대중화를 위해 설립한 ‘발우공양’ 총책임자로 임명됐으며, 다양한 음식을 연구하고 메뉴를 개발해 채식의 이로움을 널리 알렸다. 2019년에는 사찰 음식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찰 음식 명장으로 지정됐다. 사찰 음식이 현대의 식생활과 연결되도록 다양한 채식 레시피를 개발해 온 대안 스님은 2023년 12월 금수암 도량 내에 ‘자연바루’를 열고, 사찰 음식에 지중해 레시피를 접목한 새로운 채식을 선보이고 있다.

금가람 연잎과 계절 채소를 이용한 자연바루 시그너처 연잎밥 정식. 전통 장과 효소가 들어간 천연 발효 음식이다.

뜰에서 주운 건강한 식재료
차담을 마치고 대안 스님을 따라 금수암 뒷산으로 향했다. 스님은 한 손에 소쿠리를, 다른 손에는 작은 칼을 들었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잎만 베어야 내년에도 이 생명들을 만날 수 있다. 밤사이 비가 내려 축축한 땅 위로 볕이 드는 자리마다 여린 잎이 기지개를 켠다. 스님은 향이 가장 좋을 때라며 머위를 따다 나물을 만들고, 솜털 보송한 어린 쑥은 국을 끓여 주겠다고 했다. 땅에서 산야초를 캐던 스님이 두릅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더 자라길 기다릴 것인지, 보드라운 상태로 상에 올릴 것인지 고민하는 눈치다. 결국 딱 한 접시 채울 만큼만 따고 돌아섰다. 건강한 땅에서 맑은 물과 햇빛, 바람을 먹고 자란 재료가 스님의 소쿠리에 가득하다. 부지런히 몸을 챙기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사찰 음식 명장 스님들과 함께한 <공양간의 셰프들> 촬영은 어땠나요?
내가 했던 첫마디가 “안 나오려고 했다”였을 거예요. 아주 독특해요. 스님이 사찰 음식으로 회자되고 방송에 출연하는 건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어요. 스님들이 자꾸 매체에 나오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한국에서 스님은 조용히 참선하면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한다는 시선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승병이 일어난 것처럼 나라가 위태로울 때라야 스님이 나서는 거죠. 한편으로는 지난 30년 동안 사찰 음식을 알리기 위해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찰 음식 대중화보다 이젠 불법을 잘 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내 과제이기도 하고요.

스님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만들어 먹으려면 사찰 음식 관련 서적을 6권 냈으니 그걸 지침서로 삼으면 되고, 음식을 배우고 싶으면 이곳에 와서 요리 강좌를 들으면 돼요. 그런데도 내가 방송에 출연하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는 건 34년 동안 가꾼 이 도량이 적막강산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스님 밥이 먹고 싶어요”인데 일일이 다 해 줄 수 없으니, 대안으로 대중적인 채식 메뉴를 개발하고 체계를 갖춰 꾸린 곳이 자연바루예요.

자연바루 메뉴가 재밌어요. 사찰 음식 전문점에서 파스타나 피자를 먹게 될 줄 몰랐거든요.
사찰 음식의 변형이죠. 사찰에서 사용하지 않는 오신채와 육류를 걷어 내고 전통 조리법에 간장, 된장, 고추장을 활용해요. 그리고 15년 숙성한 백초 효소를 첨가하니 자연 발효 음식이죠. 형태는 피자, 파스타, 샐러드지만 재료가 달라요. 청년 셰프의 아이디어가 큰 몫을 했죠. “가죽나물로 파스타를 해 볼까요?” “피자도 하면 안 될까요?” 새로운 메뉴를 제안했고, 함께 연구했어요. 전통 조리법을 지키면서 현대 식재료에 맞게 조리법을 변형하는 것은 중요해요. 먹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죽은 음식이니까요. 전통은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실생활에 쓰여야 오래 지속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어요. 외롭고 쓸쓸하게 지켜 나가는 전통은 문화가 될 수 없어요. 사찰 음식을 하는 스님 중에도 전통의 계승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어요. 같은 음식을 20~30년씩 연구하죠. 그것은 그분들의 소명이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에요. 나는 그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뿐이에요.

조금 전 뒷산에 갔을 때 잡초로 보이는 산야초의 이름과 성질을 다 꿰고 계신 것이 신기했어요.
공교롭게도 출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음식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어요. 항렬이 낮으니까 막내가 음식을 하는 거죠. 머리 깎고 행자가 되면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출가 후 10년은 기본 교육 기간이에요. 4년 동안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선방에서 참선을 해요. 그런데 몸이 안 좋아져서 섭생을 공부한 거죠. 절에서는 한정된, 제한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니 끊임없이 푸성귀만 쫓아다녔어요. 농사에 관심을 갖고, 내가 먹고 싶은 채소 씨를 더 뿌리고. 오래 하니까 알게 되는 거예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힌 거죠. 그러나 그 경험이 고정관념으로 굳으면 고집불통이 돼요. ‘반드시 이래야 한다’거나 ‘절대 안 된다’는 태도는 위험해요. 그 사람의 생각이니 맞다고 생각하면 취하고, 틀리다고 생각하면 넘기면 돼요. 부정적인 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그렇구나’ 하고 넘기세요. 이 말을 들으면서도 ‘고정관념을 버리는 게 힘들어요’라고 할 수 있어요. 힘들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굳어져서 그래요.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따르고, 틀리다고 생각하면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기면 돼요. 자연바루를 향한 시선도 제각각이에요. 스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님이 아니라 장사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개의치 않아요.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니까.

만약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요?
‘만약’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해요. 어려서도 그랬고 출가 후에도 그렇고, 타고난 기질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어요. 완벽주의 기질도 있어서 무언가 삐뚤어진 것이 있으면 그 꼴을 못 봤죠. 그런데 투병하고 성찰하면서 그런 기질을 다 버렸어요. ‘내가 중심이 되면 안 된다’고 되뇌며 끊임없이 나를 버리는 연습을 했어요. ‘만약에 그랬다면’ 같은 건 그때 다 없어졌어요. 오로지 현재에 집중해서 사는 거죠.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와 똑같아요. 순간이에요. 다만 점이 연결돼 선이 되듯 현재가 연결돼 선이 되는 과정이 삶인 거죠.

우주의 원리와 자연의 생명력을 밥상에 옮겨 놓은 것이 사찰 음식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보통 세상은 우주라 하고, 우리 몸은 소우주라고 해요. 소우주는 지수화풍(地水火風: 땅, 물, 불, 바람)으로 이뤄졌고, 밖에 있는 음식물을 내 몸에 들여놔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밥이 주식인 우리는 광합성 작용을 한 식물을 먹어야 밥을 잘 소화시킬 수 있어요. 우주는 전체를 말해요. 모든 걸 포함하는 하나의 덩어리죠. 그 안에 있는 걸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부처님은 “세계는 하나다. 나와 바깥 세계는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불교에서 분별이란 ‘나와 타자’ ‘나와 세계’를 ‘나와 다른 것’으로 끊임없이 나누는 집착을 말해요. 분별이 강하면 너와 내가 분리된 존재라는 착각이 생겨 마음이 흔들리지만, 분별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고요해지죠.

차담 때 말씀하신 연기법과 연결되는 말씀이네요. 음식 수행자라는 말의 의미도 늘 궁금했어요.
사찰 음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나요? 스님에겐 일상이 수행이에요. 농사지은 채소를 수확할 때도 자연을 관찰하고 성찰해요. 오이에는 수액을 먹으려는 개미가 있어요. 하지만 가시 때문에 쉽게 먹지 못해요. 자세히 보면 오이 가시는 딱 개미가 수액을 빨아먹지 못할 정도로만 자라요. 탱자나무도 마찬가지예요. 곤줄박이는 탱자나무 과육을 좋아하는데, 탱자나무 가시는 딱 곤줄박이 부리만큼만 자라요. 가시가 짧으면 곤충에게 열매를 빼앗기고, 길면 가시에 영양분을 빼앗겨 열매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이루며 진화한 거예요.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다 보면 깨치는 것들이 있어요.

먹는 것이 달라지면 우리 삶도 달라질까요?
몸에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세포에 부딪혀 뇌하수체에 전달돼요. 어딘가 불편하고 불쾌해지죠.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몸에 잘 맞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감이 느껴져요. ‘좋다’ ‘맛있다’ ‘다음에 또 먹어야지’라고 생각하죠. 모두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느낌이 극명하게 달라요. 내 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죠. 바이오리듬과 생활 습관을 아는 것도 중요해요.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고열량 음식을 피하는 게 좋겠죠. 스님들은 앉아서 참선할 때 저녁을 거의 안 먹어요. 속이 빈 게 편하니까요.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니 남의 말을 따르기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